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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Sep 25. 2019

'나때는 말이야'를 외치는 그대에게

'해야하니까 하는거지' 라는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이별을 생각한다

최근에 만난 K와 M


최근에 만난 K는 다니던 직장을 옮겼다. 이 직장을 계속 다니게 되었을 때, 미래에 마주치게 될 자기 자신에게 너무나 미안해서 그 직장을 나왔다고 했다. 그 직장은 객관적으로 보수나 후생 면에서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것은 K라는 사람이 직장을 단순히 먹고 사는 곳으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노동을 제공하고, 그 댓가를 받는 근로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 이상으로 끊임 없이 질문하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K라는 것을 알기에 나는 그 결정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다.  

최근에 만난 또 다른 사람, M은 이십년 넘게 다니던 교회를 옮겼다. 그는 ‘교회’와 함께 하는 삶을 꿈꾸던 사람이었다. 그 안에서 늘 삶의 동력을 얻고, 가치를 발견하면서 살아가려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 공동체 안에서 그 어떠한 가치 추구도 어렵다고 했다. 교회를 나가야 한다는 당위와 기성 세대가 주장하는 ‘사명감’, 그리고 젊은이들이 몇 남지 않은 교회 속에 영혼 없이 대할 수 밖에 없는 온갖 잡다한 일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가 이러한 내면의 문제를 용기를 내어 제기할 때면 돌아오는 어른들의 답변은 늘 비슷했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가 더 모이기를 힘써야 되지 않겠냐, 너마저 힘을 잃으면 우리 교회는 누가 지키냐, 끝까지 버티라는 류의 권면들이었다.

최근에 만난 K는 다니던 직장을 옮겼다


그게 꿈인줄도 모르고 꿈을 꾸던 시절 


만원(滿員)의 서울,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한국전쟁 중 서울의 주택과 도시기반시설, 생산시설들이 대거 파괴되었다. 서울 시민들은 빈손으로 자신의 삶터를 다시 일구고 나라를 재건해야 했다. 서울에서 전후 복구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지방민과 월남민이 서울로 내려와 터전을 마련했다. 1960년대 경제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서울 인구는 폭증했다. 전쟁 직후 124만명이던 서울 인구는 1965년에는 347만명, 1970년에는 543만명으로 늘어났다. 1966년에 이미 ‘서울은 만원이다’라는 소설이 나왔으나 인구 급증 현상은 그 뒤로도 20년 이상 지속되었다. 새로 서울 시민이 된 사람들 대다수는 도시 외곽의 구릉지나 하천변에 판잣집을 지어 정착했다. 

그 시기를 살아내던 부모들은 나 하나 희생해서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킬수만 있다면 그 어떤 희생도 감내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다. 노동환경은 척박했지만 사람들에게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그 결과가 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노동환경은 척박했지만 사람들에게는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그 결과가 내 가족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첫 마음과 함께 성장한 교회들


한국의 경제성장기는 교회들의 성장기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70~80년대, 크고 작은 교회들의 주일학교에는 아이들이 꽉꽉 들어찼었다. 마음도 몸도 가난했던 사람들은 예배당에 나와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었고, 서울의 여의도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음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그 시절을 지나온 어른들은 너나할 것 없이 깊은 추억들이 있다. 처음 가졌던 하나님에 대한 마음, 감사함, 그리고 교회성장기를 함께 동고동락한 자부심과 사명감과 같은 것들이다. 

서울의 여의도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음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는 꿈꾸고 싶은 청춘들에게 너무도 잔혹하다


그와 같은 시대가 끝나고, IMF 사태를 기점으로 한국 경제는 성장을 멈추었다. 정확히 그 때부터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았다. 출산율이 0점대인 지금에 오기까지 출산율은 끝을 모르고 곤두박질쳤다. 그 지표의 의미는 더 이상 젊은 부부들이 이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꿈을 꾸지 않게 되었다는 반증이다. 


기성세대는 반문할지 모른다. 우리가 아이 키울 때는 변변한 어린이집도, 사회적 서비스도 갖추어지지 않았는데 뭐가 부족하다는 것이냐고. 그 분들은 아쉽게도 그들이 물과 공기처럼 누렸던 특권을 너무 쉽게 잊어버렸다.


꿈 꿀 수 있는 권리


그들이 누렸던 특권은 바로 ‘꿈 꿀 수 있는 권리’이다. 물론 그들은 그것을 거창하게 ‘꿈’이라고 불러본 적은 없다. 만원의 지하철을 오고 가며, 봉제 공장에서 미싱을 하며, 평화시장에서 옷을 팔고, 수도 없이 지어진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느라 그들이 꿈꾸고 있는 것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눈을 감았다가 뜨면 서울의 풍경이 변하던 그 시절의 생동감과 역동성은 그들에게 충분한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월세로 시작한 그들의 신혼집은 어느새 부동산 가격의 폭등과 더불어 아파트로 변해있었다. 대기업에 다니든, 공무원을 하든, 또는 노동자로 살아간다 할지라도 그 시장환경에서 충분히 성장할 기회가 있었다. 


그 특권을 잃어버린 채, 먹을 것과 입을 것조차 부모 세대에게 기생하고 있는 지금의 2030 세대에게 그 시절의 역동성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이유이다. ‘이제 생계의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너희들은 훨씬 더 나은 환경에 놓여있다’고 말한다면 지금 세대가 처한 상황을 깊이 숙고할 필요가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치'와 '의미'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을 일컫는 밀레니엄 세대는 더 이상 ‘생계’의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세대가 아니다. 그들은 ‘가치중심적’이다. 그들은 무슨 일에서든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만큼이나 그 일의 '의미'를 갈구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을 하기 전에 그 일을 떠받치고 있는 ‘가치체계’가 필요하다. 

그들은 ‘가치중심적’이다.


70년대의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명령에 대해 그 이유를 물으면 혼났지만, 밀레니얼 세대들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들은 ‘해야하니까 하는 일’에 끊임없이 회의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와 하는 ‘일’ 사이에 갭이 생기면 더 이상 그 일을 진행할 수가 없다. 이것이 80~90년대생들의 퇴사율이 높은 이유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조직이 하고 있는 일에 함의된 가치를 설명해내지 못하기에, 또는 그 가치 자체를 상실하였기에 밀레니얼 세대들은 그 공동체 안에서 비전과 미래를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가치 중심적’인 세대들에게 ‘꿈 꿀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핸디캡은 너무나 치명적이다. 어느 공동체를 가든 이전 세대들이 누렸던 ‘역동성’은 사라진지 오래다. 성장기를 통과한 기성세대는 그들의 틀에 맞추어 밀레니엄 세대를 재단하려고 시도한다. 청춘들이 소중하게 여기는 종류의 ‘가치’를 제공하지 않고, 그저 일거리가 있음에 감사하라는 기성 세대의 메시지에 밀레니엄 세대는 더 이상 희망을 보지 못하고 공동체를 박차고 나가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청춘들의 아우성을 듣고 있노라면 그것이 곧 나의 목소리기에 마음이 아파온다. 모든 성장을 마치고, 이제는 ‘사명감’이라는 허울 좋은 마지막 동기부여만 남은 공동체들. 어떤 일을 하든 그 속에 숨쉬는 ‘가치’를 설명하지 못한 채, '당위'만 강조하는 기성세대들 앞에서는 사실 소통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버겁게 느껴진다. (사명감은 사실 가장 차원이 높은 동기부여 방식이지만 조직에서 아무런 가치도 추억도 사랑도 의미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에게 사명감을 운운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해야하니까 하는 일’에 끊임없이 회의한다


'가치'와 '의미'를 선물하는 일


‘가치’와 ‘의미’를 선물하는 일. 그것이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임을 기억해주었으면 좋겠다. ‘사명감’과 ‘당위’만 강조하는 공동체는 그 자체만으로 이미 죽어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구성원들에게 쥐어줄 수 있는 어떤 카드도 남아있지 않을 때, 리더들은 마지막 남은 카드인 사명감과 당위를 논하기 때문이다. 이미 그런 상태라면 젊은 세대들을 그냥 놓아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젊은 세대들은 지금도 ‘가치’와 ‘의미’를 찾아 지금도 여행 중이다. ‘파랑새는 사실 네 주위에 있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슬프다. 

젊은 세대들은 지금도 ‘가치’와 ‘의미’를 찾아 지금도 여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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