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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Feb 04. 2024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잡채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쉰다섯 번째

나이가 들면서 점점 좋아지는 음식이 있다. 그중 하나가 잡채이다. 어릴 때에는 어머니가 해주는 잡채가 라면처럼 쉬운 요리라고 생각되었다. 잡채 해줄까하고 어머니가 묻고 나면  어느새 커다란 그릇에 잡채가 쌓여 있었다. 당면의 흐물흐물한 느낌이 싫어서 고기만 빼먹다가 혼나기도 하고 야채는 안 먹고 다 버리기도 했다. 흔하고 또 흔했다.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커서 혼자 살게 되어 보니 잡채는 정말 어려운 음식이었다. 어른이 되어서 처음 사랑한 사람이 먹고 싶다고 하여 손수 준비하겠노라 열정을 가지고 해 봤지만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서점에 가서 요리책을 보고 수첩에 내용을 적어와 만들었던 잡채. 산더미 같은 양만 빼고는 맛도 향도 전혀 다른 음식이 되었다.


그다음부터 누가 묻거나 원할 때 나는 잡채를 싫어한다고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만들기가 싫었으니까. 원하면 자기들이 해 먹지 왜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간간히 식당에서 나오는 잡채로 달래보곤 하지만 집에서 해주시던 그 맛은 아니다. 우리 자식들이 한번 모이는 날이면 잔치상처럼 요리를 하시는 어머니는 잡채는 빼먹지 않고 하셨다. 그리고 남은 잡채들은 꼭 우리에게 봉지에 싸서 들려 보내야 본인이 만족해하셨다.


어머니가 해준 잡채가 맛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가지고온 것을 오래 보관해서 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상 한두 번 먹고는 냉장고에 들어갔다. 냉동실에 꽁꽁 얼어있는 잡채를 버린 것이 얼마나 많았는지. 전자레인지에 돌려도 보고 자연해동을 해도 맛이 살아나지 않았다. 가져오고 먹고 얼리고 버리고. 잡채는 나의 마음에 계속 짐이 되었다.


그러다 회사에서 젊은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고향집에 가서 차례를 지내고 나면 잡채를 항상 싸와서 먹는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어떻게 먹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내 마음속에 있던 짐은 그 이야기를 깊이 각인시켰고 집에 온 나를 냉장고로 이끌었다.


잡채를 꺼냈다. 실온에서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린 후 식용유를 뿌리고 열이 오를 때를 기다린다. 그리고 냉동 잡채를 넣고 잡채를 으깨듯이 계속 눌러서 펴준다. 얼음이 가루가 되고 물이 되기 시작하면 두 숟가락 정도의 물을 넣고 간장 한 스푼을 넣고 녹여주면서 물이 없어질 때까지 볶아준다. 물이 완전히 없어지면 접시에 담고 먹으면 된다.


잡채는 완전히 부활했다. 방금 한 것처럼 거의 똑같은 맛으로 부활했다. 이후로 집에서 잡채를 하면 싸 오곤 했다. 적당히 먹기 좋게 소분한 다음 냉장고에 얼렸다가 위와 같은 방법으로 부활시킨다. 그냥 먹어도 좋고 고추장을 조금 넣고 밥이랑 같이 볶아 먹어도 좋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잡채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왜 사람들은 잡채를 해달라고 하는 것일까. 난 그 사람과 밖으로 나와 중국집으로 가서 잡채밥을 시켜 먹었다. 냉장고에는 소분한 잡채들이 많았지만 잡채 만드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그 사람을 보고 있자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얼음 같은 침묵의 시간. 그래서 머릿속으로 냉장고 속 잡채가 찬란히 부활하는 것만 생각했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나도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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