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희정 Aug 15. 2023

13분간의 의식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불친절한 글 하나 따위

 아침에 일어나 몽롱한 의식을 질질 끌고 책상에 앉아 아프리카에 사는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며 아프리카의 별들에 대한 상상에 빠졌다가 손가락의 심심하다는 아우성에 휴대전화로 손을 뻗어 인터넷의 바다를 유유히 수영했다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호통치는 뇌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서 가볍고도 묵직한 현대판 숯검정을 떨어뜨리듯 내려놓고 미루고 싶던 그 작업을 다시 열어 하얀색은 백지요 검은색은 글이란 마음으로 돌아가 읽고 또 읽기를 무한 반복하며 지금 여기는 내가 사는 집인가 내가 만든 세상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갇혀 있는 감옥인가 생각을 하다가도 이 기쁜 고통을 조금만 누리고 이 고독을 조금은 누그러뜨리고픈 마음에 글 벗들의 글로 잠시 도피도 해봤다가 그것조차 영원할 수 없음을 알기에 나는 다시 내가 세운 고요 속에 풍덩 빠져들어 끊임없이 문장 채썰기를 하다가 삐뚤빼뚤 못난 모양들에 못내 마음이 상해 머리를 쥐어뜯으니 생각의 부스러기들이 후두두 떨어져 저걸 쓸어 담을까 말까를 고민하던 중 그 누가 신경 따위 쓰겠냐고 이 또한 나의 부분이라고 금세 단념하며 대로 노트북을 덮고 밖으로 나가야겠다고 외치고 머리를 질끈 묶고 새로 산 흰색 와이셔츠 같은 나이키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갑자기 어디를 가냐는 딸의 말을 뒤로 넘기고 나는야 소중하고도 아픈 혼자만의 시간을 찾아 떠난다고 의미 없는 중얼거림을 내뱉으며 찾은 곳은 별다방인데 별은 없고 나처럼 노트북이란 무기를 하나씩 들고 앉아 있는 사람의 무리에 아 나는 그만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고 남몰래 전우애를 느끼며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쓰면서 혼자 킥킥거리고는 이렇게 혼자서도 잘 논다고 내가 있던 자리에는 먼지조차 피지 않으리라고 비뚤어진 생각도 해보았다가 이 황금 같은 시간에 교정하지 않을 거면 자신이라도 교정하라고 쓸데없는 중의적 표현도 써봤다가 어차피 모든 말은 다 이중의미가 있다는 생각에 귀결하고 그사이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의 에스프레소 프라푸치노는 자연스럽게 흙탕물로 바뀌어버렸고 이럴 줄 알았다면 자바칩을 시켜 잘근잘근 씹을 걸 그랬다고 간교한 생각을 혀로 놀리는 와중에도 피 같은 13분이 지났다고 아까워서 붙잡으려고 헛손질을 날리려다 시간이란 어차피 지나쳐야 맛이라는 합리화로 골인하며 그냥 집에 있을 걸 그랬다고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아이 방이 훨씬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의미 없는 후회도 해봤다가 갑자기 울리는 벨소리에 깜짝 놀라 정신을 차리니 언제 올 거냐는 딸내미의 성난 음성에 나는 또 후다닥 짐을 챙겨 라일락 꽃향기보다 좋은 땀 냄새 저린 방으로….

작가의 이전글 1년 만에 책을 출간하는 비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