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살 아이가 '죽음'을 대하는 방법

'두 번째 출국'의 서막

by 이음


다시 만난 날


내가 전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던 그 밤, 영원이와 그의 이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다시 만났다. 처제 역시 외할머니와의 만남이 마지막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리해서 비행기를 잡아타고 날아왔던 것이다. 지난 6월, 뜻밖의 이별을 한 번 겪어낸 포항의 가족들은 ‘마지막 순간’을 준비하는 것에 있어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고, 망설일 수 없었다.

KakaoTalk_20190101_225415001.jpg 영원이와 그의 이모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다시 만났다.


네 살, 죽음이라는 주제에 당면하다


영원이가 ‘죽음’이라는 주제에 당면했던 것은 지난 6월, 증조 할아버지를 떠나보내면서부터였다. 네 살 영원이와 당시 신생아였던 소원이는 증조 할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지켰었다. 그들은 존재만으로도 가족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


장례식장에서 영원이가 한 번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빠 엄마, 사다리차 불러서 우리 왕할머니 집으로 이사가요."

"왜?"

"왕할머니 위로해주려고!!"

KakaoTalk_20190103_004014555.jpg 영원이는 장례 기간 내내 왕할머니의 눈물이 쏟아질 때마다 그녀의 곁을 지키곤 했다


영원이는 그렇게 장례 기간 내내 왕할머니의 눈물이 쏟아질 때마다 그녀의 곁을 지키곤 했다. 울고 계시는 할머니를 위해 필요를 살피며 휴지를 갖다드렸고, 심지어는 할머니 가방에 깜짝선물로 큰 휴지를 넣어놓기도 했다.


녀석은 그 장례식장에서 사위인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해냈다. 손님들이 오시면 상주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인사를 했고, 심지어는 서빙까지 직접 도우며 상조회 선생님들과도 완벽히 친해졌다. 또 어느 날은 장례 일을 돕느라 정신 없는 사이에 아이가 사라져서 어디 갔나 보니 우리 손님이 아닌 처음보는 어르신들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녀석을 찾을 수 있었다.


“꼬마야, 너는 어디 사니?”

“전주요.”

“아~ 진주?”

“전주요. 혁신도시 살아요.”

“아이고, 좋은데 사네.”

“나중에 저희 집에 놀러오세요.”


녀석은 우리 손님들 뿐 아니라 다른 방의 손님들에게도 인기 스타였다.

KakaoTalk_20190103_004015674.jpg 영원이는 손님들이 오시면 상주들과 함께 나란히 서서 인사를 했다




위로 천사


그렇게 장례를 힘겹게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며칠 뒤였다. 가족들은 황망한 마음을 추스리려 노력하고 있었다. 피가 한참 나던 마음의 상처에 조금씩 딱지가 자리잡던 그 즈음, 영원이는 거실의 낮은 탁자에 올라 웃으며 나름의 애교와 춤을 선사했다. 다들 ‘밝은 영원이가 있어서 그래도 웃는다’며 흐뭇하게 애써 웃어보였다. 그런데 영원이는 한창 신나게 이끌고 가던 분위기를 뚝 자르고는, 가족들에게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 노래하고 춤추는지 알아요?"

"왜?......"

"다들 힘내라구~!"


그러면서 영원이는 다시 춤추며 노래했다.

영원이의 그 말에 우리는 한동안 머리를 강타당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는 장례식장에서의 사흘동안,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서의 어른들의 분위기를 읽고 있었고, 그 와중에 본인의 역할이 무엇인지 한참을 고민한 듯 했다. 분위기 파악을 못하는 어린 아이여서 나온 춤이 아니고, 무거운 공기를 타개하기 위한 네 살 아이의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장례식장에서 지낸 지 사흘째 되던 날, 발인 예배가 이어졌다.

장례식에서 간간히 울려 퍼졌던 찬송의 가사를 영원이는 거의 외워서 자기의 것으로 소화하고 있었다. 특히 반복되었던 후렴구는 이러했다.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한참을 부르다가 영원이는 나를 붙잡고 진지하게 물었다.


아빠, 저 천국 문이 어디에요?


이어서 나에게 온 질문은 우리 부부가 이 아이의 영혼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돌아가신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어디로 돌아가신다는거에요?


영원이의 머릿 속은 복잡한 듯 보였다. 다들 영영 헤어져서 슬퍼하고 있는 줄 생각했는데,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에서는 다시 만나자고 하고 있으니 혼란이 올 법도 하다. 그리고 다시 만난다면 왜 어른들은 저렇게 슬퍼하는 것이며, 다시 만나기로 약속된 것처럼 보이는 ‘저 천국 문’은 과연 어디란 말인가?


햇빛을 받으며 해야할 것들


아이들이 하는 진지한 질문에 대해 어른들은 회피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나 ‘죽음’이나 ‘성(性)’, ‘인간 존재의 근원’에 관련된 질문들에 대해서 그러하다. 그러한 회피는 어린 아이가 이해할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거나 혹은 본인들조차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발생하고 있는 것 같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어린 아이는 응답받지 못한 질문이 생기면 이렇게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가진 질문이 어른들과 함께 햇빛을 받으며 이야기되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이건 그냥 나 홀로 빛이 통하지 않는 골방에서, 아니면 또래의 친구들과 해결해야 할 문제구나.


반복적으로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경험을 한 아이들은 아이들은 커 가면서 더 이상 어른들에게 어려운 질문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음성적으로 혹은 또래집단 내에서 불명확한 정보들을 자급자족하며 때로 왜곡된 가치관을 공유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아들이 가진 '지독하게 철학적이거나 반짝이는 질문'에 정면으로, 그리고 지혜롭게 맞서야 했다. 아이가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자주 뵙던 왕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디’로 가셨는지 궁금하다.
어른들은 저 ‘천국 문’에서 만난다고 한다.
‘천국’은 무엇일까.
나도 가고 싶다, ‘천국’.
그럼 어떻게 가야하지?


영원이의 마음 속에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것이 보였다.



구도(求道)자, 김영원


그러한 질문에 아직 해답을 찾지 못한 영원이에게 외증조할머니의 모습은 또 다른 충격을 안겨준 듯 했다. 다시금 아들의 마음은 ‘구도(求道)’의 마음이 되어갔다.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설명해줄 사람을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실은 우리가 모여 이러한 이야기를 나눌 여유가 있지 않았다. 아내와 처제, 서울에서 온 처남, 영원이, 소원이까지 모두 함께 지내기엔 무리가 따랐다.


두 번째 출국(出國)


우리는 또 다시 결단해야만 했다.

영원이의 두 번째 출국은 그 상황에서 대안으로 처음 던져졌다. 영원이의 출국 또한 갈 수 없는 이유가 더 많았지만 한 가지의 가치를 가족들이 한 마음으로 공유하고나니 결정이 쉬워졌다. 그 어려운걸 또 해냈다.


영원이의 두 번째 출국은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채로 이루어졌다.

장례식장에 있는 증조할아버지의 영정 사진에 인사하는 영원이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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