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경험 관리의 우선순위 : 2. 높은 수준의 진료
D치과에서 근무할 때의 이야기다.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한 치과에서만 상담을 했던 터라 전통적 아날로그 치료 방식으로 진료를 하는 치과가 궁금했다. 그래서 D치과에 입사하게 됐다. 보존과, 구강외과 전문의 원장들과 전통적 임플란트 수술의 대가라고 불려진 대표원장의 협진 시스템으로 이루어진 곳이었다.
D치과는 전문의들의 협진 시스템, 전통적 아날로그 진료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다. 물론 그곳의 치과의사들은 저명했고, 실력 또한 뛰어났다. 때문에 비보험 수가가 높은 편이었다. 그래서 더욱이 '이 과정을 디지털 시스템으로 진행할 경우 술자와 환자 모두 더 편하고 빠르게 진행될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과 '왜 이런 시스템으로 이런 수가 제도가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전체 임플란트 진행 과정을 예로 들어보겠다. 다량의 뼈이식이 필요한 경우(다량의 뼈이식을 해야 하는 경우는 잇몸 절개가 필요하다)를 제외한 임플란트 식립 기준으로 봤을 때다. 디지털 시스템 임플란트는 구강 내 스캔 데이터와 CT 촬영한 데이터를 머징(정합)한다. 그 데이터를 토대로 컴퓨터 소프트웨어로 모의 시술을 해본다. 해부학적 구조물의 파악과 임플란트 사이의 간격, 식립 되는 깊이와 식립 될 임플란트의 길이, 차 후 세팅될 보철 위치까지 파악하여 임플란트를 식립 할 최적의 위치를 선정한다. 그리고 선정된 위치에 따라 홀(hole)이 뚫려있는 '임플란트 수술 가이드'라는 것을 제작한다. 가이드는 임플란트를 절개 없이 심을 수 있게 하는 보조 장치이다. 수술 시 가이드를 환자 입안에 장착하고 홀에 맞춰 임플란트를 식립 하기만 하면 된다. 보통의 디지털 시스템의 임플란트 식립은 한 홀당 10분 정도면 충분하다. 흔히들 디지털 임플란트의 장점으로 단순히 무절개 임플란트라고 광고를 많이 하는데 디지털 방식이 아니더라도 무절개로 진행할 수 있다. 때문에 디지털 시스템 임플란트는 다른 말로 '컴퓨터 분석 내비게이션 임플란트'라고도 한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처럼 목적지까지 안내해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전통적 임플란트 방식은 잇몸을 절개하여 식립 하는 방식으로 적어도 30분 이상의 소요가 필요하다. 절개와 봉합하는 시간이 만만치 않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전체 임플란트라면 절개 범위가 더 크기 때문에 시간은 더욱 오래 걸린다. 절개한 시간에 따른 부종과 통증은 가중된다. 때문에 회복기간이 길고 술 후 통증도 크다.
임플란트를 식립 한 이후도 디지털 시스템과 전통적 시스템은 달라진다. 뼈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경우라면 당일 임시치아 세팅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임시틀니를 사용하게 된다. 임시 틀니가 제작되는 경우는 비용이 추가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임시치아의 경우 디지털 시스템과 치과 내부 기공소가 있을 경우, 대부분 추가 비용이 없다. 구강 스캐너로 스캔한 데이터가 남아있기 때문에 바로 제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D치과는 본을 떠서 제작하기 때문에 만약 임시치아가 깨지거나 부러졌을 경우 작업 모델이 남아있지 않으면 다시 본을 뜨는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래서 D치과에서는 내부 기공소가 있지만 임시치아에 대한 비용을 별도로 책정하고 있었다. 내부 기공소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마케팅에 모순적인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 과정은 환자가 제일 불편한 시스템이란 거다. 전체 임플란트를 하는 분들 중, 생각보다 바로 식사가 가능하다는 기대감보다 드디어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웃을 수 있다는 기대가 더 강하다.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환자에게 감수하게 하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선배에게 대체 왜 임시치아에 대한 비용을 책정하냐는 물음을 던졌다. 선배는 원래 그런 거니 더 이상 묻지 마라고 했다.
물론, 우수한 진료력과 의료 철학이 있는 곳은 그만큼의 합당한 수가를 받기를 나 역시 원한다. 그런데 이곳은 의료 서비스 대비 수가가 터무니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내부 고객인 직원을 납득시키지 못하는데 외부 고객인 환자를 상담해서 납득시킨다는 것 자체가 모순인듯했다.
그리고 놀라운 점은 하나 더 있었다. 전자차트를 사용했지만 상담 기록은 종이에 수기 작성으로 이뤄졌다. 상담이 끝나면 스캔하고 환자 차트에 업로드하는 일을 반복해야 했다. 왜 전자차트를 활용하지 않냐는 물음에 태블릿 PC를 사는 것은 비용 부담이 크며 이전에 시도했다가 불편해서 하지 않는다고 했다. 때문에 일일이 스캔하고 종이를 보관하는 수고로움과 상담 내용을 수기로 작성해서 환자에게 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덤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근무하며 제일 당황스러웠던 것은 바로 환자 진단이었다. 건강상의 사유로 대표원장은 집도를 하지 못하지만 환자의 진단을 내린다. 하지만 정작 집도를 맡은 페이 원장은 그 진단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각 전문의들의 협진 시스템을 강점으로 내걸고 있는데 정작 협진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진단의 영역에서는 서로 임상적 견해가 다를 수 있으므로 이견이 발생할 수 있다. 이견의 조율은 당연히 치과의사들끼리 논의할 부분이다.
하지만 진단 오차 범위를 고스란히 상담실장이 떠맡게 된다. 페이 원장이 또 다른 진단을 내놓으면 난 누구의 진단으로 상담해야 하는지부터가 혼란스럽다. 이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게의 치과에서는 케이스를 공유하며 함께 전체 회의를 하거나 실장과 원장들과의 회의 시간을 가진다.
그런데 이곳은 대표원장과 모든 직원들이 대화 단절이었다. 심지어 같은 치과의사들까지 말이다. 대표원장이 모든 직원을 가르치려고만 해서 모두가 함구하고 있었다. 특히 큰 케이스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욱 빈번히 발생됐다. 정해진 룰이 없었다. 알아서 눈치껏 해야 했다. 이건 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한 진료이며 상담인지 점점 의구심이 생기고 있었다.
초반 상담률은 높은듯했지만 내가 납득되지 않는 상담을 하다 보니 환자 이탈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환자에게도 상담하고 있는 D치과에게도 폐를 끼치는 듯해 퇴사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진료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디지털 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치료 시기나 통증의 정도를 조절할 수 있고 술자나 환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외부 마케팅은 마치 디지털 시스템이 도입된 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기계만 있으면 디지털이라 생각하고 디지털 덴티스트리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다. 오히려 디지털 시스템을 불신하던 모습을 보였다.
최근 ‘디지털화’ 물결로 여러 변곡점을 맞고 있는 치과계가 이에 따른 변혁이 반가우면서도, 조금 버거운 상황에 놓였다. 치과계에 따르면, 디지털화 순서는 기공소부터 출발해 치과로 번져 현재에 이르렀다. 기공소의 디지털화는 60% 이상, 치과는 10~20% 진행됐다는 것이 치과계의 중론이다. 이는 기공계의 ‘CAD/CAM’과 ‘3D 프린터’, 치과의 ‘오랄 스캐너’ 등 장비 보급률을 지표로 한 분석이다. 때문에 디지털화로의 변혁 속도는 치과와 기공소 간 분명 차이가 있으며, 이 지점에서 치과와 기공소 양 측은 물론, 그들 내부에서도 각자의 입장이 섞인 여러 의견이 대두된다. (중략)
반면, ‘디지털화’와 ‘기존 방식 고수’의 기로에 서 갈팡질팡 하는 입장도 있다. 현재 구강스캐너로 진료 후 3D 데이터를 기공소에 보내고 있다는 B원장. 그러나 그는 “추가 디지털 장비 구축 계획은 현재로서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B원장은 우선 “치과계의 디지털화 진입 현상은 찬성한다”라고 운을 뗀 뒤, “하지만 개인적인 경험 상 디지털 분야는 들이는 수고와 비용 대비 얻는 부분이 적어, 관련 장비 가격이 다운되고, 기술도 더욱 진보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기공계는 치과 시스템의 디지털화 속도가 현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따라가길 고사하는 중이라고 주장한다. 또 이러한 현상은 연령대별로 더욱 뚜렷해진다고. 수많은 디지털 관련 강연 중인 C기공소장은 “기공사와 치과의사 간 3D 데이터‧2D 사진 등 데이터를 주고받는 과정이 수월하려면, 관련 프로그램에 대한 (치과의사들의) 학습이 전제돼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개원가 관심도는 연령대별로 30‧40대는 ‘적극적’, 50대는 ‘고민 중’, 60대 이상은 ‘대체로 관심 없다’고 파악된다고 했다.
이들 의견을 종합해보면, 대체로 ‘디지털화’라는 방향성에는 긍정적인 반면, 이와 함께 부상 중인 여러 문제들에 대한 고민 또한 깊어지는 모양새다. 디지털에 대한 최근 개원가 인식을 살펴보면, 디지털화가 치과계 전체에 새로운 성장의 동인을 던져주는 핵심주제로 부상 중임을 짐작할 수 있다.
출처 : 덴탈아리랑(https://www.dentalarirang.com)
혼란스러움 속에서 퇴사를 했던 난, A치과 원장님을 찾아갔다. 전통적 아날로그 치과에 대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지만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런 내가 문제인 건지 물었다. A치과 원장님은 나에게 되물었다.
"스마트폰 세상을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데 굳이 2G 폰으로 돌아갈 이유가 있나요?"
여전히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충돌하고 있다.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의학의 기술 발전은 환자와 술자 모두에게 유리하게 작용되기 위함이다. 그렇다고 디지털 혁신만이 완벽한 정답이라는 말은 아니다. 진료철학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내부와 외부 고객 (직원과 환자)의 경험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고민을 해야 한다. 안전한 진료와 높은 수준의 진료를 제공하는 환자 경험 관리를 생각한다면 과연 전통적 진료가 정통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