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51 < 언어의 온도 >
틈은 중요하다.
어쩌면 채우고 메우는 일보다 더 중요한지 모르겠다.
다만 틈을 만드는 일이 어렵게 느껴지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우린 늘 무엇을 말하느냐에 정신이 팔린 채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 p30
우린 사랑에 이끌리게 되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의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이 역시 사랑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 p43
노력은 스스로 발휘할 때 가치가 있다.
노력을 평가하는 일도 온당하지 않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관심은 폭력에 가깝고
상대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건 착취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 p81
그러고 보면 퇴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아버지들의 뒷모습은 사막 한가운데에 서 있는 낙타를 닮았다.
홀로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들은 어딘지 모르게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위에서 눌리고 밑에서 치이는 조직 생활에서 제 한 몸 추스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까. 반복적인 하루를 보내며 간신히 버티는 날이 수두룩하기 때문일까.
- p 132
아마추어는 무조건 내공을 갈고닦아 프로로 거듭나야 할까?
흠, 그럴 리 없다. 살다 보면 프로처럼 임해야 하는 순간이 있고 아마추어처럼 즐기면 그만인 때도 있다.
프로가 되는 것보다, 프로처럼 달려들지 아마추어처럼 즐길지를 구분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프로가 되는 노력은 그다음 단계에서 해도 된다.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다. 프로처럼 처리해야 하는 일을 아마추어처럼 하면 욕을 먹기 쉽고, 아마추어처럼 즐겨야 하는 일에 프로처럼 목숨을 걸다가는 정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 p160
기다림은 무엇인가.
어쩌면 기다림은,
희망의 다른 이름이 아닐까?
...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 p163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 p248
사람 보는 '눈'이란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과,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을.
- p2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