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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희정 Jan 01. 2023

진정으로 살아있는 삶

2022년 12월 31일 아침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4시 30분에 눈을 떠 책을 펼쳤다. 장장 1년여간의 새벽 기상(물론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난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5시나 6시에 일어난 날도 있었다)을 해온 지가 어느새 1년이 넘었다.


날짜라는 건 인간이 편의에 의해 규정 숫자일 뿐이라고 단언하면서도 오늘이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생각을 하면 공연히 머릿속에서 수많은 장면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의 올해를 간단하게 정의해보면 진정으로 '살아있는 날'을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살아있다는 건 단순히 생명이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의지에 따라 많은 것들을 시도했고, 이어갔으며, 해냈다.


얼마 전 내게 진짜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만든 계기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그동안 용케 피했다고 생각했던 이제는 국민 독감(?)이 되어버린 코로나에 걸린 것이다.


그날은 목요일이었다. 새벽에 여느 때처럼 잠자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와 딸의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당연히 자고 있다고 생각한 딸의 속삭이듯 한 목소리가 방문 너머로 들려왔다.


“엄.. 마.. 엄.. 마.." 엄마라는 존재는 닫힌 문 너머 누워있는 자식의 신음까지 들을 수 있는 초능력 귀를 장착하고 있다. 나는 읽던 책을 그대로 내려놓고 딸에게 갔다. "엄마... 나 열나는 것 같아.”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거실 선반에 넣어둔 체온계부터 찾았다. 체온계로 열을 재보니 38.5도였다.


나는 깜짝 놀라서 다시 선반 문을 열고 해열제를 찾아 아이에게 먹였다. 아이는 열 외에는 다른 증상이 없어 보였다. 혹시 몰라 자가키트 검사를 해보았으나 결과는 음성이었다. 그냥 감기인가 보다 생각다. 7시쯤 학교 담임선생님에게 감기가 있어 병원에 들렀다가 가겠다고 문자를 보 엄마에게 아이를 부탁한 후 출근했다.


직장에 도착하니 엄마로부터 보건소에 갔다가 허탕 치고(요즘 보건소에는 자가키트 검사 결과가 양성이 나와야 PCR 검사를 해준다고 한다) 병원에 들러 감기약을 지어 아이를 학교에 보냈다는 문자가 와있었다.


문자를 보고 안심하고 바로 일에 열중하고 있는데 몇 시간 뒤 학교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아이가 다시 열이 오르니 데리고 가는데 좋겠다는 문자를 받았다. 업무가 바빠서 반차를 쓰고 갈 수가 없었다. 곧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했다.


엄마는 학교로 가서 아이를 데리고 다시 같은 병원으로 가서 이번에는 신속항원검사를 받았고 결과는 짐작대로 양성이었다. 아이가 확진받았다는 말을 들은 순간 나는 모든 걸 내려놓았다. 설사 내가 걸려도 어쩔 수 없지. 아이를 혼자 둘 순 없다. 그렇게 그날 밤 둘 다 마스크를 쓴 채 꼭 붙어서 잤다.


그리고 이틀 뒤 토요일 오후가 되자 나 역시 몸이 으슬으슬 추워지는 증상이 시작되었다. 꼬박 이틀 동안 38도에서 39도 사이를 왔다 갔다가 하며 열이 오르락내리락했다, 열이 내린 이후 지독한 몸살과 무기력증이 찾아왔다. 정말 손가락 하나 꼼짝하기 싫었다. 아니 꼼짝할 수 없었다.


코로나로 판명된 이후 나흘 내내 누워서 지냈다. (그동안 나와 줄곧 같이 방에서 격리되었던 딸은 딱 처음 이틀 동안 열나더니 이후 빠른 속도로 증상이 나아졌다. 그러고 보면 우리 다음 세대는 모두 슈퍼면역자가 될 것 같다)


평소 머릿속에서 들리던 수많은 생각들 대화를 멈추었다. 무력감은 모든 것에 대한 열정도, 의지도, 그리고 내가 그렇게 자신하던 끈기까지 전부 앗아가 버렸다. 몇 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했던 아침 10분 운동도 그만두었.


사소한 습관이었지만 일단 한 번 멈추게 되자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그동안 해오던 모든  일상에 대한 의욕이 무너져 내렸다. 치 내 몸의 모든 기관과 장기가 급속도로 퇴화해서 나라는 존재가 그대로 바닥에 껌딱지처럼 붙어버릴 것만 같았다.


렇게 닷샛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에 눈을 뜨니 몸을 짓누르던 천근의 무게가 약간은 덜어진 것 같았다. 기운을 조금 차리자 나는 제일 먼저 샤워를 했다. 얼굴은 여전히 푸석거렸지만, 기름기로 엉겨 붙은 머리와 꼬질꼬질해진 몸 씻고 나자 생기가 살짝 들어왔다.


배가 고다. 더 이상 입맛이 없어도 병을 기기 위해 꾸역꾸역 음식을 입으로 밀어 넣 것이 아닌 허기 인해 밥을 맛있게 먹었다. 정신을 차리자 지난 나흘 내내 누워서 허비했던 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하루빨리 몸을 회복해서 다시 평범했던 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


살아있어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진정으로 살아있는 게 아니다. 진 살아있는 삶이란 가만히 머물러 만 쉬는 게 아니라 팔딱팔딱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강산애의 노래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그저 흘러가는 방향에 이끌려 따라가는 삶이 아닌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의지를 가지고, 내 삶의 목적을 찾 치열하게 고민하고, 열정으로 내 삶에 광택을 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건강을 되찾아서 마나 다행인가. 다시 일어나서 두 손과 두 발을 쓰며 생각하고, 일하고, 운동하고, 가족을 돌보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대화하는 모든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일은 내가 가진 진실된 행운이다. 


그러나 강 역시 영원할 수 없다. 기회가 있을 때 그냥 몸만 사는 것이 아닌 정으로 살아있는 삶을 살자. 새해를 앞두고 오늘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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