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스토리 인 베이징

네 살 아이를 독립시킨다는 것

by 이음

네 살 아들을 독립시킨다는 것


그 날 밤, 나는 네 살짜리 아들을 그 날 처음 뵌 ‘장○○ 삼촌’의 손에 넘겨드리고 전주로 내려왔다. 인천의 뻘이 많은 바닷가조차도 하나도 보이지 않을만큼 캄캄한 그 길을 지나오며 나는 줄곧 나의 아들이 지금 무얼 하고 있을지를 생각했다.


지금쯤은 공항 검색대를 통과했겠지? 장○○ 삼촌과 대화는 잘 통하고 있는걸까? ‘장○○ 삼촌 놀이’를 할 때 내가 연기한 캐릭터와 실제 캐릭터가 조금 다른게 아닐까? 늦은 시간이라 면세점도 문은 많이 안 열었을텐데 비행기 타기 전까지 남자 둘이서 무얼 하고 있으려나? 지금쯤은 비행기가 떴으려나? 비행기를 타면 제발 자야할텐데. 지금 열 두시인데. 그런데 잠들었다가 도착해서까지 자면 어떻게 하지? 장○○ 삼촌이 깨우려나? 깨워도 못 일어나면 장○○ 삼촌이 무거운 아이를 안고 짐을 찾아서 공항 밖으로 나가야할텐데. 너무 고생이지 않을까?


아이와 쿨하게 손 흔들고 헤어졌던 아빠는 결국 돌아오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아이를 믿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아이를 독립시킨다는 건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 엄마에게서 한 발자국씩 독립하던 때를 떠올렸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이였을 때 독립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은데... 결국 ‘아이의 독립’이라는 주제에 있어서 ‘더 어려운 쪽은 아이보다 부모인가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NaverBlog_20140417_211855_01.jpg 아이와 쿨하게 손 흔들고 헤어졌던 아빠는 결국 돌아오는 길에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베이징으로부터 걸려온 페이스타임


전주에 도착하고나서도 아이에게 도착했다는 연락은 오지 않았다. 당연히 잠이 오지도, 잠을 잘수도 없었다.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가 넘어설 무렵에서야, ‘페이스타임’으로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삼촌이 카카오 프렌즈 캐릭터로 되어 있는 휴대용 선풍기를 빌려주셔서 너무 좋았으며, 비행기를 타는게 너무 좋아서 비행기 안에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는 아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면 녀석은 공항에 가는 리무진에서 잠깐 잔 것을 제외하면 거의 20시간을 깨어있었던 셈이다.

1530368125013.jpg 밤 비행기를 함께 기다리며 장○○ 삼촌이 찍어주신 사진


베이징으로부터 온 영상 하나


영상통화를 마치고 나서야 나와 아내는 평상심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들의 독립은 성공적이었다. 녀석은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즐기고 있었다. 무리한 밤 비행기 스케쥴과 약간의 연착도 그의 독립을 막아서지 못했고, 그의 즐거움을 빼앗지 못했다.

나는 그의 원동력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그는 아직 네 살짜리 아기이다. 제 아무리 컸다고 해도 아직 잘 때가 되면 부모의 온기를 찾는 평범한 아이였다. 부모의 온기를 넘어설만한 무언가가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발걸음을 뗀 것이다.

영상 통화를 마치고 얼마 후, 베이징으로부터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부모의 온기를 넘어설만한 무언가, 아이의 독립을 촉발시킨 무언가가 무엇인지 나는 그 영상을 통해서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에게는 부모가 채워줄 수 없는 것을 넘치도록 채워주는 휴식 같은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베이징으로부터 온 영상에는 한 남자가 공항 입국장을 통과하자마자 한 여자에게 정신 없이 뛰어가는 장면이 찍혀있었다. 그에게 다른 사람들, 들려오는 낯선 언어들, 익숙하지 않은 냄새들은 모두 배경 처리된 것처럼 보였다. 그는 오직 한 사람, 한 여자를 향해 돌진했다.

그 남자와 그 여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 부둥켜안았다. 여자의 두 눈에는 눈물이 맺혔고, 남자의 눈에는 ‘꿀’이 뚝뚝 흘러내렸다. 무엇이 이들을 이토록 사랑하게 만들었나.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들은 이토록 그리워했음에도 떨어져서 지냈어야만 했나. 아마 공항에 있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도 이 두 남녀의 사연에 대한 궁금증이 맺혀있었지 싶다.

영상 통화를 마치고 얼마 후, 베이징으로부터 영상 하나가 도착했다.


그 남자, 그 여자의 이야기


나는 이들의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을 기억한다.

첫 만남은 그 감흥을 느낄 수도 없을만큼 너무나 짧았다. 그 때도 그녀는 남자를 보기 위해 여섯시간을 달려왔다. 멀미가 심했던지라 제대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첫 만남은 야속하리만치 짧게 지나갔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그녀는 다시 베이징으로 떠나왔다. 영상통화를 통해서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그들은 수 개월이 지나고서야 포항의 한 광고회사의 작업실에서 재회했다.

영상통화를 통해서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던 그들은 수 개월이 지나고서야 포항의 한 광고회사의 작업실에서 재회했다.


누가 우리의 ‘원더우먼’을 울렸는가


그녀는 베이징에 산다. 대한민국 서울보다도 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는 그 곳은 걸어다니는 것조차 전쟁이다. 사람에 치이고, 차에 치이고, 먼지에 치인다. 물건 값을 깍지 않고 사면 구매자가 바보가 되는 사회, 관계와 돈이 실력을 비웃는 무한경쟁 사회. 그녀는 베이징의 변화의 한 복판에서 살아남은 ‘원더우먼’이었다. 사실은 눈물도 많고, 마음도 여린 천상 여자였건만 대륙의 무한경쟁 속에 눈물을 흘릴 새도, 감상에 젖을 틈도 없이 그녀는 ‘소녀’의 시기와 ‘숙녀’의 시기를 모두 버텨냈다.

maxresdefault.jpg 그녀는 베이징의 변화의 한 복판에서 살아남은 ‘원더우먼’이었다.


그런 원더우먼의 마음을 녹여 존재만으로도 그녀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하는 사람이 갑자기 등장해서 사실 나도 조금 놀랐다. 나는 아내를 통해 그녀를 알게 되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보지는 못했지만 사실상 씩씩한 모습만을 보았었지 그녀의 눈가가 촉촉이 젖은 모습은 거의 보지 못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이 남자를 만날 때마다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 마음을 느꼈는지 남자도 서서히 여자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것이 보였었다.


나는 이 커플 찬성일세


그와 그녀는 세상이 볼 때, 이모와 조카 사이이다. 하지만 아빠로서 지켜보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러한 말로 정의될 수 없는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다. 그들은 모든 종류의 사랑을 소화해낸다. 부모와 자녀가 하는 사랑, 친구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사랑, 때로는 남녀가 나누는 사랑. 그 성분들이 이 두 사람의 사랑의 함량을 구성하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그러한 특별한 상황을 ‘케미’가 맞다고 표현하더라. 그야말로 여러 요소들이 화학적으로 결합하여 ‘제3자’는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그런 ‘케미’.

그런 ‘케미’가 둘 사이에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케미’를 지켜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런 ‘케미’가 둘 사이에 있었다. 나와 아내는 그 ‘케미’를 지켜보는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이제 그녀는 베이징에 도착한 그 남자를 힘껏 안았다. 그들의 ‘러브 스토리 인 베이징’은 이제서야 시작되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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