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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동 Oct 20. 2023

한번만 먹어봐라. 딱 한입만!

간 천엽


대구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공원이 하나 있다.

도심 중심에 있고 코끼리,호랑이 같은 웬만한 동물들이 다 모여있는 동물원이기도 다.


봄이면 삐약삐약 유치원생들 줄지어 소풍 오고, 여름이면 50년도 더 된 버드나무 아래 시원하게 피서도 했다. 가족끼리 놀러왔다 근처 큰장에서 장 보고 잔치국수 한 그릇 먹기 안성맞춤인 곳이다.


큰 장과 공원이라는 장점이 만나 다양한 먹거리가 많았다. 공원 입구 옆으로 포장마차가 쭉 들어차 있었다.

보글보글 끓는 번데기와 쪽 빨면 쫀득한 살이 쏙 빠지는 고디를 팔았다. 신문지를 꼬깔처럼 말아 국물 살짝 뺀 번데기와 고디를 담아줬다. 물론 보기는 많이 봤지만 자주 사먹지는 못했다. 큰장 그 길 앞 번데기 냄새는 수십년 지나도 여전히 코끝에 남았다.




갈래갈래 난 골목길에 국수집, 국밥집, 실비집이 개성있게 자리하고 있었다. 아부지 따라 가면 묵직한 자전거를 세워두는 곳이 있었다. 몇몇 지인분들과 반가움 나누는 곳이다.

국수집 옆 간판도 없는 허름한 가게였다.

뭘 파는 곳인지 적혀 있지도 않았고 대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 컴컴했다. 나는 국수집 입구에 앉았고 아버지는 옆 가게 입구에서 막걸리 한잔 걸쳤다. 덕분에 잔치국수 한그릇 얻어 먹을 수 있었다.

국수 먹고 후루룩 국물을 마시고 있으면 아버지가 꼭 불렀다. 발걸음을 떼기 무섭게 비린내가 코끝을 덤벼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며 고개를 잘래잘래 흔들었다.

입술을 깨물며 미간 찌푸린 아버지가 무서워 가기는 다시 갔다.


“자, 이거 한번 먹어보자.”

아버지 지인들은 빙글빙글 웃었다. 이미 초경계 태세로 입틀막한 아이 모습이 꽤나 우습고 귀여워보였을테다.


번들번들 핏빛 도는 덩어리와 시커먼 덩어리는 부엌 바닥에 약 먹고 늘어진 쥐하고 모양세 같았다. 소 간, 천엽과 돼지 지라를 막걸리 안주로 곁들이고 있었다. 젓가락에 벌건 핏물이 묻어 있었고 고운 소금 위로 벌건 핏물이 맺혀  있었다. 눈엔 그저 생지옥이나 다름 없었다.


큰 장에서 본 벌건 고깃덩어리가 생각났다. 눈앞이 팽그르르 도는 것 같다. 저건 먹는거 아니아...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에 골목 입구가 어딘지 곁눈짓으로 살폈다.


“아니, 아니. 안 먹을래요.”

“에헤이. 맛있는거야. 한번만 먹어봐라. 딱 한입만!”

“나는 싫어요.”


뒤도 안 돌아보고 골목 밖으로 냅다 뛰었다. 이름을 부르는 아부지 목소리는 애가 탔다.


혼자 집까지 걸었다.

해가 어둑어둑해졌다. 더 어두워지면 무서워지니 그때 부턴 내달리기 시작한다. 대문 앞까지 뛰어오면 숨이 턱에 찬다. 끼익끼익 소리를 내며 아버지 자전거가 도착한다.

다리는 아프고 억울한 마음에 입을 삐죽거려본다.

아부지는 자전거를 세우고 내 머리를 힘주어 쓰다

듬었다. 자전거 뒷자리에서 봉지 하나를 꺼낸다.

아이 혼자 걸어온 그 짧지 않은 길을 생각해서였을까?

호떡 3개가 들어있다. 후다닥 들고 들어가 이 번, 삼번나눠 먹는다. 한입 베어 물면 꿀물이 뚝뚝 흐른다.  설탕이 녹은 걸 꿀이라 여기며 참 맛있게도 먹었다. 호떡을 다 먹고 나니 엄마는 접시 하나를 들고 왔다. 낮에 본 그것들이다!  슬금슬금 앉은 채 엉덩이 후진 하는 나를 본 엄마는 방 한구석으로 이삼번을 불러 모았다. 고소한 참기름과 굵은 소금 넣은 기름장에 푹 찍어 제비처럼 재잘대는 들 입에 쏙쏙 넣어 주었다. 다행히 엄마는 아쉽게 웃으며 안먹어도 된다고 했다.


딱 한입만.

그 한입만은 미성에서 성년이 될 때까지 곧잘 따라다녔다.

입 짧은 자식 때문에 부모 속이 타들어간다는 건 비로소 내 자식 낳고서야 알았다.


딱 한입만은 호랑이 같은 어른을 만나며 다시 마주하게 됐다. 아이 출산 후 몸조리로 누워있는데 세상 어디에서도 맡아 본적 없는 고기 누린내가 코를 찔렀다. 모유수유를 돕는 돼지족발을 끓이고 있었던 것이다.

토악질이 올라와 견딜수 없었다. 결국 화장실 갈 사이도 없이 널브러진 수건에 왈칵 토해내고 말았다. 방문이 열리고 참 어렵기만 한 시어른은 모락모락 김 나는 그릇을 내려놓았다.

주섬 주섬 수건을 치우고 몸을 일으켜 앉았다.


“한번 먹어봐라.”

머뭇거리다 숟가락을 들었다. 갑자기 툭 터진 눈물이 누리끼리한 그릇에 후두둑 떨어졌다.

깜짝 놀란 어른이 할말을 잃었다.

어른은 멍하니 바라만 보다 조용히 나갔다.

‘저는 먹기 싫어요.’ 그렇게 먹기 싫은 음식을 싫다 대답하기까지 10년이 더 걸렸다. 




삼십년 넘어 가지만 여전히 입은 짧고 음식은 가려 먹는다. 아부지는 '태생이 까칠해서' 라며 아직도 놀린다. 그럼에도 예전에는 쳐다보기에도 힘들었던 간, 천엽을 요즘은 내 손으로 산다. 싫다고 별미 음식 즐기는 식구들에까지 영향을 주는 건 나 역시 마음 편치 않아서다. 영양분과 미네랄 풍부한 생식의 반전을 믿어 본다.


누군가의 수고와 정성으로,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은 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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