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호스피스 병동에 남겨진 세 사람

by 이음

어느 날 아침의 전화


아내의 외할머니께서 급작스레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건, 2018년 11월의 어느 날 아침이었다. 출근을 하려는 찰나, 아내가 다가와서 그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내의 음성은 상황에 중대함에 비해서 단호했고, 비교적 절제되어 있었다. 그것은 우리가 감정의 동요로 인해 시간을 쓸 여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우리는 그 날 아침, 그 찰나의 시간에도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데에 망설이지 않았고, 망설일 수 없었다.


그 해 6월의 갑작스런 이별을 떠올리다


우리는 소리 내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 해 초여름에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아내의 할아버지는 건강하신 분이었다. 매일 새벽마다 그 분은 자신의 건강을 위해 현관문을 나서시곤 했다. 비나 눈조차도 그 분의 성실함과 꾸준함을 막지는 못했다. 덕분에 칠십대 후반이었던 그 분의 신체에는 이삼십대에도 가지기 힘든 매끈한 근육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날은 6월치고는 조금 쌀쌀한 날씨였다. 할머니도 할아버지의 권장 때문에 운동을 더 열심히 하셨다. 함께 출발하여 중간에 코스가 나눠지기도하였는데 그 날은 할아버지께서 다정하게 인사하시고는 먼저 출발하셨다.


나 먼저 갈게


그 인사는 결국 할아버지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다시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셨다. 운동 중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신 할아버지는 가족들에게조차 인사할 시간을 주지 않으셨다. 다른 가족들은 물론이고 할머니께서 연락을 받고 병원에 이르렀을 때조차도, 이미 할아버지는 운명하신 뒤였다.

할아버지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맞아야 했던 이모와 영원이(2018년 6월)


죽음은 그렇게 예고 없이 불쑥 찾아오는 것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었을 때,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혹자들은 '황망하다'는 표현을 쓰곤 하지만 그 감정을 담아내기에는 많이 부족한 단어임에 틀림이 없다.


세 가지의 기회가 필요했다


외할머니의 임종에 앞서 우리에게는 세 가지의 기회가 필요했다.

적어도 얼굴을 맞댈 기회,
사랑을 표현할 기회,
그리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나눌 기회.

우리는 경험을 통해 조물주가 우리가 바라는 타이밍대로 죽음을 주시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세 가지 기회는 자연스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명확해야 가능했다. 그리고 기회비용을 무릅쓴 실천이 필요했다. 아내는 늘 이러한 중요한 순간에 용기를 내곤 했었고, 겁이 많은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 날 회사에 출근한 뒤, 실장님께 그 날 하루 휴가를 쓰는 것을 상의드렸다. 다행히 회사에는 분과 초를 다투는 급한 일이 있지는 않았다. '돌아가시고 나서 속절없이 후회하는 것보다 살아계실 때 찾아뵙는 것이 낫다'는 실장님의 배려 속에 나는 연차를 내고, 아내와 아이 둘을 차에 태워 창원으로 향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다


우리가 도착한 창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의 공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웠다. 삶과 죽음이 수시로 교차하는 그 공간에 삶이 한창인 아이 둘을 데리고 도착한 것은 그 날 정오쯤이었다.

호스피스 병동은 상식적으로 '노키즈존'임을 인지하고 있었다. 조금의 소음도 죽음을 눈 앞에 둔 누군가에게는 마지막 기본권을 유린당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순하고 조용한 아이들이라 해도, 분명 조심스러운 동행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세 가지 기회를 얻는 것이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였기에 우리는 우리의 발걸음을 주저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도착한 창원의 한 호스피스 병동의 공기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무거웠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오랫만에 뵌 아내의 외할머니의 모습은 내 몸을 경직시키기에 충분했다. 만나뵈면 어떤 이야기들을 하고, 어떻게 기도할지를 생각하고 갔지만 그 모습을 보고는 나는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늘 손주사위의 손을 꼭 붙들며 잘 살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반복하시던 외할머니셨지만 강한 진통제 때문인지 그 분은 느린 속도로 눈만 꿈뻑이실 뿐이었다. 나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그 공간 속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날, 나는 아내의 외할머님을 뵙기 위해 여러가지 용기를 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여 있는 그녀 앞에서, 나는 입술을 떼어 사랑을 표현하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나누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다.


'지금 나의 나직한 목소리조차 이 분에게는 사랑이나 위로가 아닐 수도 있겠다. 오히려 이 분의 평안을 방해하는 일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생각들이 나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저에게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지고 있는 로스타임(losstime) 상황에서 골키퍼까지 총 공격에 나선 축구 팀의 주장과 같은 상황이었다. 상황은 그러했지만 나의 근육은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쥐가 난 것도 아니고,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데. 그렇게 생전 느껴보지 못한 무기력함이 나를 지배할 줄은 몰랐다.


아내에게 미안했다. 나의 무기력함이 로스타임에 몰린 우리 팀의 키 플레이어인 아내에게 너무나 큰 사기 저하를 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아내에게 미안함을 그리고 지금 나의 무기력함을 토로했다.

아내는 나를 원망하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여보, 어쩌면 저에게 시간이 더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내의 절제된 한 마디는 우리가 가지고자 했던 세 가지 기회가 한 번의 이벤트로서는, 일회성으로는 결코 주어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아내가 두 아이를 데리고 호스피스 병동에 남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내의 절제된 한 마디는 우리가 가지고자 했던 세 가지 기회가 한 번의 이벤트로서는, 일회성으로는 결코 주어질 수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에 나온 것이었다.


현실의 어려움들


둘째 아이는 이제 불과 생후 5개월이었다. 면역력을 갖추지 못한 어린 아기가 당면한 죽음과 힘겹게 싸워가는 사람들 속에서 오랜 시간을 있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한참 기어다니는 아기인데 병실의 구조는 침대식이라 1인실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맘놓고 기어다닐 공간조차 없었다. 게다가 아기는 울게 마련인데 외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병실의 환자들에도 그것은 큰 어려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결단과 관계 없이 아이들 때문에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간병을 병행해야 할 아내도, 한창 뛰어 놀아야 하는 4살아이가 호스피스 병동 안에 갇히는것도 걱정이었다. 다른 가족들조차 아내의 결단에 대해 많은 우려, 아니 반대를 표명했다. 그 반대의견은 이성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반박하기 어려웠다.

둘째 아이는 이제 불과 생후 5개월이었다. 아이들을 돌보는 일과 간병을 병행해야 할 아내도, 한창 뛰어 놀아야 하는 4살아이가 호스피스 병동 안에 갇히는것도 걱정이었다.


결단


우리는 그 상황을 내려놓고 신께 맡기기로 했다. 모든 어려움을 알았지만 아내는 두 아이와 함께 삶과 죽음의 경계인 그 호스피스 병동에 남기로 했다. 다행히 그 날 밤에 중국에서 처제가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간신히 붙잡고는 이 분의 영혼을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짧게 올렸다. 그리고는 할머님 외손녀가 할머님을 무척이나 사랑한다고, 그래서 아내가 좀 더 남아 외할머님과 함께 있으려한다는 말씀을 드리고는 급히 나와 전주로 오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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