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어 좀 많이 늘어서 왔어요?

'언어'는 '소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by 이음

네 살 아이의 '베이징에서 한 달 살기'


네 살 아들은 비자로 허락된 한 달을 정확히 채우고 귀국했다.


처음부터 한 달을 계획한 것은 아니었다. 설마 한 달 이상을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기에 처음 비자 신청을 '최대 기간'인 한 달 체류 비자로 신청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그 한 달 내내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거꾸로 집에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한숨이 깊어졌다는 후문이다.

이모와 함께 베이징으로 날아갈 때만 해도 한국에 돌아올 걱정을 하지는 않았겠지?


아들의 의사를 존중한 이모는 결국 영원이와 베이징에서 한 달동안을 지냈다. 그냥그냥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정말 알차게 놀아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처제에게 선물로 테라바이트 분량의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영원이의 일정과 어록이 담긴 약 60페이지 분량의 파일을 받을 수 있었다. 아들은 결국 자발적으로 집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비자 기간 만료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오게 되었다.


나 한국 가서 밥 잘 안 먹으면 다시 중국 보내주겠지? 비자 다시 사서?


이것이 아들이 이모에게 남긴 귀국 전 날의 말이었다고 한다.

KakaoTalk_20190109_051801195.jpg 돌아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 우수에 찬 아들의 표정



네 살 아이의 '베이징에서 한 달 살기' - 언어편


언어의 목적


'언어'는 '소통'을 위한 '수단'이다. 우리가 '외국어'를 배우는 이유는 나와 쓰는 언어가 다른 사람과도 원활하게 생각과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외국어'는 세계 무대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언어'가 학업이나 취업을 이어가기 위한 하나의 '스펙'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보니 중요한 명제가 무너져 버린 듯 하다. '언어'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리는 현상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언어'를 쓰는 사람을 대단하게만 보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불필요한 열등감을 갖게 된다. 아이 엄마들은 '경쟁에 뒤쳐지지 않게 하기 위해', '열등감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언어 조기 교육을 강행한다. 하지만 무수한 연구 결과들은 부모들의 '강한 압박'을 통한 언어 교육이 오히려 학습 동기 부여를 저해함을 증명하고 있다.


언어는 '스펙'이 아니에요


언어의 목적이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임을 생각하면 언어를 바라보는 관점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많이 알려진 블라인드 실험은 이를 증명한다. 어떤 이의 영어 연설문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이 발언자의 영어 실력을 평가해보라고 했을 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그의 영어가 형편 없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그 연설은 실제 세계 무대에서 세계인들의 가슴을 뛰게 하고 이목을 집중시켰던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의 명연설이었던 것이다. 이 실험은 한국인들이 '언어'를 대함에 있어서 얼마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지를 보여준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에서 우리들은 좀처럼 벗어나기가 어렵다. 내 언어 구사가 '외국인인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가'보다 '내 발음이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세련되게 보이는가'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 '언어'는 '본질'을 잃고, 나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 정도로 표류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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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나는 5년간 초등학교 교사들의 영어 심화 연수를 담당했었다. 그 연수에서 가장 큰 난관은 클래스가 한국인들로만 이루어져있다는 점이었다. 한국인들은 한국인들 앞에서 외국어로 말하는 것을 꺼려한다. 언어가 '스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발음이 좋지 않은 사람은 쉽사리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대를 울려내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실제로 발음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조차도 오히려 튀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발음을 '콩글리쉬'의 발음으로 조정한다. 한국인 영어 클래스가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가장 강력한 이유이다.

내가 놀랐던 것은 '콩글리쉬'로 평준화 되었던 초등교사들이 해외 연수에 나가서 홈스테이 호스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볼 때였다. 그들은 한국인들과 함께일 때처럼 수줍어 하지 않았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당당하게 외국인들과 소통하며, 부족한 발음이나 어휘들은 그 자리에서 도움을 얻어 더 정확하게 말하곤 했다.

사실 해당 언어가 쓰여지는 현장에 나갔을 때,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있다. 어쩌면 현지인들 앞에서 언어를 쓴다는 것은 더 어렵고, 더 긴장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나의 경험을 비추어보아도 오히려 외국인 앞에서 외국어를 하는 것이 실력에 관계 없이 더 편하고, 더 자유로우며, 더 재미있게까지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내 발음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덜 신경쓴 결과가 아니었을까? 내 언어를 나 자신의 스펙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서부터 탈출한 결과가 아니었을까? 오히려 진정으로 소통하기를 원하는 그들 앞에 '사람'과 '사람'으로 이어지는 기쁨을 온전히 느낌으로 오는 자유함이 아니었을까?


네 살 아이에게 있어서 중국어란?


이모와 함께 한 '김영원의 중국어' (2016년, 23개월 당시)


네 살 아이가 한 달동안 베이징에 있다가 돌아왔을 때, 주변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것이었다.


중국어 좀 많이 늘어서 왔어요?


물론이다.

언어를 알고자 하는 욕심이 있는 아이가 중국어를 주로 쓰는 도시에서 중국어를 잘 하는 이모와 함께 한 달을 살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영원이에게 있어서 '중국어'는 이모와 함께 행복한 중국 생활을 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그저 이모와 재미있게 놀기 위해, 베이징을 더 즐기기 위해 중국어에 파고들 수 있었다.

KakaoTalk_Moim_7ZW9ck28s9ER6G0UbaWlZ6juG2dTWy.jpg 그는 그저 이모와 재미있게 놀기 위해, 베이징을 더 즐기기 위해 중국어에 파고들 수 있었다.


하지만 영원이의 중국어는 대부분의 어른들에게 '신기한 재롱'으로 보이거나, 또래 엄마들에게는 '조기 언어 교육'의 자극제 정도로만 활용되는 듯 하여 아쉬움이 크다. 정작 네 살 영원이에게 있어서의 '중국어'는 스펙도 아니요, '자랑거리'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의 언어에 대한 '즐거움'이 끊이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소박한 욕심은 과연 잘못된 것일까.

네 살 밖에 안된 영원이에게 언어의 흥미를 유발하고, 자극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에 대해 정말 감사하다. '베이징에서 한 달 살기'는 앞선 글에서도 기술했지만 부모와 아이의 의지가 필요했던 일이었고, 의지가 있더라도 환경이 마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누구나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니었기에 더 감사하고, 아이의 가장 좋은 선생님이자 가장 좋은 친구가 되어준 처제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언어, 신비의 세계


언어는 참으로 신비한 세계이다. 이미 '사고의 울타리'를 쳐 버린 어른들에게는 열려 있지 않은 영역들이 신기하게도 아이들에게는 열려 있다. 그렇기에 네 살 아들의 '베이징에서 한 달 살기'는 아직 울타리가 쳐져 있지 않은 아이의 언어 세계에 큰 변화를 준 것 만큼은 분명하다. 그것은 한국에 돌아온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며, 네 살 아들은 '다섯살'이 되어 다시 중국에 갈 계획을 짜고 있다.

언어의 신비: 여러 단어들을 조합하여 문장을 만드는 것도 신비의 영역이다



'장벽'을 허무는 아이가 되길


국경이 촘촘하게 그어진 곳에 살면서 여러 언어를 접하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언어와 문화 속에서 다양한 생각을 공유하며 살 수 있다면. '언어'는 그저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나의 도구임을 모두가 동의하고 산다면.

마치 '바벨탑'의 욕심이 인간의 언어를 갈기갈기 찢어놓았지만, 처음에 이 땅에 교회가 생겼을 때 각 나라의 사람들이 각 나라의 언어로 마음과 생각을 나누었던 것처럼 그렇게.

멀지 않은 훗날, 영원이가 언어와 문화, 세대로 나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로 봉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오늘도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는 우리의 온기 속에 흐르고 있다.

영원이의 글로벌 숫자 세기(한국어, 중국어, 영어)


그리고 네 살 아이의 '베이징 한 달 살기'는 '언어' 뿐 아니라 우리의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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