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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fe Designeer Jan 10. 2020

말과 글, 언어의 온도

독서노트 #51 < 언어의 온도 >

틈은 중요하다.
 어쩌면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다만 틈을 만드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늘 완벽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때로는 '틈'이 우리의 숨통을 열어주기도 한다. 빈칸을 보면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의 심리, 어딘가 부족하면 모두 메우고 봐야 할 것 같은 주입된 우리의 문화. 틈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틈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따뜻한 말, 생각을 하게 만드는 말로 가득 찬 이 책 <언어의 온도>는 2~3년 전 엄청난 인기를 휩쓸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베스트셀러에서 내려오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다시 보아도 공감이 되는 좋은 글귀가 많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 p30

입을 닫는 법, 그리고 귀를 여는 법. 아니, 정확히는 마음의 문을 여는 법이 맞을지도 모른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 사람은 어떤 말을 들어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게 되어있다. 심지어 왜곡해서 듣기도 하고, 자신의 감정과 상황이라는 선입견을 씌운 채 마음껏 자기 입맛에 맞게 조리해 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외향적인 사람이든 내향적인 사람이든, 모두 자신의 방식에 맞게 말이다. 우리는 태어났을 때, 부모 또는 주양육자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다. 그러고 나서 타인에게 사랑을 나누어줄 줄 안다. 부모로부터 말소리를 듣고, 말을 따라 말하게 된다.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먼저 타인의 이야기를 들어줄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우린 사랑에 이끌리게 되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의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역시 사랑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 p43

사랑을 통해 한 번이라도 타인을 만나고 헤어짐을 경험한 사람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내 발걸음, 내 생각, 내 말이 결국은 사랑하는 '너'를 향했던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나'를 위한 것이었단 걸.

그리고 상대를 위해 '나'를 희생하는 관계는 결국 언젠가 끝이 보이는 것 같다.


노력은 스스로 발휘할 때 가치가 있다.
 노력을 평가하는 일도 온당하지 않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관심은 폭력에 가깝고
상대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건 착취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 p81

부담스러운 관심은 폭력이고 노력을 강요하는 것은 착취라는 말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기준에 남을 맞추려 드는 행위는 폭력이다'인 것 같다. 관심 역시 상대가 원하지 않는 나의 관점이고, 강요 역시 내 기준에 상대를 변화시키려는 나의 욕심이다. <미움받을 용기> 책에서의 내용이 떠오른다. 나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시키는 것. 타인의 감정, 의무, 책임, 권한은 타인의 과제이지 나의 과제가 아니라는 것만 인지해도, 우리는 상대에게 정신적 폭력을 휘두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아버지들의 뒷모습은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낙타를 닮았다.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는 조직 생활에서 제 한 몸 추스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반복적인 하루를 보내며 간신히 버티는 날이 수두룩하기 때문일까.

- p 132

이 부분을 읽으며 아버지가 생각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첫 직장에서 만난 첫 팀장님이 떠올랐다. 당시 팀장이시던 그분은 40대 초에서 중반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던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내가 입사 후 1년이 좀 안된 시점에 조직개편으로 임원이 바뀌면서 팀장님은 팀장 자리에서 파트장도 아닌, 파트 내에 선임급도 아닌, 일개 평사원과 동일한 위치로 좌천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평사원과 같이 똑같이 장비를 배우며 20살이나 어린 엔지니어들과 오퍼레이터들 사이에서 실무를 배웠다. 절대로, 결코 아무렇지 않았다면 거짓말 이리라.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다. 당시에 나는 너무 힘든 시기였기에 남의 상황을 공감할 처지가 아니어서, 그분이 그다지 안타깝다는 생각을 많이 하진 않았다. 그저 대단한 정도로 보였을 뿐이다. 당시 첫째가 고3, 둘째가 초3이라는 걸 알았기에 가장은 위대하다 생각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내가 이직과 진급과 결혼과 육아와 진학과 퇴사와 사회의 부조리를 알면 알수록, 그 당시 좌천된 팀장님의 가슴이 얼마나 쓰렸을지 나는 이해한다고 말하기엔 아직도 부족할지 모른다. 그분은 우리 센터 33명의 신입사원들 중, 남녀 통틀어 나를 1순위로 선택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힘들었을 때 더 원망스럽기도 했고, 그래서 지금까지 더 생각이 나는지도 모른다.

예전엔 주로 남자가 경제활동을 해서 가정을 책임졌기에 아버지의 뒷모습으로 형상화가 되었지만, 나는 내가 가장의 역할로서 경제적이나 정신적으로 일정 부분을 많은 책임을 지며 살아와서 이 글귀가 더 가슴이 아프게 다가온 것 같다. 시대가 달라지고 있다. 많은 워킹마미와 워킹대디가 하루하루를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뿌듯하게 보내기를 바라는 마음이 오늘따라 간절하다.



아마추어는 무조건 내공을 갈고닦아 프로로 거듭나야 할까?
흠, 그럴 리 없다. 살다 보면 프로처럼 임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아마추어처럼 즐기면 그만인 때도 있다.
프로가 되는 것보다, 프로처럼 달려들지 아마추어처럼 즐길지를 구분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프로가 되는 노력은 그다음 단계에서 해도 된다.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다. 프로처럼 처리해야 하는 일을 아마추어처럼 하면 욕을 먹기 쉽고, 아마추어처럼 즐겨야 하는 일에 프로처럼 목숨을 걸다가는 정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 p160

일과 취미의 경계가 떠올랐다. 일이라는 전문성을 요하는 영역에서 아마추어가 설 자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특히 목숨이 걸린 의학 관련 일이거나, 법과 관련된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취미의 경우, 아마추어처럼만 해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다. 하지만 취미를 생계를 책임지는 일로 만들어버리면, 상황이 달라지는 것 같다. 프로들도 살아남기 힘든 생계 전선에서 아마추어처럼 즐기다가는 어느새 스스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도 모른다.

프로처럼 임해야 하는 순간과 아마추어처럼 즐기면 되는 순간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기다림은 무엇인가.
어쩌면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 p163

기다림.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기다림. 음식점에서 메뉴를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는 그 순간을 상상하는 일.

기다림. 놀이공원에서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서 놀이기구를 타는 그 순간을 상상하는 일.

기다림.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고 승낙을 받을지 퇴짜를 맞을지 애타는 마음으로 그 순간을 상상하는 일.

기다림. 시험을 치르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떨리는 마음으로 그 이후의 계획을 세우는 일.

기다림. 뱃속의 아기가 태어날 때까지 출산 도구를 사놓고 미래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일.

기다림. 비행기 티켓을 예매해놓고 여행 계획을 세우며 미래의 기분을 상상하는 일.

기다림. 매일 하는 운동이 고달프고 지겹지만 더 건강한 몸매를 갖게 될 거라고 위로하는 일.

기다림. 영어공부를 꾸준히 하며 원어민처럼 말하게 되는 미래를 상상하는 일.

기다림. 오늘은 어제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거라고 희망하는 일.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 p248

'일시 멈춤' 또는 '잠시 멈춤', '쉼표', 영어로는 'PAUSE' 이 말들이 어느 순간부터 참 좋다.

지금까지 너무 내달리기만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 늘 적어놓던 말이 있다. '인생은 망중한'이라는 말.

중학생이던 그 시절,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이런 말을 좋아했을까 싶다가도, 우리는 알지 않은가. 중2는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질풍노도의 시기일수록 철학적인 말과 인문학적인 말이 더 와 닿았던 것 같다. 참 웃기긴 하지만 그때부터 인생철학을 운운하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나는 항상 목표물이 있어야 달려가는 사람이어서, 나 스스로 억지로 제동을 걸지 않으면 쉽게 멈추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저 말이 참 좋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능 하리라.'


갑자기 우리의 인생이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고속도로 같이 쌩쌩 달리는 길이 있는가 하면, 울퉁불퉁 꼬불꼬불 시골길에서는 천천히 서행해야 하고, 수많은 신호등이 즐비한 시내에서는 서로 규칙을 지키며 달려야 하고, 휴게소에서 잠시 쉬기도 하고, 불법 주정차를 하기도 하고, 안전한 집으로 돌아오면 주차장에 예쁘게 주차하는 것. 그리고 교통사고를 피하기 위해 안전 운전하는 것까지!



사람 보는 '눈'이란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과,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을.

- p283

사람 보는 눈이 좋다고 표현하는 몇몇 사람들을 본 적이 있다. 특히 인사팀에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그런 말을 더 많이 듣는다. 영업 쪽에서 일한 사람들도 사람을 많이 만나봐서 그런지 잘 파악하는 것 같다.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대략적으로 꿰뚫어 보는 것, 그것은 개인의 관찰력이나 경험을 기반으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순히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는 것과 그 사람의 장점을 발견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때는 그 사람의 단점 역시 수두룩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백개의 단점을 들추어 지적질하는 것보다 하나의 장점을 발견하여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 그것이 '진정 상대를 위한 사람 보는 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상대를 믿어주고, 격려해주는 일. 가장 가까운 내 주변에서부터 실행에 옮기고 싶다.




다시 읽어도 좋은 내용이 많았다.

같은 부분을 읽어도 3년 전 읽었을 때의 느낀 점과 지금의 느낀 점은 다를 것이다.

물론 비슷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나의 감정을 돌아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해 감사하다.

말과 글, 언어의 온도는 나의 감정의 온도를 나타내는 것이 아닐까.




* 책 제목 : 언어의 온도

* 저자 : 이기주

* 출판사 : 말글터

* 출판일 : 2016년 8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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