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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Oct 19. 2023

힘들고 격한 상황에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삼각김밥과 생수 한 병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꼽으라면 단연 '김밥'이다.

간단하고 영양 균형 있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순이'라 불릴 만큼 김이 너무 맛있다. 김과 함께한 요리라면 언제나 대환영이다.


싸놓으면 이쁘기도 하고 먹기에 편하지만 준비 과정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밥물을 조금 작게 해서 고슬고슬하게 밥을 짓는다. 밥 지을 때 다시마 한 조각을 넣으면 감칠맛이 재료와 어우러진다.

김밥은 단연 야채 손질이 생명이다. 단무지를 기준 두께로 맞춰 맛살, 햄을 볶아준다. 오이는 껍질을 소금으로 박박 문질러 씻어 속을 빼고 두께 맞춰 잘라준다. 소금을 살짝 뿌려 절여 물기는 싹 빼준다.  

특히 정성을 기울이는 계란은 10개 정도 풀어 약간 소금간 하고 최대한 약불올려 둔다. 뚜껑을 덮어 익히면 도톰하고 폭신하게 한판 익힌 계란구이가 된다.

조금 뜸 들여 식혀준다. 덜 식혀 칼질하면 이쁘게 잘리지 않고 다 부서진다. 꼭 기다려줘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 가늘게 채 썬 당근을 살짝 기름 두르고 볶아준다. 너무 익히면 아삭한 식감이 없어져 김밥 속 당근의 매력이 떨어진다.


고슬고슬하게 지어진 흰밥이 김 폴폴 날 때, 가는소금 조금, 참기름, 손으로 비벼 으깬 깨를 넣고 잘 섞어준다.


얇게 편 밥알 위에 재료 하나씩 올린다. 김이 시작되는 부분이 반대쪽 밥알에 착 붙도록 누르고 동그랗게 힘을 줘가며 말아 준다.

딴딴하게 말아야 속재료 탈출을 막을 수 있다.

밥알 한 두 개를 붙여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칼을 싹싹 갈아 김밥 꽁지를 넉넉히 남겨 썰어낸다. 야박하게 꽁지를 남기면 삐져 날뛰는 속재료들이 탈출하거나 자포자기 터지는 수가 있다. 살살 잘 달래 꽁지는 좀  넉넉히 남긴다.


육식을 즐기지 않는 것도 이유지만, 바쁜 일상과 먹어야만 하는 상황에 억지로 라도 밀어 넣을 수 있는 음식이 김밥이었다. 어른들이 ‘배고프면 아프다’ 한 것처럼, 배곯아 기운 떨어지면 면역도 떨어진다. 병에 노출될 수밖에 없기에 힘들고 격한 상황에도 먹어야 한다.  그래야, 산다.




평생교육사 실습은 주로 평일 낮시간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학점 이수하고 평생교육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열정 앞선 추진력에 ‘시켜만 주세요’를 외치며 실습처 문을 두드렸다.

직장인으로 절대적 시간 부족의 위험 부담에 실습처 구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10군데 넘게 전화를 했고 결국 도서관 한 곳에서 오전시간과 주말 일부 시간대를 맞춰 실습이 가능하게 되었다.

간절함이 컸고 그 열정을 받아준 곳이기에 도서관 사무실 들어설 때마다 고마움의 크기만큼 큰소리로 인사했다.


조용히 사무만 보던 곳에서 젊은 혈기도 아닌 새실습생의 돌발행동에 당황해했지만 실습 마칠 쯤에는 아쉬워들 했다. 아침 8시에 도착해 강의실 문을 열어 환기하고 책상도 깨끗이 닦았다. 강사님 오기 전에 PC와 빔프로젝트를 켜두고 수업 준비물을 준비했다. 어르신들의 문해교육에는 한글 수업에 함께 수업 보조도 했다.

힘들다기 보단 실습시간이 오전만 잡혀 있어 오후시간대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더 마음에 걸렸다.


점심시간 전으로 오전 실습을 마치면 낮도깨비처럼 미친 듯 뛰었다. 다들 점심 먹는 시간에 차를 잡아 탄다. 가방에서 삼각김밥과 생수 한 병을 꺼낸다. 매일 아침 실습처 가는 길 편의점에서 삼각 김밥 두 개와 생수 한 병을 미리 샀다.

안 먹으면 아픈 법이니까. 밥은 꼭 먹어야 한다.

내달린 택시가 총알같이 회사 앞까지 도착하면 빛의 속도로 내려야 한다. 멀미로 부글거리는 속을 참고 참다 도로가 옆 단풍나무 아래 와락~ 쏟아낸다.

먹지를 말았어야지.  먹고 내놓을걸 뭐 하러 먹누.

그래도 운 좋은 날은 잘 참고 넘어간다. 먹지 않으면 아프다. 그래서 밥은 꼭 먹어야 다. 버티기 위한 부적 같은 말이었다.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에 응급실로 달려갔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 한시도 곁을 비울 수 없었다. 화장실 가는 발걸음에도 뒤를 돌아봤다. 병실로 옮기자마자 병원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늦은 밤. 딱 두 개 남은 삼각김밥을 집어 들고 생수 한 병을 샀다. 응급실 온 이후 아무것도  먹고 버티고 버티다 든 생각은 그랬다.

‘내일 아침 먹어야 된다. 내가 아프면 끝장이다.’

나는 먹어 내야 하는 사람.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간병 보호자기 때문에… 그다음 날까지 하루 네 개의 삼각 김밥과 생수를 샀다. 평소엔 없던, 제일 좋아하는 대게딱지장 김밥이었다.


대게딱지장 김밥은 먹지 못했다. 대신 영안실 벌건 육개장 국물 두어 모금에 밥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스무 번도 더 넘게 씹고서야 목구멍으로 넘길 수 있었다.

나흘 뒤 유품정리하며 김밥과 다시 마주했다.

엄마 입었던 옷과 신발을 넣어둔 병원 가방에서 까만 봉지에 똘똘 뭉쳐 싸놓은 김밥과 생수를 꺼냈다.

엄마는 아무래도 인스턴트 김밥이 싫었던 모양이다.


김밥은 속재료 잘 넣어 내 손으로 싸 먹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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