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돌이킬 수도 붙잡을 수도 없는 순간을 놓치는 것이다. 미국 여행을 앞두고도 설렘이나 기대함 없이 무심하게 시간을 보내고, 편하게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것, 따박따박 월급 나오는 직장이 있는 것, 일할 수 있는 신체를 가진 것, 무난한 상사를 만난 것들에 대한 감사가 없으므로 모든 순간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흘려보낼 수 있다. 지금은 그런 순간이고, 흘려보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양립할 수 없는 두 가지 감정을 놓고 저울질하기는 싫다. 내버려 둔 시간을 옭아매거나 붙잡기도 싫다. 손에서 스르륵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