공동개원의 병원의 직원 경험 관리 : 공동 성장과 윤리적 리더십
경영학에서 언급되는 '나무통 이론(Liebig's law of the minimum)'이 있다. 와인통 같은 여러 개의 나무 판을 이어서 만든 통이 있다고 하자. 나무통이 다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고 거기에 물을 부어 채울 때 물의 양을 결정짓는 것은 가장 긴 나무판이 아니라 가장 짧은 나무판이다. 어느 하나가 곧고 높아도 가장 낮은 길이의 나무판만큼만 물을 담을 수 있다. 어떤 조직이더라도 독보적인 한 명의 핵심인재가 아닌 전체의 팀워크와 적절한 레벨의 인프라가 갖춰져야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나무통을 공동개원 병원의 조직이라고 해보자. 아무리 단단하고 긴 나무판 같은 존재가 있다손 치더라도 구성원 모두가 그 레벨이 되지 못하면 가장 짧은 나무 판의 길이의 사람에 맞춰진 분량만 채워지게 된다.
-책 <스마트한 병원 경영 성공 병원의 비밀 노트> '공동 성장의 중요성' 중-
F치과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공동개원의 치과였다. 교정과와 일반 진료과의 협진으로 진행되는 곳이었다. 앞서 '스포츠형 상담과 예술형 상담'(https://brunch.co.kr/@lifeartist/56) 글에 나왔던 예술형 상담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상담을 할 때는 좋은 곳이었지만 중간관리자의 역할을 하기에는 힘든 곳이었다. 우선 두 대표원장의 합의된 의견을 들을 수 없는 곳이었다. 일반 진료과 상담을 맡고 있었으며 교정 진료과에는 다른 상담 실장이 있었다. 협진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공간도 분리되어있어 교정과와 일반 진료과의 직원들은 만날 일은 잘 없었다. 때문에 직원들의 결속력 또한 나눠져 있던 상태였다.
업무 지시와 보고 체계 역시 달랐다. 교정과 대표원장과 소통할 일은 거의 없었지만 업무 지시가 있다면 톡으로 실시간 업무 피드백이 오간다. 다른 대표원장은 방으로 직접 찾아가 대면 보고를 해야 했다. 업무 지시사항도 보고 체계도 달라서 마치 두 치과를 오가며 보고하는 느낌이었다.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은 직원 복지였다. 일반 진료과에서는 회식 한번 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교정과는 휴진을 하고 학회 참석과 함께 숙식 제공을 모두 했다는 점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직원들 사이가 더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나 또한 이 괴리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에 대한 반응 역시 두 대표원장이 상반된 입장을 보였고 마지막 퇴사하는 순간까지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환자를 위한 진료와 경영을 하더라도 그 환자를 보게 되는 직원 경험이 무시되면 결국 환자경험은 허상으로 돌아간다. 결국은 가장 짧은 나무 막대에 분량이 맞춰지게 되는 나무통처럼 말이다.
스스로 도덕적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인 성실성, 정직성, 신뢰성을 갖춰야 한다. 행동할 때는 남을 배려하고 올바른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할 때에는 객관적이고 공정해야 하고 조직의 핵심가치에 부합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중략) 비도덕적인 것을 묵과하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유야무야 넘어가면 그 조직은 어느새 도덕적 해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책 <스마트한 병원 경영 성공 병원의 비밀 노트> '윤리적인 리더' 중-
G치과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이곳 역시 공동 대표원장이 경영하는 곳이었다. 개원 10년을 바라보는, 꽤 안정적인 궤도를 걷고 있는 곳이었다. 면접 날, 한 대표원장과는 짧게 인터뷰를 마쳤고, 두 번째 들어온 대표원장과는 꽤 오랜 시간 인터뷰를 했다. 두 번째 들어온 대표원장의 진료 철학이 좋았다. 면접을 마무리하면서 그런 마음으로 진료를 해주셔서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그 대표원장은 나에게 참 잘 배우신 거 같다며 엘리베이터까지 마중 나와 인사를 했다. 좋은 첫인상이었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빠른 성과를 내기를 원하는 곳도 있는 만큼 난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했고 그만큼 받는 스트레스도 컸다. 하지만 오히려 나에게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고 했다. 그리고 두 대표원장은 번갈아가며 새로 입사한 직원들에게 교육을 했다.
대개의 경우, 상급자나 관리자급 직원들이 교육을 담당하여 진행하게 되는데 대표 원장이 직접 교육하는 건 처음이었다. 그리고 나와 오랜 시간 인터뷰했던 대표원장은 기억력이 무척 좋았다. 소개 환자의 이름을 전부 기억했다. 예약 스케줄은 아침 출근하자마자 확인하고 기억하며 스케줄 변동 사항을 빠르게 인지했다.
더불어, 스케줄이 빡빡하면 화를 내는 치과의사가 많은데 상담하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며 스케줄에 맞춰 유연하게 잘 대처를 했다. 직원들이 바쁠 때는 직접 대기실로 나와 환자를 진료실로 모시고 들어가기도 했다. 놀라웠다. 권위적인 모습에 치과의사들만 만나 오다 이렇게 허물없이 환자에게 그리고 직원에게 다가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좋은 시간들은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곳은 탈세를 하던 곳이었다. 입사 후 교육받을 때, 이제 세무신고를 다 할 예정이니 상담할 때 편하게 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서 이제부터 내가 상담하면서 바꿔나가야겠다 생각했다. 하지만 10년 동안 고착된 문화는 바뀌기 힘들었다. 경영에 대해 100% 오픈하고 세무 신고를 하던 곳에서 일을 하다 그렇지 않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되니 전체적인 흐름을 볼 수 없어 답답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직원 한 명이 상담실로 뛰어들어왔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가 나왔다고 했다. 절세에 대해 이야기하던 내가 하루아침에 탈세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결국 세무조사의 결과는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직원에게는 오픈 경영은 일체 진행되지 않았고 그 뒤에도 탈세는 계속 이뤄졌다.
또한 공동 대표이지만 한 원장의 주체적 체제로 이뤄지던 병원이 다른 대표원장 체제로 바뀌기 위해 병원 전체가 삐걱거리고 있었다. 퇴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한 원장은 내가 지금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니라며 결정을 미뤘고, 다른 원장은 고민을 좀 더 해보자며 결정을 차일피일 미뤄댔다. 메인 상담을 하게 되면 한 달 평균 130명의 상담을 해야 하는 곳이라 상담일정 조율만이라도 먼저 해달라 요청했지만 그 또한 책임을 서로 미루고 있었다. 결국 견뎌내지 못한 난 최악의 잠수 이별을 선택했다.
병원도 이제는 '착한 병원'의 이미지로 승부해야 한다. 다만 여기에 더해 겉으로 보이는 착한 이미지가 다가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하고 가자.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병원이라는 개념은 그보다도 훨씬 복잡하고 어렵다. 최근에는 '통합 공유가치(TSV, Total Shared Value)'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TSV를 구성하는 요소는 1) 법, 규제, 윤리 경영, 기업 원칙과 정책 등 책임 있는 비즈니스 행동을 준수하는 것, 2) 환경적 지속가능성, 3) 가치 창출이다. 병원의 일들 중에서 환자고객에게 쉽게 보일 수 있는 가격정책이나 사회적 봉사 활동 등으로만 병원의 사회적 적 책임을 이야기할 수 없는 이유다.
착한 가격으로 보이지만 결국 덤핑을 일삼는 병원은 경제적, 법률적, 윤리적 책임을 안 지는 병원이다. 선행과 기부에 지나치게 치우쳐서 직원 복지와 병원 경영에 소홀하다면 경제적, 윤리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병원을 비롯한 모든 의료 관련 업종은 지역사회의 구성원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공익 서비스 기관이다.
-책 <스마트한 병원 경영 성공 병원의 비밀 노트> '착한 병원'을 만들어라 중-
환자에게 착한 가격이 되는 비용은 직원이 탈세를 돕게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고, 환자에게 3대가 믿고 찾아올 수 있는 병원이 되지만 근속했을 때 내가 저 선배처럼 된다면 당장 그만두고 싶은 병원이 될 수도 있다. 공동개원이라는 선택을 했다면, 공동 성장을 할 수 있는 직원 경험이 제공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