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엄마 아빠의 손이 닿지 않는 더 큰 세계로 의연히 나아갔다
출국 전야(前夜)의 비장함에 비해서 그 날 아침의 태양은 생각보다 가볍게 떠올랐다.
전 날 잠들기 전까지 ‘장○○ 삼촌 놀이’를 하던 영원이는 눈을 뜨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빨리 장○○ 삼촌 보고 싶어
비행기를 타려면 아직 한나절은 있어야 했지만 이미 네 살 아들의 마음은 장○○ 삼촌과 비행기에 타 있었다. 아들은 마음 속에서 이미 공항 직원에게 비행기 티켓을 보여주고 있었고,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누가 보아도 ‘완벽한 타인’이었지만 우리가 놀이에서 ‘장○○ 삼촌’이라 불렀을 때, 그는 영원이에게 다가와 ‘비행기’가 되고, ‘여행’이 되었다. 그를 빨리 보고 싶어하는 아들 때문에라도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와야 했다.
전주에서 공항리무진을 타보는 건 처음이었다. 나는 적지 않게 당황했다. 리무진 터미널에 차를 주차할 수 있는 줄 알았는데 버스가 출발하기 15분 정도를 남기고, 터미널 직원 분께서 여기는 버스가 오고가는 곳이니 차를 빼 달라고 한 것이다. 아이를 다시 차에 태워서 복잡한 동네에 주차를 하고, 다시 리무진 터미널로 돌아오는 것이 시간적으로 불가능해보였다. 나는 차를 빼달라고 한 그 직원 분께 ‘죄송하지만 아이와 잠시 함께 있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그 분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신이 잠깐 데리고 있겠다고 했다. 나는 차를 근처의 공영주차장에 놓고 허겁지겁 리무진 터미널로 달려왔다. 달려오면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아직 네 살 밖에 안되었는데,
그래서 아이를 홀로 두고 잠깐 어디 다녀오는 것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
이 아이를 다름 아닌 내 손으로 홀로 중국에 보낸다는 것인가?
내일 새벽이면 이 아이가 낯선 대륙에 발을 딛는단말인가? 엄마, 아빠도 없이?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리무진 터미널에 도착을 했는데, 우려와 달리 아이는 아까 내가 부탁을 드린 직원 분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직원 분은 나이가 지긋이 드신 분이었는데 내가 헐떡이며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자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직원 분: “얘가 오늘 혼자 중국에 간다면서요? 베이징에?”
아빠: “아, 네. 어떻게 아셨어요?”
직원 분: “어떻게 알긴 이 아이가 이야기해주니까 알지.”
아빠: “아~ 영원이가 말씀드렸어? 중국간다고?”
영원이: “응. 이모 보러 간다고도 말씀드렸어요.”
직원 분: “아빠가 잘 키우세요. 애가 똘방지네.”
항상 그런 식이다. 아이를 키우며 불안의 심연 속으로 빨려들어갈 무렵이면 아이는 그 심연 안으로 불쑥 손을 내밀곤 했다. 아들은 아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성장해있었다. 아빠가 연결해주지 않아도 타인과 스스럼 없이 관계 맺는 아들을 보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우리는 직원 분께 손을 흔들고는 리무진에 몸을 실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은 처음이었다. 항공사들이 아직 많이 배정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비지 않고 쾌적했다.
아들의 여권을 받아들고, 우리는 저녁을 먹으러 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으로 갔다. 아들과 함께 하는 마지막 만찬이었다. 식사 기도는 녀석의 몫이었다.
밥 맛있게 먹고 여기를 떠나가는 길에, 엄마 아빠를 떠나가는 길에, 장○○ 삼촌이랑 중국 갈 때, 비행기 타고 갈 때, 잘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식사 후에 아들은 아빠, 엄마, 뭉클이(여동생)에게 할 말이 있다며 영상 편지를 남겼다. 영원이가 떠나고 나서 우리는 얼마나 이 영상편지를 돌려보았는지 모른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많이 사랑해요. 행복해요. 그리고 엄마랑 뭉클이도 행복하죠? 네~ 저희도 사랑해요. 하나님도 사랑해요. 우리 그리스도에서 만나기로 했지요? 거기서 만나자요. 아멘.
밤 10시쯤 되어 우리는 카운터 앞에서 장○○ 삼촌을 만났다. 상상했던 것보다 다부지고 단단한 인상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은 소정의 선물을 영원이의 손으로 드린 후, 우리는 출국장 앞에 섰다. 공항에 4시간 가량 같이 있었음에도 이별의 순간은 갑작스러웠다.
아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간단히 기도를 드렸다.
온 세상을 주관하시는 창조주께서 이 작은 아이의 안전을 지켜주시기를.
아이가 장○○ 삼촌의 손을 놓지 않고, 공항에 도착하기까지,
그리고 머나먼 대륙 땅에서도 하나님의 손길로 아이를 보호하시기를.
아들은 잡았던 아빠의 손을 놓고서는, 장○○ 삼촌의 손을 잡았다. 한치의 망설임도 주저함도 없었다. 아버지들이 결혼식장에서 자신이 붙들고 있던 딸의 손을 신랑에게 건네줄 때의 마음이 그와 같을까. 아들은 출국장 문 앞에서 다시 한 번 손을 흔들고는 홀연히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아들은 아빠와 엄마의 손이 닿지 않는 더 큰 세계로 의연히 나아갔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