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옴니버스(OMNIBUS)

베이징, 전주, 그리고 창원

by 이음

중국, 베이징, 그리고 그들의 온기.


영원이와 이모가 중국에 도착했던 즈음, 뉴스에는 베이징의 노부부가 집을 나섰다가 극심한 미세먼지 때문에 다시 집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국내보다 베이징의 미세먼지 수치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생겼다. 하지만 감이 잘 오지 않았다. 베이징의 미세먼지 수치는 우리 나라의 수치에 기본적으로 0이 하나 두 개 더 붙을 정도였기 때문에 나는 그 수치가 의미하는 공기의 질이 어느 정도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20190104_030908.jpg 영원이와 이모가 중국에 도착했던 그 날, 뉴스에는 베이징의 노부부가 집을 나섰다가 극심한 미세먼지 때문에 다시 집을 찾지 못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아빠'가 경험한 중국


나는 나의 ‘첫 중국’을 ‘냄새’로 기억한다. 중국은 성분을 알 수 없는 특유의 냄새가 있었다. 내가 처음 중국을 방문했던 것은 1996년도의 일이었다. 당시 중국은 산업화의 중간단계였고, ‘이촌향도’ 현상으로 도시와 지방의 격차가 극심하게 벌어지고 있을 당시였다. 나는 그 때 아버지와 함께 이틀동안 기차를 타기도 하고, 포장되지 않은 도로를 달리는 버스에서 쪽잠을 자며 지내기도 했었다. 나는 아직도 서로 눈을 마주치며 용변을 보던 중국의 공중 화장실을 잊을 수 없다. 더 충격적이었던 것은 만주 벌판을 한참 달리던 버스가 고장으로 섰던 순간이었다. 어렸던 나였지만 그래도 어디론가 숨어서 소변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드넓은 만주 벌판 어디에도 숨을 곳은 없었다. 현지인들은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버스에서 내린 그 자리에서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껏 나라들을 다니면서도 가장 문화충격이 심했던 순간이었다.


'아들'이 경험한 중국


하지만 아들이 경험하고 있는 중국은 다르다.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그 특유의 냄새가 점점 사라지는 추세인 것 같다. 적어도 내가 최근에 갔던 베이징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용변을 보는 공중 화장실은 발견하기 어려웠다. 길에서 남녀노소가 함께 바지와 치마를 내리는 일도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일 것이다.

네 살배기 아이의 눈에도 베이징은 서울보다 크고, 높으며, 다양했을 것이다. 그가 갔던 ‘대륙의 키즈까페’는 우리 나라의 놀이공원 수준이었고, ‘동물원’은 세렝게티의 초원과도 같이 생생했다.

그가 갔던 ‘대륙의 키즈까페’는 우리 나라의 놀이공원 수준이었고, ‘동물원’은 세렝게티의 초원과도 같이 생생했다.


'아들'이 '사랑'한 중국


하지만 네 살의 영원이가 중국을 사랑했던 결정적 이유는 사실 ‘중국’ 자체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사실 집에 있을 때면 녀석이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아무리 영원이를 우선적으로 신경을 쓰려 해도 아직 어린 소원이에게 엄마, 아빠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다. 아들은 잘 놀다가도 밤에 잠이 들 때면 사랑하는 엄마의 옆에서 자신이 잘 수 없다는 부분에 항상 아쉬운 마음을 토로하곤 했다. 다행히 영원이는 동생에 대한 질투심은 전혀 보이지 않고, 시종을 오빠라기보다는 삼촌과 같은 표정으로 동생을 대하곤 했지만 우리는 그래도 늘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가 중국에 있는 동안 그는 이모의 유일한 사랑의 대상이었다. 그는 베이징에서 가장 최고의 것들로만 모아진 스케쥴을 아무렇지도 않게 경험했다. 이모는 영원이의 맞춤형 가이드였다.

베이징 곳곳이 이 순수한 커플의 추억으로 하나 둘씩 물들기 시작했다. 천안문 광장에도, 만리장성에도, CCTV타워에도, 조양공원에도, 트램플린 파크에도 그들의 온기가 묻었다.

KakaoTalk_20190104_102831915.jpg 베이징 곳곳이 이 순수한 커플의 추억으로 하나 둘씩 물들기 시작했다. 천안문 광장에도, 만리장성에도, CCTV타워에도, 조양공원에도, 트램플린 파크에도 그들의 온기가 묻었다.

누군가에게 베이징은 여전히 삭막하고, 심각한 미세먼지로 둘러싸인, 관계 없이는 뚫을 수 없는 ‘그들만의 도시’일지 모른다. 하지만 처제의 영원이를 향한 사랑과 노력은 ‘영원이의 베이징’을 가장 행복한 도시로 만들어주었다.


전주, 기도의 자리


처제와 영원이의 러브스토리는 편서풍을 타고, 전라북도 전주에 있는 나에게 큰 힘과 동력을 주었다. 나는 아침에 눈을 뜰 때나, 잠을 잘 때나, 일을 할 때에도 늘 베이징과 창원을 함께 생각했다. 나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을 수 없고, 영원이의 볼을 어루만질 수 없었지만 오히려 그 행위들보다도 더 따뜻한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 홀로 있는 시간동안 나는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아내와 처제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흡사 첩보원을 지원하는 프로파일러와도 같았다. 프로파일러는 몸은 오피스에 있지만 마음은 현장에 있다. 나는 내가 실제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아내와 처제에게 유일한 조력자임을 자각하며 매일을 간절히 기도하며 지냈다.


창원, 조용하고 치열한 현장


호스피스 병동에 처음 찾아갈 때, 여러 산적한 문제들 중 가장 마음에 걸림돌이었던 소원이는 어느새 그 병동의 마스코트가 되어 있었다. 인생의 고뇌를 아직 알지 못하는 갓난아이의 웃음은 그 곳의 많은 사람들에게 큰 평화와 안식을 주었으리라. 소원이의 존재는 죽음이 드리워진 그 곳에 가장 강력하게 ‘삶’을 전파하는 웅변과도 같은 것이었다. ‘가장 작은 존재’의 생명력이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KakaoTalk_20190104_102831018.jpg ‘가장 작은 존재’의 생명력이 ‘가장 큰 기쁨’이 되는 아이러니를 우리는 현장에서 직관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554호. 진통제 좀. 빨리요!


외할머니께 극심한 고통이 찾아올 때면 아내는 간호사실에 전화를 하곤 했다. 단 몇 초의 고통마저도 환자에게는 일 년만큼 길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진통제는 그렇게 빨리 오지 않는다. 의약품관리법 상 진통제는 강도가 강하고, 마약과도 같은 부류에 속하므로 통상 시건장치 속에 들어있다. 시건장치를 해제하고, 진통제를 가지고 간호사가 들어오기까지도 환자와 보호자에게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몸을 한 번 씻는 것도, 밥을 한 번 먹는 것도, 심지어 숨을 쉬는 것조차도.

우리가 평소에 살아오면서 물과 공기처럼 당연히 여겨왔던 것들이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에게는 너무나 힘들고 귀하다.


아내는 어쩌면 죽음보다도 더 힘든 외할머니의 고통을 소원이를 돌보며 함께 견뎌내야 했다. 주변의 보호자들은 소원이를 예뻐하면서도 왜 아내가 그 어린 아이를 데리고 굳이 간병을 하고자 하는지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아내의 싸움은 외로운 싸움이었다.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것은 아름답지만 외로운 싸움이다. 그렇게 아내는 그 시간들을 외할머니와 함께 오롯이 통과하고 있었다.


'갈증'과 '번민'의 터널을 지나


아내는 외할머니와 함께 하며 죽음 이후의 문제에 대해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아내의 생각이 옳았다. 한 순간의 이벤트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드문 일이다. 하지만 삶을 함께 살아감을 통해서, 고통과 번민의 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버텨냄을 통해서, 외할머니는 처음으로 인간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마음이 열린 것이었다.

대부분의 시간동안 아내는 외할머니의 곁을 사랑으로 지켰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외할머니와 죽음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외에 서로 상호작용하기가 힘들 때에는 신께서 얼마나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로 인해 어떠한 일들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작은 화면 속에서 흘러나왔다.

KakaoTalk_20190101_233142236.jpg 대부분의 시간동안 아내는 외할머니의 곁을 사랑으로 지켰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외할머니와 죽음 이후의 시간들에 대해 겸손하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잘 듣지 않으시던 외할머니께서 조금씩 마음을 여시며 점점 마음의 갈증을 토로하기 시작하셨을 때, 그것 자체만으로도 신께서 베푸신 큰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큰 기적은 외할머니의 마음의 갈증이 생겨났을 때 쯤, 그 분에게 해갈의 기쁨을 선사해 줄 천사를 보내신 것이었다. 그 분은 병원에 정기적으로 오시는 자원봉사자이셨는데 놀랍게도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와 죽음 이후의 일들에 대해서 우리와 같은 생각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셨다. 발마사지를 하며 환자 분들을 섬기시던 그 분은 외할머니의 마음에 갈증이 있다는 것을 아내로부터 들으시고는 삼십분 남짓 되는 시간동안 부드러우면서도 강렬하게 신의 섭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셨다. 처음에는 ‘무관심’, 그 후에는 ‘호기심’, 좀 더 나중에는 ‘갈증’과 ‘번민’이었던 외할머니의 주된 감정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외할머니는 본인이 믿게된 바대로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주어진 상황은 아니었지만, 인간 근원적인 문제의 해답을 찾은 것이었다. 기쁨과 회한이 교차하는 그 시간 속에 아내는 놀라움과 감사함을 금치 못했다. 그녀의 수고만으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마음의 변화가 외할머니에게서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할머니의 육체의 고통은 점점 더 심해져갔지만, 그 고통은 마음의 해방과 자유를 빼앗지 못했다.



사랑의 옴니버스(OMNIBUS)


우리는 그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베이징에서 쌓여가는 추억과 온기는 전주와 창원을 비추고,

창원에서 해방과 자유를 경험한 외할머니의 소식은 전주와 베이징을 향한다.

전주에서의 기도는 다시 베이징과 창원으로 가서 그 소명을 다한다.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 있지만 그 어떤 공동체보다도 유기적이며, 상호적이고, 긴밀하다.


우리는 오늘도 그러한 삶의 방식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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