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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Feb 20. 2020

'월급 루팡' 퇴치에는 '90년대생'이 제격이지!

저물어가는 '팀플'의 시대를 맞이하는 80년대생의 자세

'팀플'의 추억


내가 대학에 다닐 때도 이른바 ‘조별 과제’라는 것이 있었다. 나는 경영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어떤 수업을 가든 ‘팀 프로젝트’가 존재했다. 예를 들어 마케팅 수업을 듣는다고 하면 어떤 시장에 들어갈 것인지부터 토의를 하게 되며 해당 시장 조사와 분석부터 방대한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우리가 정한 브랜드를 어떤 타겟에 소구할 것인지, 어떠한 상품을, 어떠한 가격에, 어떠한 유통경로로, 어떤 판촉 수단을 써서 판매할 것인지를 하나하나 토의를 해서 정해야 했다.


* 이 글에서는 80년대생과 90년대생들의 특징을 명확하게 기술했지만 현실에서는 사실 사람마다 다른 것을 느낍니다. 이 글은 전반적이며 통계적인 세대적 경향성을 두고 논한 글이니 먼저 독자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우리들에게도 '팀플'은 힘든 일이었다


이러한 팀 프로젝트가 힘들었던 이유첫째, 각자가 바쁜데 시간을 내어 모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생계형 대학생이었던 나의 경우, 각종 활동들도 많았던데다가 과외를 해서 돈도 벌어야했다. 여기에 ‘조모임’이라는 변수는 나의 일정들을 뒤죽박죽으로 헤쳐놓기 십상이었다. 그런 사정들은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으로 모임 시간을 정해야했다. 그리고 시간이 정해지면 내 시간을 그 시간에 맞추어야 했다. 그것은 시간을 자원으로 바삐 활용하는 대학생들에게 큰 짐일 수 밖에 없었다.

둘째는 바로 평가 시스템의 문제였다. 아무리 개인 시험을 잘 본다해도 우리 팀의 점수가 저조하다면 좋은 학점을 받기 어려웠다. 이러한 ‘연대 책임’의 구조는 자연스레 파레토의 20대 80 법칙을 실현시켜 주었다. 열심히 책임감을 가지고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20%와 관망하는 80%가 사회학적 본능에 의해 구분되었다. 80% 중 조모임에조차 나타나지 않는 수준의 사람들을 우리는 ‘프리라이더(Free Rider)’라고 불렀다. 대부분 책임감의 정도에 비례하여 저학년일수록 프리라이더가 되기 쉬웠지만 때로는 드문 확률로 취업 준비를 하는 고학번들도 프리라이더가 되었다. 각자의 사정이야 있겠지만 그들과 같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는 문제는 이른바 ‘공정성’의 시비로 비화될 만 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어떤 교수님들은 다면 평가를 실시했다. 즉, 본인 뿐 아니라 동료 서로를 평가하게 함으로써 ‘프리라이더’들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실효성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80% 중 조모임에조차 나타나지 않는 수준의 사람들을 우리는 ‘프리라이더(Free Rider)’라고 불렀다.


우리들은 '민감'했지만 '침묵'했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나를 포함한 80년대에 태어나 2000년대에 학교를 다닌 대학생들은 적어도, 내면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을지언정, 이 구조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경영학을 공부하는데 있어서 ‘팀 프로젝트’는 비록 수행할 때는 고되지만 실무에서는 도움이 되는 필수적인 과정일거야!
교수님이 정하신 룰에는 그대로 따라야하니 혹 ‘프리라이더’가 생기더라도 내가 한 발 더 뛰어서 팀이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미화(美化)'되어버린 '팀플'의 기억


시간이 지나 직장인이 되고 10년이 지난 지금, 팀프로젝트의 기억은 꽤나 미화(美化)되어 있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홀로 공부했던 것보다 팀으로 협업했던 경험이 실무에서 크게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손으로 함께 작업하여 대중 앞에서 자신 있게 발표를 해 보았던 경험은 단기기억을 출력하여 받았던 고득점보다도 더 유용한 자산이었다.  


캠퍼스(Campus)에 나타난 지진운(地震雲)


캠퍼스는 그 사이에 80년대생들이 다 빠져나가고, 90년대생들이 들어왔으며, 이제는 2000년대생들이 곧 반수 이상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런 요즘 대학생들에게서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식이 있으니 교수님에게 팀 프로젝트의 부당함을 읍소하거나 팀플이 있는 과목을 기피한다는 이야기들이다. 80년대생들도 사실은 똑같이 부당하다고 느꼈었다. 80년대생들은 침묵했지만 90년대생, 2000년대생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는다. 그게 미세한 차이다. 게다가 그들은 직장에 들어와서도 ‘공동체 단위의 평가’에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곤 한다. 이것을 바라보는 80년대생들은 심경이 복잡하다.

교수님에게 팀 프로젝트의 부당함을 읍소하거나 팀플이 있는 과목을 기피한다는 이야기들이다.


'80년대생'들의 '무의식적 공동체의식', '의식적 개인주의'


80년대생들은 ‘연대책임’과 ‘공동체 의식’을 어렸을 때부터 반복적으로 학습하여 무의식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듯 하다. (나는 초등학교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며 등교했고, 고등학교 때도 ‘교련’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개인주의’적인 가치관이 후천적으로 학습되었고, ‘무의식’이 아닌 ‘의식’ 수준에서는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분노감도 존재하는 것 같다.


'Z세대'의 키워드는 '공정성'이다


뭔가 부당하다는 느낌은 있지만 의식의 지배와 컨트롤로 표출하지 않았던 80년대생들과 달리 90, 2000년대생들은 즉각적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가장 못 참는 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느낄 때’이다. 예를 들면 이와 같은 질문들이 수면 위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왜 팀의 퍼포먼스로 내 개인 점수를 매기는가?
왜 우리 팀에는 일하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나와 똑같은 점수를 받아가는가?
열심히 하나 그렇지 않으나 왜 나에게 주어지는 댓가는 같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나?


사실 그들이 던지고 있는 질문들은 비단 캠퍼스에만 던지고 있는 질문은 아닐 것이다. 그들은 캠퍼스에서 던지던 질문을 회사에 고스란히 가지고 들어왔다.

왜 우리의 사무실 도처에는 월급 루팡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리하고 있는가?
왜 고생은 우리가 하고, 고액 연봉은 저들이 가져가는가?
왜 스트레스와 야근은 우리 몫인데 업적과 그로 인한 영광은 상사의 몫인가?
그렇다면 나는 왜 이 일을 해야하나?


저물어가는 '팀플'의 시대


사실 객관적 현실을 알면서도 앞선 세대들에서는 차마 묻지 않던 질문들인데 90년대생들은 스스로에게, 그리고 공동체에게 묻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속으로는 되바라진 요즘 애들 취급을 할지언정 이제는 겉으로라도 그들의 요구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억압해봐야 효율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기업들은 개인들의 아이디어들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 표면적으로라도 조직 구조를 수평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라도 조직 구조를 수평적으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이른바, ‘팀플’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것이다.


'80년대생'들의 애매한 포지션


그리고 80년대생들은 여전히 포지셔닝하기가 어렵다. 어쩌면 영원한 주변인이 될런지도 모르겠다. 

어떤 이들은 ‘너네는 나중에 팀장 안 할거야?’라며 기성세대의 입장을 변주하지만 사실 본인도 팀장이 될 수 있을는지 장담할 수 없다. 또 어떤 이들은 90년대 이후에 태어난 직원들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다가가보지만 사실 매사에 도전적이며 이상적인 그들이 전부 이해되지는 않는다.


사실 어떤 포지션도 애매하다.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80년대생'


어쩌면 지진운이 뜨고 나서 강한 지진이 일 듯, 캠퍼스에서부터 이러한 상황은 예견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더 이상 팀플에서 ‘프리라이더’들이 설 자리는 없다. 그들은 과제에서 이름이 파일 것이며, ‘공정성’에 대한 시대의 강력한 요구의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90, 2000년대생들은 사회 생활로 진군할 것이다. 그들의 다음 타겟은 아마도 '월급 루팡'들이 될 것이다. 그리고 80년대생들은 그 모습들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측은한 그들을 위로하며..


캠퍼스에서 '팀플'의 '프리라이더' 몫까지 밤을 새워 메꿔나갔던,

그리고 지금도 월급 루팡들이 파 먹은 구멍들을 메꾸느라 애쓰고 있을,

위로는 상사 밑으로는 부하직원들의 눈치를 보고 있을,

측은한 80년대생들에게 같은 동년배로서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측은한 80년대생들에게 같은 동년배로서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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