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출국,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방법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을 쓰거라

by 이음

두 번째 이별


영원이의 두 번째 출국은 증조외할머니의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이루어지긴 했지만 우리는 모두 밝은 모습이었다. 영원이의 첫 출국 때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삼촌의 손을 잡고 떠났던 중국, 그 곳에 오늘은 사랑하는 이모의 손을 잡고 다시 떠난다.

첫 번째 출국에서는 아빠와 외삼촌이 함께였다면 두 번째 출국에는 엄마와 외삼촌이 동행했다. 영원이의 외삼촌은 늘 뒤에서 든든하게 우리를 섬겨주는 후원자였다. 늘 장거리 운전을 마다 않고 한 걸음에 달려와주는 고마운 처남.

영원이는 늘 한결 같이 씩씩했다. 녀석은 시종일관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했고, 부득이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나에게까지 사랑을 표현한 후, 이모의 손을 붙잡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녀석은 시종일관 엄마에게 사랑을 표현했고, 부득이 그 자리에 함께 하지 못한 나에게까지 사랑을 표현한 후, 이모의 손을 붙잡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네 살 아들의 첫 번째 출국: 독립


첫 번째 출국은 네 살 아들의 ‘독립’에 큰 의미가 있었다. 녀석은 여전히 우리의 체온을 필요로 하는 아이였지만 본인의 의지에 따라 ‘독립’을 시도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도, 아침을 먹을 때도, 장을 볼 때도, 교회에 갈 때도, 책을 읽을 때도, 밤에 잠을 청할 때도 늘 함께 하던 엄마, 아빠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아이에게도 큰 사건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가 원하는 발걸음을 떼기 위해서 부모와의 분리도 서슴지 않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이의 ‘독립’을 함께 응원하며 매순간 홀로 엄마, 아빠의 역할을 다해준 이모가 있었다. 그렇게 네 살의 아들은 성공적으로 부모로부터의 독립에 성공했었다. 돌아와서도 한동안 후유증을 앓을만큼 중국에서의 시간은 행복했고, 아이의 사고와 식견을 충분히 확장해주는데 크게 일조했다.

우리의 시도는 분명 특별한 것이었다. 부모도 아이도 의지가 생기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의지가 있더라도 여건이 허락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그 모든 ‘and’ 조건을 통과하여 영원이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마치 신이 영원이의 생전부터 계획한 프로젝트인 것처럼. 우리는 마치 꿈을 꾼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었다.

첫 번째 출국은 네 살 아들의 ‘독립’에 큰 의미가 있었다.


네 살 아들의 두 번째 출국: 각자의 자리


두 번째 출국은 엄마와 아빠, 영원이, 이모가 각자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중요한 가치를 지켜내는 것에 큰 의미가 있었다.

지금 아내는 소원이의 육아와 함께 평생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외할머니와의 데이트를 병행해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급한 일을 하기 위해 중요한 것을 희생시키곤 하지만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경험을 통해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급한 것보다 중요한 것을 우선하며 살아야겠구나. 가족들을 사랑하는 일. 사랑을 표현하는 일. 살아있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일. 그것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아내에게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호스피스 병동이 당분간 있어야 할 자리였다.

나는 학생들이 호흡하는 우리 대학의 캠퍼스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 아내가 중요한 일을 하는 동안, 나도 나의 자리를 지켜야 한다.

그리고 영원이와 이모는 베이징이 당분간 있어야 할 자리이다.


영원이가 원래 있던 한국의 자리를 잠시 떠난 이유는 어쩌면 더 중요한 일을 이루시기 위한 신의 섭리일수도 있겠다.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신의 섭리를 이루는데 일조하기로 했다.


한석봉의 어머니는 그러한 원리를 잘 알고 계시는 분이리라. ‘글을 쓰는 것’과 ‘떡을 써는 것’은 외양적으로는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길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글을 대신 써줄수도 없는 노릇이고, 아들이 어머니의 떡을 대신 썰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들은 각자의 자리를 지킴으로써 많은 것들을 이루어냈다.

file513194311.jpg ‘글을 쓰는 것’과 ‘떡을 써는 것’은 외양적으로는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길이다.


'내 앞가림'이 아닌 함께 사는 길


우리의 삶은 생각보다 유기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부부의 삶은 유독 그러하다.


나는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러 왔던 사람들 앞에서 이러한 서약을 했었다. 나와 아내를 별개의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여기겠다고. 그것은 아내를 곧 나의 일부로 여기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때까지 그 말을 현학적으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IMG_1200.jpg 나는 우리의 결혼을 축하해주러 왔던 사람들 앞에서 이러한 서약을 했었다.
IMG_1206.jpg 나와 아내를 별개의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여기겠다고. 그것은 아내를 곧 나의 일부로 여기겠다는 뜻이었다.


아내와 삶을 살아보니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내 앞가림’만 하고 살았던 것이다. 어린아이가 웃기만해도 칭찬 받았던 것처럼, 소화만 잘해도 칭찬 받았던 것처럼 나는 당연한 것들에 칭찬받으며 살아왔다.

공부를 열심히 하면 칭찬받았고, 취업을 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나온 것조차 사실은 다 은혜로 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칭찬을 받았다. 재정적 독립을 대학생 때 이룬것도 사실 나의 생존과 관련된 지극히 좁은 영역에서의 성취였다. 나는 잘 살아온 것 같지만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인생’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나의 인생과 동일시할만큼 사랑하거나 아파하거나 해 본 경험 없이 나는 칭찬만 받으며 지내왔던 것이다.

물론 아내를 결혼 전에도 진심으로 뜨겁게 사랑했다. 나는 아내에게 사랑을 고백한 후, 그녀의 마음을 얻기까지 ‘5년’을 기다렸다. 그 정도의 인내를 보인 것으로 나는 내 사랑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마음으로 충분히 아내를 사랑하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내 착각이고, 교만이었다.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것은 ‘아내’가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는 멋진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IMG_0370.jpg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것은 ‘아내’가 아니라 ‘아내를 사랑하는 멋진 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아내와의 결혼에 골인해서 너무나 행복하고 기뻤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다. 나는 ‘내 앞가림’에 너무도 익숙해서 ‘함께 가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나에게도 아내에게도 극복해야 할 과제였다. 나는 그제서야 내가 결혼식장에서 외쳤던 ‘뼈 중의 뼈, 살 중의 살’ 발언의 의미를 삶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녀를 내 삶에서 분리할 수 없다는 것. 그녀의 잘못도 사실은 나의 잘못이며, 그로 인해 책임을 묻는다면 그녀가 아닌 나에게 물어야 한다는 것을 아내의 기다림 속에 알게 되었던 것이다.

외출 준비가 늦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나는 종종 아내 탓을 하곤 했다. 하지만 돌아보면 나는 내 준비를 다 하고 나서는 하는 것이 없었다. 그동안 '내 앞가림'하고 사느라 '나의 준비'와 '아내의 준비'는 별개의 것으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이것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부부 생활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아내의 핸드폰을 함께 챙기는 습관이 들었다. 나는 조금씩 ‘내 앞가림’의 프레임에서, 그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내의 '아픔'은 '내 아픔'보다 더 크게 느껴졌고, '아내는 곧 나'였다. 내가 나보다 아내를 더 사랑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고, 아내의 자존심을 내려놓은 인고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하나의 가치를 향해서


우리는 각자의 자리를 지킨다. 한석봉의 어머니가 떡을 썰고, 그의 아들이 글을 썼듯이. 내가 하는 일이 곧 아내가 하는 일이며, 아내가 하는 일이 곧 내가 하는 일이다.


나는 ‘살아계신 가족에게 사랑으로 최선을 다하는 가치’에 관해 아내와 ‘한 마음’이었다. 그렇기에 아내가 호스피스 병동에서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곧 내가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학에서 일하는 교직원이다. 그렇기에 나는 ‘학생들의 행복’이라는 가치를 마음에 담고 일을 한다. 아내는 그 공간에 함께 몸담고 있지 않지만 내가 가진 직업의 본질과 가치를 공유한다. 그렇기에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내가 보기에는 아내는 우리 대학의 ‘섬김이’다. 그녀는 내가 속한 직장을 '그녀의 직장'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나의 직장인 대학 공동체의 아픔과 기쁨에도 함께 한다.


처제는 자신의 인생에서 중대한 일들이 눈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할머니와 언니의 시간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희생했다. 그녀는 영원이와의 시간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처제는 그렇게 영원이와 함께 함으로써 그녀의 외할머니와 함께 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러함으로 오히려 한 곳에서 만난다.

KakaoTalk_20190104_123719997.jpg 우리는 그렇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러함으로 오히려 한 곳에서 만난다.

우리는 오늘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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