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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an 07. 2024

과거의 노트를 덮었던 시간

1. 오늘의 문장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과거를 내려놓지 못하는지, 혹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선의 일화가 있다. 탄잔이라는 선승이 에키도라는 승려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 뒤 몹시 진흙탕으로 변한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마을 근처까지 오자 그들은 길을 건너려는 젊은 여인과 마주쳤다. 그런데 진흙탕이 너무 깊어서 입고 있는 비단 기모노가 더러워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탄잔은 곧바로 그녀를 등에 업고 길 반대편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후 두 수도승은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계속했다. 다섯 시간 뒤, 그날 밤 머물게 될 절이 보일 때쯤 에키도가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 처녀를 등에 업고 길을 건너다 주었는가? 우리 수행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가?”
탄잔이 말했다.
“나는 몇 시간 전에 그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녀를 업고 있는가?”    

출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저/류시화 역


 2. 문장에서 시작된 내 삶의 이야기     


 점심시간이 되어 다들 식사하러 떠나고 나만 남았다. 마지막 정리를 마치고 식당으로 가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깜빡하고 휴대전화를 놓고 나온 것이다. 즉각 사무실로 돌아갔다.      


 오전 근무만 하고 퇴근한 줄 알았던 이가 언제 다시 돌아왔는지 흙빛의 얼굴로 혼자 눈물을 쏟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작고 조용한 공간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어쩔 줄 모르던 내 두 손을 서로 맞잡고 한쪽 벽을 응시했다. 오직 그녀의 눈물을 가만히 들었다. 그녀가 요즘 퇴사까지 고려하고 있다는 사실은 진작부터 눈치채고 있었다. 그래도 항상 씩씩하고 당당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녀는 그간 쌓여왔던 울분과 서러움을 눈물 사이로 떨어지는 투박한 조각처럼 뱉어냈다. 마음에 소리 조각을 최대한 쓸어 담고 어설픈 위로를 건넸다. 그녀의 거친 숨소리가 여전히 잠잠해지지 않았기에 위로의 말은 입김처럼 공허하게 공기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는 생각을 정리하려고 잠시 숨을 골랐다. 곧 두서없는 말이 입에서 조금씩 떨어졌다.     


사실 직장이라는 곳이 행복한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아.

나의 많은 나날도 그러했어.

그러기에.

힘든 시간을 함께 쓰는 서로를 위하며 지내자.

나도 더 노력할게.

떠나지 마….      


 그 말을 하는데 그녀의 눈물이 내게도 찾아왔다.     


 그녀는 적어도 후련하다고 말하며 자리를 떠났다. 그러나 내 마음은 이후에도 계속 그 자리에 머물렀다. 마음이 아팠다. 매일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과의 관계는 참 어렵다. 나 역시 그녀에게 일말의 원망이 있었지만, 이제는 한 줌의 원망까지 다 버리려고 한다. 짧은 인생을 누군가에 대한 미움과 자신을 괴롭히는 슬픔으로 채우고 싶지는 않으니까.      

 

과거는 언제나 예전 노트에 삐뚤빼뚤 써두었던 글과 같다. 내 기록이 마음에 들진 않지만, 전부 지울 필요는 없다. 다만 들춰보며 그땐 그랬었지, 하고 노트를 덮으면 그뿐이다. 그녀와의 관계도 그렇다.     




⭕라라크루 [금요문장: 금요일의 문장 공부]_2024.1.5     


⭕참여 방법: [오늘의 문장]을 보고 [나의 문장]을 만듭니다. 정해진 방법은 없습니다. 끌리는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나만의 표현으로 만들어보세요. (단, 타인의 문장을 따라서 쓰는 건 피하시기 바랍니다) 비슷한 주제로 새로운 글을 써보셔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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