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은 가능할까?

'아들'을 '아빠'라는 '감옥'에서 '탈출'시키기

by 이음

반갑습네다, 반갑습네다


네 살 소년이 베이징에 도착한 다음 날, 그는 놀랍게도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곳에 가 있었다. 그 곳은 다름 아닌 ‘북한식당’이었는데 음식과 공연을 함께 제공하는 곳이었던 것 같다.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북한 누나’들을 만난 것은 영원이에게나 ‘북한 누나’들에게나 꽤나 반가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나는 여러 공연 동영상들과 함께 ‘북한 누나’들과 함께 찍은 아들의 사진을 처제로부터 받아보았다. 아들은 베이징에 도착한 첫 날부터 그 곳이 마치 자신의 무대인 듯 즐기는 것 같았다.

mmexport1530539618953.jpg 말도 통하지 않는 중국에서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는 ‘북한 누나’들을 만난 것은 영원이에게나 ‘북한 누나’들에게나 꽤나 반가운 일이었던 모양이다.


아들과 영상 통화가 성사되자마자 그가 부르는 노래는 다름 아닌 ‘반갑습네다’였다. 아마도 ‘북한식당’ 공연의 엔딩송이었던 것 같은데 멜로디가 쉽고 단순하다보니 입에 완전히 붙은 듯 했다. 나는 아들이 집에서는 할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한 것에 대해 마음 깊이 축하해주었다. 나는 그것이 아들이 북한을 접한 ‘첫 경험’임을 생각했고, 또한 그 경험이 나에게는 ‘없는 경험’임을 자각했다.

아들과 영상 통화가 성사되자마자 그가 부르는 노래는 다름 아닌 ‘반갑습네다’였다.



아들의 첫 경험, 아빠에게는 없는 경험


이제 네 살인 아들은 대륙의 무궁무진한 기회를 가지기 시작했다.

그는 만리장성을 품었다. 7월의 뜨거운 열기 속에서도 그는 굴하지 않고 씩씩하게, 산과 바다와 같은 인파들 속에 쭈그리고 앉아 이모가 싸 준 도시락을 먹으며 만리장성을 오랫동안 걸었다. 아빠에게는 없는 경험이었다.

20180714_145718_HDR.jpg 그는 만리장성을 품었다.


그는 처음 먹어보는 중국의 과일과 음식들을 먹었다. '드래곤 프룻'이라고 불리우는 ‘용과’도 먹어보았고, 천상의 과일이라고 하는 ‘두리안’도 먹어보았다. 그리고 중국의 과일들을 완전한 중국어 발음으로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가재 랍스타'도 먹어보았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가재 랍스타도 먹어보았다.


그는 한 달간 이어진 두 번째 중국 여행에서는 ‘낚시’도 경험했다.

언젠가 거제도의 한 바닷가에서 아저씨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는데 아들이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아빠, 나도 낚시해도 돼? 나도 낚시 하고 싶어.
영원아. 아빠는 낚시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서 영원이한테 가르쳐줄 수가 없어. 그래서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


사실 저런 대화를 한 적이 있다는 건 아들이 알려주었기 때문이었다. 완전히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영원이가 두 번째 중국 여행 중이던 어느 날, 처제가 보내준 동영상을 열어보았다. 동영상 속 아들은 중국의 한 낚시 까페에서 물고기를 낚는데 성공하고는 아빠에게 영상편지로 이렇게 말했다.


아빠, 나 낚시할 수 있는데 왜 못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잘하는데~



아들은 이미 아빠가 삼십년 넘게 쌓아온 경험치를 넘어서고 있었고, 지금도 끊임 없이 도전하고 있었다.


그 영상을 보는데 가슴이 서늘했다. 아들은 이미 아빠가 삼십년 넘게 쌓아온 경험치를 넘어서고 있었고, 지금도 끊임 없이 도전하고 있었다. 놀라운 속도였다. 하지만 놀라운 속도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아들의 도전과 확장을 제한하고 있는 최전방’에 다름 아닌 ‘아빠’가 있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아빠는 진심으로 청출어람(靑出於藍)을 바란다


아들의 영상 편지를 보고 나는 둔탁한 둔기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아빠인 내가 알게 모르게 ‘할 수 없다’, ‘안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지를 되돌아보았다.

돌아보니 결론은 이러했다. 아빠가 경험한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전해보라고 권장했지만, 아빠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권장하지 않거나 제한했던 것이다.

그래도 아들에게 최대한 많은 도전 기회를 주려고 노력했던 나에게 이 깨달음은 ‘식스센스’ 이후의 최고의 반전이었다. 이 사건 이후로 나는 내 경험 안에 아들을 가두지 않기로 철저하게 다짐했다. 아이의 영혼에 치명적인 위해가 가해지는 일이 아니라면 아빠가 경험하지 못한 것일수록 오히려 더 도전할 수 있도록 권장해주어야겠다는 결의도 함께였다.


한국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은 가능할까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은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이런 말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의 옛 어른들도 제자가 스승보다 낫기를 간절히 바랬던 모양이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을 보더라도 제자가 스승보다 낫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18324_23920_5345.png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은 '푸른색은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라는 뜻으로, 제자가 스승보다 더 나음을 비유하는 고사성어이다.


들어는 봤나, ‘모세의 기적’


남자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기적이 있다. 그 기적은 보통 군부대의 연병장에서 일어나곤 한다. 부대의 장이 한 번 드리블을 시작하면 프로리그 출신 수비수라 할지라도 추풍낙엽처럼 양 옆으로 나가떨어지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다. 물론 ‘군대’라는 특수한 상황이 만들어낸 촌극이지만 이것이 청출어람을 원하지 않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하겠다.

33.jpg 부대의 장이 한 번 드리블을 시작하면 프로리그 출신 수비수라 할지라도 추풍낙엽처럼 양 옆으로 나가떨어지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다.


한국 사회에서 부목사는 목사를 넘을 수 없고, 부교수는 교수를 넘을 수 없다. 대리는 과장을, 주임은 대리를 넘을 수 없다. 실력으로 넘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직급이나 연공 서열이 곧 실력이 되어야 한다. 사회생활에서 하위의 누군가가 상위보다 더 ‘훌륭한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이유이다.

그렇기에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언어가 존재하기는 하나 사실 그 시도조차 ‘불경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우리 사회에서 누가 스승이 시도해보지도 않은 것에 도전을 해보겠느냐는 말이다.


기성 세대의 갇혀버리면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그렇게 다음 세대가 기성 세대에 갇혀버리면 우리 사회에 미래는 없다. 다음 세대가 기성 세대가 해 본 경험 속에서만 산다고 가정해보자. 기성 세대는 오랜 시간 그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다음 세대는 노하우에 밀려 기성 세대를 이길 수 없다. 그럼에도 기성 세대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그 경험 안에 가두어두려는 특성이 있다.

2013-11-04_11;09;44.png 기성 세대는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그 경험 안에 가두어두려는 특성이 있다.


기성 세대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하기


다음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 나으려면 기성 세대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보면 된다. 물론 실패도 할 수 있지만 기성 세대가 경험해보지 않은 영역에 대한 도전은 다음 세대의 ‘기회’이다. 그 일을 다음 세대는 기성 세대보다 더 잘 할 수 있다. 그렇게 그들은 기성 세대를 넘어설 수 있다.

인류 수천년의 역사동안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기성 세대가 도전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에 다음 세대가 도전해왔기 때문이다. 만약 그러한 시도가 없었다면 우리는 여전히 돌을 부딪혀 불을 피우고, 뗀 석기를 사용하며, 수렵이나 채취, 또는 어로 등의 일을 하며 살고 있을지 모른다.


도전정신0417.jpg 다음 세대가 기성 세대보다 나으려면 기성 세대가 경험해보지 않은 일에 도전해보면 된다.


네 살 아들로 인한 깊은 깨달음


나는 네 살 아들의 낚시 동영상을 보며 깊이 깨달았다. 나 역시 꼰대에 불과했다는 걸.

내가 경험하지 못하고, 내가 가르칠 수 없다면 아들도 똑같이 무지 상태로 놓아두는 소극적 방관자요, 다음 세대와 사회 발전을 막는 암초였다는 것을.


다행히 아들의 상처는 그리 큰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물고기를 낚고는 의기양양하게 영상으로 아빠에게 보였다. 아빠는 뒤늦은 깨달음 속에 아들의 성취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언젠가 아들과 함께 새로운 영역인 낚시에 함께 도전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말이다.


아빠가 밟지 못해본 만리장성을 아들이 먼저 밟아본 것에 대하여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아빠가 경험해보지 못한 것을 먼저 경험할수록 아이에게는 무한한 자신감이 생겨났다.


아빠가 가보지 못한 ‘북한식당’에 가보고, 만나보지 못한 ‘북한 사람’을 만난 덕분에 아들은 우리 나라 분단의 현실을 알게 되었고, 38선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심지어는 북한말과 조선족들이 쓰는 사투리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네 살 아이에게도 무한한 도전이 필요하다. 나는 진정 아들이 아빠보다 넓은 사람이 되기를 기도한다. 더 깊은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한다. 그것을 위해서 아빠가 모르는 '미지(味知)의 세계'에 아들이 발을 내딛는 '모험'이 필요한 것을 깨달았다.


나는 ‘네 살 아들의 나 홀로 중국’ 여행을 통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아들’을 ‘아빠라는 감옥’에서 ‘탈출’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4.jpg ‘아들’을 ‘아빠라는 감옥’에서 ‘탈출’시키는 것, 그것이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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