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슬러올라가기로 했다
나는 대학에서 인사 업무를 맡고 있다. 대학의 특성상 강단에 서는 교수와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으로 나누어지기 때문에 인사 업무도 두 파트로 나뉜다. 나의 경우는 교수의 인사를 담당한지 만 3년이 되어가고 있다.
1년 전 쯤, 나는 전대미문의 대규모 교수 채용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채용이 대규모였던만큼 나는 아침에 출근해서부터 퇴근시간까지 전화기를 놓을 수 없을만큼 많은 지원자들을 상대해야 했다. 재미있는 것은 ‘교수 채용’임에도 불구하고 예상 외로 지원자들의 ‘부모님들’로부터 전화가 많이 온다는 것이다. 서류가 잘 도착했는지 묻는 질문에서부터 다른 대학과 일정이 겹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를 묻는 상담까지 그 종류도 다양했다. 박사를 마치고 대학에 지원하려면 적어도 삼십대 이상의 연령이 되었을텐데 그들은 왜 전화를 하지 못하고, 그들의 부모님들이 전화를 걸어야 했을까. 바쁜 와중에도 나는 헛헛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영화 ‘트루먼 쇼’를 기억하는가? ‘짐 캐리’가 분한 ‘트루먼’은 철저하게 메이드(made)된 세상에 갇혀 산다. 24시간 전 세계에 중계되고 있는 그의 인생. 아버지도, 어머니도, 주변 친구들조차 연기자들이다. 그렇게 그의 삶은 제작자의 의도대로 편집되어 전 세계의 시청자들에게 보여진다. 극단적이면서도 참신한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그 영화는 개봉한지 20년이 지났지만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으며 최근 국내에 재개봉되기까지 했다.
철저하게 메이드된다는 점에서 우리의 아이들의 삶은 트루먼 쇼와 닮았다. 아이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 아이들의 개성에 대해서 우리 사회는 특히나 관심이 없는 듯 하다. 획일화된 학업 코스에 아이들을 밀어넣어 ‘대학’이라는 종착지를 향해 하루하루 흘러갈 뿐이다. 부모들은 이미 사회적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에 획일화된 학업 코스를 부정하지 못한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라는 것이 차지하는 무게를 경험적으로 안 부모들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할 겨를이 없다.
나는 책을 읽고 글쓰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교과서를 받으면 문학 교과서에 있는 단편소설들을 받은 날 다 읽어내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문학 시험은 즐겁지 않았다. 작가의 의도나 화자의 정서를 오지선다형에서 고르는 그런 시험을 보고 있노라면 이러한 행위가 글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하지만 성적을 얻기 위해서 그런 반감을 오래도록 가지고 있는 것은 나에게 이롭지 않았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작품을 대하되 시험을 위해서는 출제자가 원하는대로 느끼려고 노력했다. 가끔은 배우는대로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그럴때면 그냥 외웠다.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내가 원하는 것이 있어도 묻어야했고, 굳이 그러한 욕구를 들춰낼 필요가 없었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공부를 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면 안 되는 사회. 나와 아내는 그것이 ‘비극’이라고 생각했다. 질문을 하면 피곤한 사람이 되고, 자발적으로 발표를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그런 사회가 우리 아이가 자라가는 배경이 되는 것이 마음이 아팠다.
부모인 우리만이라도 아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이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기 시작한 건, 아이가 말을 하고 의사소통이 가능할 때부터가 아니었다.
아이와 있노라면 마치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있는 것 같은 아이의 깊은 눈망울을 마주할 때가 있다. 아이와 인격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때는 그렇게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었다.
언젠가 두 살짜리 아들에게 아빠가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있는 나에게 어떤 어른이 지나가다가 한 마디 하셨다.
“그렇게 지금부터 아이한테 끌려다니면 나중에 어쩌려고?”
웃으며 지나쳤지만 사실 마음이 조금 아팠다. 기분이 나빴던 것은 아니다. 그 분은 진정 아빠인 나를 생각해서 하신 말씀이었으니까. 내가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분에게도 자녀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분은 아이들을 정말 사랑하는데 아이들은 그 분의 사랑을 받지 못했겠구나 싶었다. 아이들을 존중하는 것을 끌려다닌다고 여기는 마음이 안타까웠다.
나와 아내는 우리의 아이를 존중할 수 있는 방식 중 하나로 ‘통보가 아닌 상의를 하기’를 선택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아이가 좋아하는 식당을 이미 알고 있다. 그냥 아이에게 ‘오늘 ○○식당 가자’라고 해도 된다. 그래도 아이는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조차 아이에게 상의를 한다.
“○○식당 갈까? 아니면 □□식당 갈까? 영원이 생각은 어때?”
'상의'의 핵심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아이의 생각을 묻는 것이다. 아마 100에 90은 ○○식당에 가자고 할 것이다. 하지만 ○○식당에 가는 발걸음부터가 다르다. 부모의 통보에 의해 간 식당도 맛은 있다. 하지만 가는 발걸음마저 가볍게 해주지는 못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누군가의 결정에 의해 타율적인 것이 되어버리는 순간, 아이들은 흥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들일수록 더 그렇다.(내가 그랬으니까.)
그렇게 우리는 이미 수많은 ‘상의’를 거쳤다. ‘상의’라는 것은 아이가 원하는대로 다 해주는 것과는 결이 다르다. 수많은 상의를 거쳐서 때로는 부모의 의견이 수정되기도 했지만, 때로는 아이의 의견이 수정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매순간마다 ‘부모의 결정’, ‘아이의 결정’이 아닌 ‘우리의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결정의 질보다 더 뿌듯했던 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고 예의바르게 이야기할 수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였다. 확실히 존중받은만큼 존중할 줄 안다. 그리고 아이들은 자신들의 말을 경청하는 어른들을 통해 자신감을 얻는다.
아이가 중국에 홀로 가기로 한 것은 아이 스스로의 결정이었다. 녀석은 제 발로 출국장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중국에 홀로 가기로 한 것은 부모의 결정이기도 했다. 우리는 떨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아이를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의 결정을 내렸고, 그 결정을 존중했다.
<다음 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