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후유증이 극심했다
아내의 고향은 포항이다. 나의 고향은 서울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주에 산다.
우리는 명절을 맞으면 대략 900km 정도를 달리곤 한다. 전주에서 포항까지가 대략 300여km, 포항에서 서울까지가 약 400km, 서울에서 전주까지가 200여km이므로 이 거리를 합쳐보면 900km가 넘는다. 우리 집 아이들은 태어나자마자 장거리 여행에 있어서 비교적 고강도의 훈련을 한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하여 작년 초에 구입한 우리의 새차는 단 2년만에 6만 고지를 눈 앞에 두고 있다.
가족들이 한 지역에 모여살 수 있다는 것은 참 부러운 일이다. 우리도 전화 한 통으로 저녁식사 자리에 가족들을 다 불러모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를 상상하곤 한다. 그나마 서울 가족들은 우리 가정만 올라가면 모일 수 있다고 치더라도 포항 가족들이 모이려면 중국에 있는 처제와 서울에 있는 처남이 포항으로 모여야 하기에 많은 시간과 자원을 투입해야 한다.
하지만 1년에 3만km를 달리면서 얻는 좋은 점들도 많다. 물론 3만km라는 거리는 가족들만을 만나기 위해 달린 거리는 아니고, 가족들만큼이나 뿔뿔이 흩어져있는 나와 아내의 친구들을 만나러 달린 거리이기도 하다.
첫째, 멀리 왔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 그 곳에서 자야하는 일이 생기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둘째, 가족을 방문하면서도 매번 여행하는 것 같은 설레임을 누릴 수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나와 아내, 아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맥락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영원이는 친가와 외가를 오가며 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매우 큰 문화의 차이를 경험하곤 한다. 일단 세대가 다르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는 아내의 조부모님, 외조부모님보다 연세가 많다. 아들에게는 똑같이 ‘할아버지’라 할지라도 사실상 ‘한 세대’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 항렬로 내려와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외가에서는 ‘10대의 이모’가 있는 반면 친가에는 ‘20대의 누나’가 있다.
하지만 아마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가장 큰 차이는 ‘언어의 차이’가 아닐까. 아들은 언어감각이 매우 발달한 편이라 언어의 미묘한 차이를 감각적으로 잘 알아채곤 한다. 그는 경상도에 가면 경상도 방언으로, 전라도에서는 전라도의 방언으로 말할 수 있다. 게다가 친할머니와 외증조할머니는 모두 충청도의 방언을 많이 쓰시는 분들이신데 이 분들의 언어도 거의 똑같이 복사하여 응용한다.
아내는 생각했다.
이 아이가 유럽 같이 촘촘히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 혹은 4개 국어를 사용하는 스위스 같은 곳에 살았다면 지금 여러 지역 방언들과 중국어를 구사하는 것처럼 몇 나라의 언어를 구사하고 살았겠구나
그리고 그의 절친이자 연인인 이모를 통해서 ‘중국어’가 또 하나의 언어로 자리를 잡았다.
‘자신이 살고 있는 맥락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가치’라는 것은 나와 아내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나그네와 같았다. 이제는 나그네의 삶을 아들과 딸에게 물려주고 있는 셈이다. 나그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몸담고 있는 사회에서의 법을 따르되 그것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몸 담고 있는 사회에서 최선을 다하지만 그 곳이 ‘최종 종착지’라고 여기지 않기에 마음에 여유를 늘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어떤 사회의 맥락에 정착하고 안주하여 그것을 절대적으로 옳은 것으로 여기면서 사는 것만큼 편한 일도 없다. 내가 속한 나라가, 내가 속한 도시가, 내가 속한 공동체가 절대적인 ‘선’이라고 여기면서 살 수 있다면, 사리분별과 가치판단이 불필요할만큼 그 사회의 맥락에 푹 빠질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편한 삶일 것이다. 스스로를 객관화할 필요도 없으며, 이게 맞는 일인지 돌아볼 필요도 없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좋겠다.
하지만 하나님은 감사하게도, 그리고 안타깝게도 아내와 나, 그리고 큰 아이의 DNA에 그런 인자를 심어주지 않으신 것 같다.
네 살 아이에게도 여행의 ‘후유증’은 극심했다. 아들은 첫 번째 간 중국에서 보름을 채우고는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온 후, 아들이 가장 먼저 꺼낸 것은 다름 아닌 ‘국기 카드’와 '세계지도'였다.
아들의 여행 후유증은 중국을 그리워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았고, 세계지도를 보며 이 지구 위에는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를 탐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제 그는 아시아와 아메리카, 유럽 대륙에 있는 주요 국가들을 국기와 세계지도를 바탕으로 찾을 수 있다. 그는 중국을 보고 와서 중국의 매력에만 빠진 것이 아니었다. 아들은 진정 지구‘촌(村)’의 세계로 점점 진입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우리나라가 전부가 아니구나
더 넓은 세상이 존재하고 있구나.
책에서 보는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의 삶은 어떨까?
그런 모습이 믿기지 않지만 확연히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갈구하기 시작했다. 중국 외에도 프랑스, 영국, 일본, 이스라엘, 캐나다, 러시아, 스웨덴에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언젠가 녀석은 추운 나라에서 살고 싶다며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영원: 캐나다에서도 살고 싶고, 러시아에서도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아빠: 음.. 영원이는 이번처럼 여행을 하고 싶은거야? 아니면 그 곳에서 살고 싶은거야?
영원: 그 나라 사람처럼 살고 싶어요.
아빠: 그러려면 그 나라에서 일을 해야 할텐데?
영원: 한 나라가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나라를 옮기면서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이 있냐고 나에게 물었을 때, 번뜩 ‘외교관’이 생각났다. 나는 ‘외교관’이라는 직업을 아들에게 소개해주었고, 그 때부터 영원이는 ‘외교관’이 되어 ‘국가간의 분쟁을 중재’하고, ‘죽어가는 지구를 살리는’ 놀이를 하곤 한다.
엄마와 이모의 영향으로 아이에게는 하나의 언어 습관이 생겼다. 어떤 문화나 현상을 설명할 때 ‘우리 나라에서는’이라는 단서를 붙이는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지’와 같은 식이다. 그동안 엄마가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오는 문화가 '우리 나라'의 문화임을 가르쳐 온 결과이다. 엄마가 ‘어떤 나라에서는 집에 신발을 신고 들어간다’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아이에게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이제 ‘신발을 벗고 집에 들어가는 행위’는 아이에게 ‘절대적’인 문화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모가 알려준 ‘인도 사람들 중에는 손으로 밥을 먹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아이에게는 굉장히 신선했던 것 같다. 이제는 ‘수저와 젓가락을 사용하는 문화’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누군가는 ‘수저’로, 누군가는 ‘포크’로, 누군가는 ‘손’으로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아이의 생각의 폭을 엄청나게 넓혀준 것 같다.
그 ‘생각주머니 폭발’은 ‘홀로 중국을 다녀온 경험’을 통하여 더욱 가속화되고 있었다.
영화 ‘매트릭스’를 기억하는가?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파란약’과 ‘빨간약’을 양쪽 손에 든채로 네오(키아누 리브스)에게 제안한다. ‘파란 약’을 먹으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다고. 진실을 보지 못하고 ‘거짓의 세계에서 평범한 일상’을 함께 한다고 말이다.
반면 ‘빨간약’을 먹으면 갈 때까지 간다고 말한다. ‘파란약’으로부터 파생되는 거짓의 세계를 뚫고 진실의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말이다.
나는 어느 순간인지 모르겠으나 ‘빨간 약’을 먹은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그저 평범한 일상을 누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을 때가 많다. 어느 순간 내가 속한 나라, 도시, 공동체가 스스로 객관화되어 나에게 다가올 때면 나는 그에 대한 애정과 객관적인 분별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 없이 갈등한다. 그러는 사이 ‘평범한 일상’은 저 멀리 뭉게구름처럼 서서히 사라져버리곤 했던 것이다.
‘빨간 약’을 먹은 나그네의 삶. 그 고달픔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았는데. 뭐야 이 녀석. 벌써부터 빨간 약 초기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 먼저, 질문이 많다. ‘파란 약’을 먹었다면 질문 없이 모든 것이 원래 그런 줄로 알고 살아야 하는데 모든 것이 다 궁금하고, 특히 왜 그러는지가 궁금하다. 이 녀석, 답을 찾을 때까지 고민하는 것을 보면 편하게 살기는 어려워 보인다.
영하 '매트릭스'에서 키아누 리브스가 연기한 '네오'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용기'였다. 거짓된 매트릭스 안에서 안주하며 편안하게 살 것인지,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와 모험을 하며 살 것인지는 주인공의 선택이었고, 빨간 약을 선택하는 것에는 '용기'가 필요했다.
나는 가끔 우리의 교육이 아이들을 매트릭스에 가두어놓는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다. 문제는 영화처럼 본인이 용기를 낸다고 해도 탈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닌 것에 있다. 아이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주변 사람들의 용기인 것 같다. 아이들의 마을이 되어주는 사람들, 그들이 함께 용기를 내어 아이들을 더 큰 세상으로 내놓아주지 않으면 아이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사회적 맥락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며 다양성에 대한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잃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용기를 내는 방법이 꼭 여행일 필요는 없을 듯 하다.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될 수도 있고,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접하도록 통로가 되어주는 방법도 있다.
그런 면에서 나는 아이의 마을이 되어준 사람들, 특히 그의 이모와 그의 어머니인 아내에게 참 고맙다. 그들은 아이가 더 넓은 세상을 만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두려워하는 쪽은 아빠인 나였다. 그렇기에 아내와 처제는 두려움 속에 있는 나에게도 함께 용기를 주어야 했다.
아마 그녀들은 앞으로도 아들이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대로 행동하며 살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네 살 아들 녀석은 부모가 집 한 구석에 흘려놓은 빨간 약을 주워먹고는 빠르게 매트릭스를 벗어나고 있었다. 물리적인 탈출이 아니다. 그의 마음이 이미 사회적 맥락에 가두어놓을 수 있는 상태를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삼면이 바다로, 북으로는 철책으로 둘러싸여 본의 아니게 섬이 되어버린 그의 나라. ‘양반의 도시’에 쇳덩어리가 왠말이냐며 철도마저 다른 곳으로 꺾어야만 했던 그의 도시. 그럼에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우리 나라, 우리 공동체. 그는 빨간 약 복용이 가져올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그래서 우리네 부모님들이 튀지 말고, 순리대로 살라고 그렇게 말씀하셨었구나. 빨간 약을 안 드셨던 것이 아니라 드셔보니 아파서였던 거구나. 내 자식이 아프면 안되니까.
그렇게 네 살 아들은 홀로 중국을 다녀온 사건을 기점으로 ‘아빠’라는 감옥, 그리고 ‘매트릭스’라고 비유될 수 있는 감옥에서 빨간 약을 먹고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와 아내는 그런 아들을 기쁜 마음으로 걱정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