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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국수집 오열각

옹심이 칼국수

by 아동


2019년 봄. 병원 담벼락 아래, 짙은 라일락향.

거짓말처럼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어이없이...

허망함에 며칠 말을 잃었다.


세상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죽나.

그래. 누구나 한 번은 죽지만 이건 아니지.

이제 허리 좀 펴고 살 만한데 이게 뭐냐고.


다시 올 것 같지 않던 아침은 어김없이 찾아오고

살아내야 하는 사람은 또 살아 나간다.


엄마 떠나고 지독한 독감에 한 주일을 앓아누웠다.

기침이 끊이지 않았고 뱃속 저 아래 바닥에서부터 가래 덩어리가 가랑가랑 올라왔다.

기침하고 토하다 울다 또 쓰러져 울었다.

아픔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고 티미한 상태로 며칠 지났다.




마음이 시래기 같았고 뱃가죽은 등에 붙은 듯 허했다.

학교 가는 아이들과 함께 출근길에 나섰다. 비 오는 거리는 함빡 젖어 있었다.

등 토닥이며 나를 위로하는 동료들에 그저 고맙기만 했다. 입안이 깔깔하고 간간이 나오는 기침에 물만 들이켰다.


“비도 부슬부슬 오는데 칼국수 한 그릇 할까요?”


자갈이 깔린 넓은 마당 앞 아담한 흙집 하나가 있었다. 정겹게 실내 식물이 놓여 있고 열대어 몇 마리가 여유롭게 헤엄치는 어항이 입구에 자리하고 있었다.

좌식 테이블이 멋스러운 나무 탁자로 쭉 붙어 있었다.

빨갛게 버무린 겉절이 김치가 맛깔스럽게 나왔다.


주문한 옹심이칼국수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났다. 들깻가루에 걸쭉한 국물 속 참기름의 고소함이 확 퍼졌다.


“감사합니다.”

국수 한 그릇 앞에 두고 인사부터 했다.

퀭한 모습 안쓰러워 뭐라도 먹이려는 그 마음이 진정 고마워서였다.

맛이 좋았다. 걸쭉한 국물은 차가운 속을 뜨끈하게 데워 주었고 빈 속에 들어와 넉넉히 자리했다. 쫄깃한 국수에 김치 한점 올려 후루룩 먹었다.

따듯한 분들의 마음을 위해서라도 먹어내야 했다.

고마움이 더해져 속이 든든해졌다.


너른 창문 밖 햇살이 길게 들어오고 있었다.

먹는데 열중하다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테이블에서 누군가 국수를 먹고 있었다. 작은 앉은키는 등이 굽어 있었다. 허옇게 센 머리는 드문 드문 검은 머리와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양 미간 잔뜩 찌푸린 얼굴.

뜨거운 국수 김을 후후 불며 맛있게 먹었다.


꼬리뼈 끝자락부터 뜨끈한 기운이 쭉쭉 타고 올라왔다. 뒤통수를 치고 이마빡에서 눈 언저리까지 내려왔다. 결국 터져 나온 뜨거움에 고개를 숙였다. 젓가락으로 계속 국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가고 있지만 목구멍이 막혀 넘어가지 않았다. 뜨거운 기운 때문에 목구멍이 자꾸 턱턱 막혔다.


“에휴, 웬수. 못 산다. 정말…!”


선배가 휴지 석장 뽑아주고 숟가락을 다시 쥐어 주었다.

고맙게도 앞에 앉은 내 동료들은 각자 그릇 속 옹심이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고개만 들면 보이는 그 허연 머리와 찌푸린 미간을 견딜 재간이 없었다. 펄펄 김 나는 칼국수 국물만큼 뜨겁게 울었다.




한동안 시장을 못 갔다.

드문드문 흰머리 검은 머리가 섞인 짧은 파마머리들 때문에 두 걸음 이상 걸을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도 툭툭 터지는 눈물에 장사하는 분들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눈물이 멈출 때까지 길 한쪽에 서서 나는 나를 기다렸다.

마음이 괜찮다 할 때까지, 이제 좀 나아졌다 할 때까지.

그렇게 나라도 나를 기다려줘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는 안 올 것 같던 봄날은 해를 넘겨 다시 찾아왔다.

울고 싶을 땐 지금도 운다. 굳이 참을 이유 없다.

'참아서 뭐 하나' 싶다.

2019년의 봄 이레, 많은 걸 내려놓았다.

어차피, 누구나 한 번은 죽는다.


가끔은 허망하게 떠난 엄마가 너무 가엽기도 하다.

엄마를 가엽게 만들지 않기 위한 방법은 뭘까?


하루하루 '후회 없이 살자.'라는 슬로건 아래,

먹고 싶을 때 먹고, 울고 싶을 때 울고, 하고 싶을 때 하려 한다.


오랜만에 네 식구 옹심이칼국수 집을 찾았다.

국수 네 그릇 시키고 도란도란 일상을 나눈다.

햇살이 길게 들어온다.


뜨끈한 국물로 마음 데우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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