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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Nov 11. 2023

슬픈 밤에는 그림자를 봐요

마음 스펀지에 슬픔을 가득 빨아들인 채 밖을 나섰다.

지나가는 모든 건물이 불빛을 쏟아내자, 하늘은 빛이 범람한다.

달은 홍수를 피해 도망가 버렸다.

조명 크림 바른 거리는 보기와 달리 딱딱하다.

짐짓 실망감을 감추며 앞을 향해 걸었다.

아무것도 읽을 수 없는 타인의 걸음걸이 아래로 떨어지는 허탈감.

가슴에도 금이 갔는지 움직일 때마다 탈탈 검은 때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난다.

바닥에는 그림자 무리가 허영거린다.

내밀한 눈발로 바쁘게 한 떼를 뒤쫓는다.

사방을 에운 네온사인이 광명과 미명을 뿜을 때마다 나오는 연약한 생명.

한 사람의 발아래 숨어있는 그들은 아울러 맞닿아 있다

발끝에서 서로를 붙잡고 동쪽에서 남쪽으로 다시 서쪽에서 북쪽으로.

무념의 순간에는 삶의 고통도 의미가 사라진다.

오늘은 아른대다 사라진 그림자 위로를 밟았구나.

사사로운 아픔에 내 인생을 희생시키고 싶지는 않다.

친구는 하루하루 즐거운 게 더 소중하다고 말했다.

나도 그렇다.

참말로 그렇다.

상념은 희미해져도 결심은 점점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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