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과거를 내려놓지 못하는지, 혹은 내려놓으려 하지 않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선의 일화가 있다. 탄잔이라는 선승이 에키도라는 승려와 함께 폭우가 쏟아진 뒤 몹시 진흙탕으로 변한 시골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마을 근처까지 오자 그들은 길을 건너려는 젊은 여인과 마주쳤다. 그런데 진흙탕이 너무 깊어서 입고 있는 비단 기모노가 더러워질 위험에 처해 있었다. 탄잔은 곧바로 그녀를 등에 업고 길 반대편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후 두 수도승은 침묵 속에서 발걸음을 계속했다. 다섯 시간 뒤, 그날 밤 머물게 될 절이 보일 때쯤 에키도가 마침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왜 그 처녀를 등에 업고 길을 건너다 주었는가? 우리 수행자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모르는가?”
탄잔이 말했다.
“나는 몇 시간 전에 그 처녀를 내려놓았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녀를 업고 있는가?”
출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에크하르트 톨레 저/류시화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