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Oct 04. 2023

함께하는 카레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스물세 번째

"점심에 카레 먹으러 가요. 제가 맛있는 곳 알아놨어요"


자리에 앉자마자 동료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출근할 때 이유 없이 안절부절못했던 나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나도 카레 먹고 싶었는데 어떻게 알았냐고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동료는 웃으며 내 걸음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올 때 그 사람은 내가 카레를 먹고 싶어 한다고 알아챘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 작게 웃고 말았다


밥에 소스를 부어 먹는 것 중에 유일하게 선호하는 것이 카레와 짜장이다. 어렸을 때는 압도적으로 짜장을 좋아했지만 어머니는 항상 카레만 한 드럼통을 끓이시곤 했다. 온 가족이 며칠을 카레만 먹으면 얼마나 지겹던지 커서도 카레를 좋아했던 기억이 다. 혼자 살면서도 간단한 짜장 레토르트 식품들을 사서 먹었지만 카레는 당연히 먹지 않았다. 3분 짜장을 자주 먹다 보니 박스로 시키곤 했었는데 어느 날인지 잘못 주문해서 카레 한 박스가 온 적이 있었다. 당연히 짜장일 거라 생각해서 창고에 넣어두었는데 한참이 지난 후 먹으려고 보니 카레 한 박스가 있어 당황해 버렸다. 이미 반품 시기도 지났고 유통기간이 엄청 긴 음식도 아니라서 하나씩 까먹어야 했다. 밥을 푸고 카레를 별도의 그릇에 담고 김치를 곁들이니 먹을 만했다. 한 번 두 번 그렇게 먹고나고 나니 질려서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버리기도 아깝고 해서 몇 달에 걸쳐 꾸역꾸역 먹었더니 카레라는 것들은 쳐다보기도 싫어졌다. 너무 지겨워진 나머지 카레가 무슨 맛인지도 모르는 지경이 되어 버렸다.


이후 한 참이 지난 어느 점심때 일본식 카레 전문점에 가게 되었다. 모처럼 다 같이 가는 거라 분위기 망칠까 봐 거절도 못하고 설마 카레 말고 다른 음식이 있겠지 하고 따라가게 되었다. 생긴 지 얼마 안 되는 일본식 카레집에는 손님이 꽤 많았다.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 메뉴판을 먼저 주길래 슬쩍 훑어보았는데 모든 메뉴가 카레였다. 망했다 싶었지만 그중에 먹을 만한 것이 있나 신중하게 메뉴판을 정독했다. 카레는 소고기카레, 닭고기카레, 야채카레 등 몇 가지 종류가 있고 토핑은 굉장히 많아서 카레에 토핑 여러 개를 골라서 주문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치킨, 돈가스, 소시지 등등 먹을 만한 게 꽤 있어서 카레가 맛없으면 밥이랑 토핑이랑 같이 먹으면 되겠다 싶어 소고기카레와 치킨을 주문했다. 커다란 접시 위에 흰밥과 카레가 반씩 나란히 올려져 있었고 밥 위에 치킨이 올려져 있었다. 밥과 카레가 분리된 것은 너무도 마음에 들었지만 각각 따로 주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먹기 시작했다. 치킨과 밥을 먹다가 드디어 카레와 섞인 부분에 다다라서 그만 먹을까 고민하다가 밥 양이 많지 않아 조금 더 먹기로 마음먹고 한 숟가락 떠서 먹고 치킨을 동시에 입에 집어넣었다.


1+1은 대부분 2가 되지만 나의 세상에서 1+1은 0.5라던지 1.2라던지 2가 못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레와 흰밥과 치킨은 1+1+1이 3이 넘는 느낌이었다. 카레는 마치 원래 그랬던 것처럼 치킨과 너무 잘 어울렸다. 치킨의 약간 느끼한 맛을 카레가 잘 잡아주는 느낌이랄까. 게다가 밥의 고소함까지 끌어올려 주고 있었다. 결국 그날 카레와 치킨을 다 먹게 되었다. 기름기가 많은 치킨을 다 먹었는데도 카레와 같이 먹으니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이후 집에서 레토르트식품을 주문할 때 짜장과 카레를 반반씩 주문해서 카레에 다양한 음식들을 곁들여서 먹기 시작했다. 계란프라이, 남은 동그랑땡, 치킨, 고기완자 등등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을 덧 붙여서 먹었는데 의외로 다 잘 어울렸다. 짜장은 그 자체로는 맛있지만 계란 프라이 외에 다른 음식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나에게 카레는 짜장처럼 온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요리가 아니라 다른 음식의 맛을 더 보태주는 음식이 되었고 선호도가 조금씩 올라가자 카레 자체도 맛있게 느껴졌다.


주변을 둘러보면 카레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타인과 잘 어울릴뿐더러 강한 영향력으로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 죽었다 깨어나도 그런 스타일의 사람이 되지 못하는 나는 질투도 나고 부럽기도 하고 만감이 교차한다. 나의 어색함은 항상 사람들과의 협업에서 마이너스 요인이 된다. 혼자 일하는 것은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과 일할 때면 관계에 쏟는 에너지가 높아지면서 일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타고난 성마름으로 인해 조급하고 예민한 나는 일처리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그런 모습을 본 상사들이 잘하겠다 싶어 프로젝트를 맡기곤 했는데 항상 마지막에는 컨트롤이 안되고 삐걱거리고 급기야는 허겁지겁 마무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의 시작은 창대하게 했으나 마무리는 혼자서 애를 먹는 모습이 티가 나지 않을 리가 없다. 나에게 오는 프로젝트들은 점점 줄어들었고 최근 난 주도적으로 업무를 한 적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사람의 성격은 정해져 있다고 하는데 왜 난 카레같이 태어나지 못했을까. 밥도 못되고 카레는 더더욱 되지 못한다.


오늘 점심에 간 일본식 카레 전문점에서 야채 카레에 튀긴 마늘과 돈가스토핑을 얹어서 주문했다. 카레 같은 그 사람은 주변 동료들과 신이 나 떠들고 있었다. 나는 튀긴 마늘 토핑 정도는 될까? 그 정도만이라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흰밥에 카레를 조금 묻힌 후 튀긴 마늘과 작은 돈까스 조각을 얹어 한입 먹었다. 입안이 카레와 돈까스 향으로 가득하다. 아니 돈까스 카레향이라고 하는 게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기분 좋게 우물거리고 있는데 그 사람이 갑자기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때요 여기 카레 맛있죠?"


네! 하고 그 사람 얼굴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가슴에 무언가가 털컥하고 내려앉았다.  


작가의 이전글 스파게티는 2인분부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