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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공작 Jul 17. 2022

#차였다 1화

꺼내먹는 로맨스

너와 마지막으로 이야기를 나눈 곳은 둘이서 자주 가던 A 카페였다. 한 불금 저녁, 우리는 홍대의 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헤맸다. 지칠 대로 지쳤으니 어디라도 들어가자고 말을 꺼낼지 말지 고민할 즈음, 주택가 구석에서 미약하게 빛나는 간판을 발견했다.



A 카페였다.



19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복고풍 인테리어에 아련한 조명. 살짝 열린 창문 틈새로 전해져오는 희미한 커피향을 맡지 못했다면 장사를 하는지조차 몰랐을 정도로 존재감이 옅었다. 나는 살아본 적도 없는 시대를 그리워했고 너는 커피라면 껌뻑 죽는 사람이었으니, 우리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가게에 들어섰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사람의 향마저 닮는다지만, 커피만큼은 아무리 노력해도 무리였다. 무리하게 맞출 필요는 없다며 네가 배려해 준 덕에, 나는 언제나 블루베리 스무디를 주문했다. 그런 나를 두고 네가 아직 애라며 놀려대는 것이 우리들의 카페 대화 루틴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A 카페에서는 스무디도 주스도 팔지 않았다. 메뉴판을 몇 차례고 훑으며 난처해하고 있으니, 차를 주문하는 게 어떻냐며 네가 제안해왔다. 차 이름이 빼곡히 적힌 메뉴판에서 유일하게 안면이 있는 건 녹차와 홍차 정도. 녹차는 티백으로 먹어봤으니까 홍차로 해야겠다.



처음 맛본 복숭앗빛 홍차는 생각보다 썼지만, 깊은 맛이었다.



그날 이후 A 카페는 우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매주 금요일 밤, 홍대가 열기로 조금씩 달아오르는 시간에 인파를 뚫고 A 카페에 도착한다. 입구에서 안쪽으로 수십 발자국쯤 들어가, 파티션으로 나눠진 4인석 가장 오른 편에 짐을 푼다. 그러고는 카운터에서 너는 아메리카노나 카페라떼를, 나는 홍차를 주문한다.



홍차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사방에 널린 게 카페인데, 커피랑 홍차를 마시겠다고 산 넘고 강 건너 연남동 깊숙한 곳까지 찾아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열 번에 여덟아홉 번은 하나였다. 혼자가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만으로도, 순례길에 오를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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