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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한 Feb 25. 2018

둘째 아이를 꼭 가져야만 하나요?

저는 둘째를 거부하는 남편입니다

둘째 안 낳냐?

사람들은 총각일 때는 '결혼 안 하냐' 물었고, 결혼을 하고 나니 '애 안 낳냐?' 물었습니다. 이제 애를 낳았더니 '둘째 안 낳냐?' 고 매번 묻습니다. 둘째를 낳고 나면 다음 재촉은 무엇일까요?


저는 아내에게 미안합니다. 둘째 아이를 거부하는 남편이기 때문입니다. 첫 아이가 올해 다섯 살이 되는 만큼 지난 몇 년간 둘째를 낳을 것인가 아내와 고민해 왔습니다. 아내는 지금이라도 낳았으면 하는 의견이고 저는 반대 입장입니다.


보통은 힘든 출산 과정을 겪은 엄마들이 둘째는 못하겠다 선언하고, 육아를 상대적으로 덜 하는 아빠들은 철없이 하나 더 낳자고 조르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집은 반대입니다. 엄마는 기꺼이 출산의 고통을 감수하고 둘째를 낳아보려 하는데 남편이 반대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하지만 특이하게 우리 집은 남편인 저보다 아내가 야근을 더 많이 하고 출장도 잦습니다. 그러다 보니 남편인 제가 더 육아를 많이 하는 편이고, 유치원은 어딜 가야 하는지 기저귀 사이즈는 5호인지 6호인지 아내보다는 제가 챙기고 있습니다. 이런 특성상 어느 정도는 엄마적인 고충이 담긴 입장이기도 합니다.


나는 왜 둘째를 가지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동안 고민해 본 부분을 몇 가지 써봤습니다.


1.

아이가 외로우니 하나 더 낳아야 한다?


둘째를 낳는 이유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부분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저도 남동생이 있지만 어릴 적 함께 놀았던 추억들이 소중하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의지하는 부분이 큽니다. 하지만 남자 형제여서 그런지 성인이 되고 나면 사실 바빠서 서로 만나기도 힘들고 외동으로 자란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알콩달콩한 이벤트가 계속 이루어 지진 않습니다. 형제가 다섯인 집도 저마다의 외로움을 안고 살아갈 것입니다. 또, 형제가 많다고 늘 행복한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든 둘이든 중요한 것은 아이가 자립심과 자존감을 갖도록 삶의 방식을 가르쳐 주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요. 형제가 없다면 친척 동생들과 유대감을 갖도록 관계를 만들어 주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형제가 있다고 꼭 행복한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2.

이런 예쁜 아이를 하나 더 갖고 싶지 않은가?


물론 하나 더 갖고 싶습니다. 첫째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볼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낍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보다는 삶의 의미를 추구하라'라고 했던가요. 자식을 키우며 느끼는 고달픔과 행복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고 감동적인 일입니다. 나는 아이 낳기를 망설이는 신혼부부들에게 그렇게 말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고난인 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하나 더 낳는다는 것은 인형 하나를 더 갖고 싶다 말하는 것과는 다를 것입니다. 아내는 첫아이를 출산하기 전 유산도 경험했고, 첫째를 임심 했을 때는 회사에서 엠뷸런스에 실려가 2주간 입원도 해 보았습니다. 그런 경험이 트라우마가 된 것일까요, 첫째 아이처럼 예쁜 아이를 하나 더 갖고 싶긴 하지만 건강한 출산을 무사히 감내해 낼 수 있을지 사실 걱정이 됩니다.



3.

남녀 두(2) 사람이 만나 결혼을 했으니 최소 두(2) 명은 낳아야 하지 않나?


낮은 출산율이 화제에 오를 때면, 사실 죄를 짓는 기분이 듭니다. 자연의 섭리에 반하는 이기적인 삶을 사는 것만 같습니다. 두명이 만났으니 둘을 낳아야지 하나만 낳으면 마이너스가 되지 않느냐 말들 합니다.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제도적인 문제까지 거론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인구 문제 해결을 위해, 혹은 자연의 섭리를 걱정하여 둘째를 결심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가끔, 집 앞에서 꼬맹이 남매가 아장아장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볼 때, 아니면 아이들 둘과 엄마 아빠 네 명이 함께 차를 타는 모습을 볼 때면, 1이나 3이라는 홀수의 숫자는 미완성이고, 2와 4는 완성인 기분이 듭니다. 아이가 둘인 가정은 뭔가 완결된 모습으로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이 부분에서 저도 미결된 숙제를 끝마치고 싶은 충동이 듭니다. 그렇다고 숙제하듯 결심을 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4.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나는 힘든 것일까?


물론 우리가 재벌이었다면 둘이나 셋을 걱정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꼭 돈 문제 만도 아닙니다. 삶에 여유가 있는가의 문제인 듯 합니다. 돈이 많다면 어느 정도는 삶에 여유가 생길 것이기에 따로 떨어질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어쨌든 돈보다는 삶의 여유에 관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5.

우주 어딘가에 떠다니고 있을 둘째의 존재가 궁금하지 않은가?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우주에 있는 셋째, 넷째까지 계속 낳을 순 없지 않습니까.



예쁜 딸아이를 낳아준 아내에게 늘 감사합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소중한 하루가 깨어질까 노심초사합니다. 글을 쓰다 보니 핑계를 찾기에 급급한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글을 쓴다는 것이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합니다. 둘째가 태어난다면 저는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행복해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의식을 갖고 고민하여 둘째 아이의 임신을 결정하고 싶습니다. 다들 낳으니까 둘째를 낳기보다는 내가 잘 키울 수 있을까,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해 봅니다. 육아는 힘듭니다. 아이를 키울 환경은 어렵습니다. 그래도 꼭 둘째를 낳아야 하나요?



*요즘은 아이를 낳고 싶어도 임신이 되지 않아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게 그분들께는 송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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