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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an 05. 2023

적당히 초연하게 살기

예전의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어떤 이와 잦은 마찰을 일으킨 적이 있다. 마찰이라기보다 매사 불평불만을 말하는 그녀와 대화를 한 후엔 못내 마음이 불편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초반에는 잘 지내보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도 했었다. 그녀가 보완 대책을 빙자하여 일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할 때면 그 말에 기꺼이 동조하며 그녀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었다.


그러면 그녀는 신이 나서 본인은 소신이라고 착각하는 부정적인 말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런 날엔 일명 기센(?) 그녀와의 관계가 조금은 매끄러워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효과는 늘 일시적이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효과의 지속시간도 점점 짧아졌다. 나는 조금씩 지쳐갔다.


싫은 사람과는 같은 공간에 있는 공기를 마시는 것조차 불편하기 마련이다. 매일 마주쳐야 하는 그녀를 최대한 미워하지 않고 관계를 개선해볼 요량으로 가능한 한 그녀의 좋은 점을 더 많이 보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주변에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만 있는 것보다 듣기에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사람 역시 이상과 현실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애써 자신을 세뇌했다.


어차피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으며 내가 이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한 그녀와 떨어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게 여러모로 마음이 편했다. 그런 와중에도 저 사람은 대체 왜 저렇게 살까, 어떻게 저렇게 자기만 옳고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다 틀리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저렇게 살면 더 불행하다는 걸 모르는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며 남몰래 그녀를 필요악의 존재로 여겼었다.


오늘 아침 오프라 윈프리의 책 'What I know for sure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을 읽는데 마음을 사로잡는 한 구절을 발견했다.


'Often when we make negative statements about others behind their backs, it's because we want to feel powerful-and that's usually because in some way we feel powerless, unworthy, not courageous enough to be forthright.'

'종종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 대해 그들 뒤에서 부정적인 말을 할 때, 그것은 우리가 강력함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고-보통 우리가 어떤 면에서 무력하고, 가치가 없으며, 솔직해질 만큼 용기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어떤 구절에 대해 더 공감할 수 있는 이유는 글 속에서 우리 역시 일정 부분 마주하고 감당하고 있는 현실과 그 과정에서 느끼는 행복이나 아픔 또는 슬픔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나는 곧바로 한동안 잊고 지냈던 예전의 그녀와의 몇 가지 경험을 떠올렸다.


예전 직장을 그만두며 투덜이 그녀와는 다시 볼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이후 직장을 두 차례 더 옮기며 깨달았다. 자신의 환경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상황을 비관적으로 전망하는 사람, 타인의 가십거리를 끊임없이 찾아내고 그들의 험담을 즐기는 사람, 그리고 아무리 노력해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 또는 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마음에는 자기 말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순간적인 우월감을 느끼고 자신이 힘을 가졌다고 착각하고 싶은 유치한 욕구가 숨어있다. 그건 동시에 다른 의미의 열등감일 수도 있다. 그런 사람과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최소한의 말을 섞는 게 최선책이다.


간혹 귀에 거슬리는 말을 들었을 때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섣불리 사이다를 발사하면 그 순간에는 할 말을 다 했다고 속 시원할 수는 있겠으나, 이후부터 몰려오는 어색한 분위기에 매일 숨이 턱턱 막힐 수도 있다. 순식간에 나는 가해자가 되고 상대는 피해자 코스프레를 뒤집어쓴다. 그 상태가 벌어지면 바둑이나 장기를 둘 때 내 입장을 한 번만 봐달라고 하며 한 수 물러 달라고 요청하는 것처럼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지금 당장 그런 사람과 물리적인 거리를 두기 어렵다면 마음의 거리라도 설정하자. 단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굳이 그 사람을 미워할 필요도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시작하면 마음만 더 힘들 뿐이다. 내가 상대에게서 들었던 부정적이 말이 상처가 되어 계속 되뇌어진다면 그 말을 잊으려고 애쓰기보다 생각의 환기를 위해 차라리 아예 관계가 없는 긍정적인 생각을 하자.


마음속으로 나를 괴롭히는 존재의 크기 자체를 최대한으로 대수롭지 않게 줄여보자.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생각하거나, 마음의 병이 있는 환자라고 치부하거나, 내 인생에 잠시 온 손님으로 여기는 것은 내가 종종 쓰는 방법이다. 그래도 괴롭다면 좋아하는 일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상처받은 감정을 흐리게 만들자.  


타인의 사사로운 말에 일희일비하기에는 내 인생이 너무 아깝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들도 우주같이 넓은 관점으로 보면 한낱 티끌에 불과하다. 적당히 초연하게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가 인생에서 가질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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