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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한 Apr 15. 2018

벚꽃 스타팅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개인적으로 정확히 20년 전 벚꽃이 만발하던 이맘때 군에 입대했다. 부모님과 훈련소로 달려가던 차 안에서 답답한 마음으로 내다본 창밖 풍경은 내 마음도 몰라주듯 따뜻한 봄날이었다. 가는 길마다 벚꽃으로 흩날리는 축제의 순간들이었다. 나만 빼고 야속하게 아름다운, 모두에게 따뜻한 그런 날이었다. 그 이후 매년 벚꽃이 피고 봄바람이 휘날리는 이 무렵이 되면 입대하던 그때가 생각난다.


우연히도 딱 10년이 지나 다시 벚꽃이 만발할 때 이번에는 결혼식을 올리게 됐다. 벚꽃은 봄을 맞을 준비가 채 못 된 우리 마음에 늘 느닷없이 찾아온다. 그러고는 바쁜 틈에 돌아보면 벌써 꽃잎을 떨구어 버리고 만다. 이제 벚꽃이 피면 군대 가던 일뿐만 아니라 결혼하던 추억도 함께 떠오르곤 한다.


벚꽃이 빨리 떨어져 버리는 것을 많은 이들이 아쉬워한다. 그러나 나는 그 떨굼이 작별도 아니고 엔딩도 아님을 알고 있다. 피고 지는 것의 희락이 아닌 순간의 영원함과 소중함을 느끼면 그뿐이다. 초록의 새 순을 발견한 어느 아침 싱그러운 우리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리면 그뿐이고, 떨어지는 꽃잎이 어깨를 스칠 때 내일을 향해 숨 가빴던 우리 청춘의 어느 고단함을 잠시 회상하면 그뿐이다. 다만, 그 순간을 영원처럼 느끼고 즐겨보자. 오늘을 사랑하자.


얼마 전 회사 동료가 공유해 준 이해인 님의 시가 가슴에 들어온다.


# 4월의 시
- 이해인

꽃 무더기 세상을 삽니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도
세상은 오만가지 색색의
고운 꽃들이 자기가 제일인 양
활짝 들 피었답니다.

정말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새삼스레 두 눈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고,
고운 향기 느낄 수 있어 감격이며,
꽃들 가득한 사월의 길목에
살고 있음이 감동입니다.

눈이 짓무르도록 이 봄을 느끼며,
가슴 터지도록 이 봄을 즐기며,
두 발 부르트도록 꽃길 걸어 보렵니다.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지요.

오늘 이 봄을 사랑합니다.
오늘 곁에 있는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결혼 후 다시 10년이 지난 요즘 벚꽃이 지고 있다. 내 인생의 또 다른 변화들을 기대해 본다. 다시 한번 벚꽃과 함께하는 추억을 만들어 보고 싶다. 벚꽃의 피고 짐을 아쉬워 말라. 벚꽃의 흩날림에서 또 다른 내일의 시작을 발견하자. 내일도 내 것이 아닌데, 내년 봄은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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