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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Aug 05. 2019

육아 9개월 차, 비로소 깨달은 것들

힘들다는 나의 투정 뒤에 가려졌던 남편과 아들


 아들이 태어난 지 어느덧 9개월 하고도 7일이 지났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행복한 일들도 많았는데 행복한 기억보단 힘들고 답답했던 마음이 먼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아이를 데리고 외출이라도 하면 사람들은 나에게 주로 다음과 같이 묻곤 했다.


 애 키우기 힘들지요?


 나는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늘 괜찮다고 대답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난 괜찮은 상태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나 스스로도 나의 상태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




 아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긴다는 사실을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임신이 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막연히 그저 아이를 사랑으로 정성껏 잘 돌보면 것이라고 쉽게 여겼다. 그런데 아이로 인해 환경이 달라지고 환경이 달라지니 나의 생활 패턴 역시 달라져야 했다. 이는 내가 가장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부분이었다.

 나의 생활 패턴 이외에도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남편과 나의 관계였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남편과 나는 남녀 사이가 아닌 의무감만 남은 가족이 됐다. 서로를 위해 애쓰는 시간은 점차 줄어들었고 모든 것은 아이 중심으로 돌아갔다. 나는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이 외의 것들은 신경 쓸 수 없었다. 자연히 남편과의 대화는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감정적인 충돌은 잦아졌다.

 충돌의 가장 큰 표면적인 원인은 육아 방식의 차이였다. 내 방식대로 육아를 하고자 하는 욕심이 부부 사이에 화를 불러일으켰다. 남편이 나의 스타일과 다른 방법으로 아이를 돌보면 나는 여지없이 지적하곤 했다. 이에 남편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렇게도 할 수 있는 걸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냐며 반박했다. 승자 없는 다툼은 되풀이되었다.

 남들은 잘만 하는 것 같은 육아가 나는 왜 이리 힘겹게 느껴지는지 그때까지만 해도  수 없었다. 남들은 순하다고 칭찬하는 아들 하나 돌보는 건데 대체 어디가 어떻게 힘든 건 나 자신에게 물어봐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고작 당시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건 답답한 느낌을 지우기 위해 틈만 나면 아들과 또는 나 혼자 밖에 나가는 것뿐이었다.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틈만 나면 바깥으로 나돌았다.


 예전에는 남편이 오는 시간에 맞춰 무조건 집에 있었는데 아들이 태어난 후로는 180도 달라졌다. 오히려 남편이 퇴근하는 시간만 기다렸다가 남편이 오면 바로 내 볼일을 보러 나갔다. 운동도 하고 배우는 것도 이것저것 늘렸다. 이러한 행동들이 지금의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이라 믿었다. 밖으로 나가면 답답함이 잠시나마 해소가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밖으로 아무리 돌아도 집으로 돌아오면 내 마음은 그대로였다. 밖에서 해소를 하고 와도 집에 돌아오면 말짱 도루묵이었다. 행복하지 않았다. '간혹 이때 즈음에도 산후 우울증이 온다고는 하는데 우울증 비슷한 건가?'라고 생각했지만 병으로 치부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느낌을 극복할 수 있을까 나날이 고심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외출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이 지저분한 것을 보고 갑자기 언짢은 감정올라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결국 편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남편은 계속 기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이만 방에 들어가서 자겠다고 했다. 미안했던 나는 옆에서 기분을 풀어주려 남편 옆에서 조잘거렸다. 그 노력이 가상했는지 남편이 야식을 먹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별 진전 없이 야식만 먹고 풀린 듯 풀리지 않은 듯 어정쩡한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어제 일 때문이었을까. 다음 날 아침, 항상 나보다 일찍 기상해서 아이를 돌봐주던 남편이 보이지 않고 아이가 깨서 울고 있었다. 아이의 울음소리에 잠에서 깬 나는 짜증 섞인 말투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직 7시도 안 됐는데 벌써 출근한 거야?

 남편은 거실에 있었는지  내 말을 듣고는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아들을 데려가며 한숨을 쉬었다. 남편의 그 한숨을 듣는 순간, 그동안 서로 간에 풀리지 않았던 모든 답답함들이 한순간에 밀려왔고 같이 있으면 서로 기분만 상할 것 같아 밖으로 달려 나갔다.

 나오긴 나왔는데 그다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간은 그렇게 흐르고 남편이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다. 전화가 오기 시작했지만 나는 받지 않았다. 그러나 아들을 두고 출근한다는 메시지가 오면 바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문자는 없었다.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다. 그 뒤로 엄마한테 전화며 문자가 계속 오기 시작했다. 남편이 엄마께 연락을 한 모양이었다. 결국 나는 집에 들어갔다. 그런데 남편이 출근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날 보자마자 어디 갔었냐며 먼저 물었다. 바로 근처에 있었다고 이야기하니 내가 뭘 그리 잘못했냐며, 내가 얼마나 잘못했길래 밖으로 나가냐며 참고 있던 눈물을 흘렸다. 그의 모든 감정 섞인 이야기를 는 잠자코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의 행동이 분명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기에 나는 어떠한 대답도,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이를 계기로 남편은 그동안 못다 한 속 얘기를 모두 쏟아부었다. 그렇게 우리는 평상시로 돌아갔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천천히 나 자신과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달을 낸 지 이틀이 지난 아침, 자신의 키보다 짧고 좁은 아들의 범퍼 침대에서 불편한 자세로 고꾸라져 자고 있는 남편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미안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동시에 내가 잊고 있었던 날 위한 남편의 배려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갔던 남편의 세심한 배려들을 하나, 둘 곱씹어보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기 전, 먼저 일어나 시부모님께 아침 인사 차 찍어 보낸 사진의 일부. 철없는 며느리가 보낸 이 사진을 보시고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를 생각하면 지금도 죄송하다.


 남편도 침대에서 편히 자고 싶었을 텐데 거의 대부분 아들과 함께 잤다. 남편이 얕은 잠을 잔다는 이유로 아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면 바로 일어나 아들 곁에서 잠을 청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킹 사이즈 침대는 나의 전용 침대가 되었다. 남편은 곤히 자는 나를 깨우지 않게 하려 얼른 아들 옆에 가서 아들을 달래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리고 아침잠 많은 날 위해 항상 같은 시간에 기상하는 아들을 먼저 보살폈다. 내가 깰까 봐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 울기라도 하면 바로 거실로 데리고 나갔다. 아이를 보살피는 것으로도 모자라 그 사이에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 개기도 했다. 그러다 출근할 시간이 다가오면 다 못 개서 미안하단 이야기와 함께 출근을 했다.


원래 이상형이 요리 잘하는 여자였다던 남편은 밥을 차려줄 때마다 살을 빼야 한다며 밥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다. 아이를 보며 음식 준비까지는 무리라는 생각과 함께 잘됐다 싶은 마음에 점점 음식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침밥은 항상 먹지 않고 출근했다.


 야간 근무로 인해 오래 집을 비우게 되는 날이면 친정에 가 있으라고 먼저 말해주었다. 반대로 자신이 집에 있는 날이면 나가서 놀거나 볼일을 보라며 아들을 대신 돌봐주었다. 자신은 집에서 아들과 있는 게 좋다고 했다. 외출을 하지 않는 주말이면 아침잠 많은 날 위해 아들을 대신 돌봐주며 늦잠을 자도록 배려해주었다.




 이렇게 남편은 육아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 공동의 일로 여기며 날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주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나 힘든 것만 알았지 가정을 위해 뒤에서 희생하고 있 남편은 돌아보지 못했다. 남편이 날 위해 충분히 배려해주었음에도 배려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또한 남들에겐 고맙다는 말을 밥 먹듯이 하면서 바로 내 곁에 있는 남편에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조차 가지지 못했다.


육아를 일로 치부하고, 아이에 대한 감사함을 잊고 있었다.


 나는 날 위한 남편의 배려심 가득한 행동들과 아이의 탄생에 대한 감사함이라는 제일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이렇게 나의 힘듦을 이해하고 날 위해 애써왔던 남편에 대한 감사함, 우리 부부에게 찾아온 건강하고 귀여운 아이에 대한 감사함을 갖지 못했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아이가 9개월에 접어들고 나서 비로소  되었다. 이전의 나는 남편의 배려를 권리처럼 누리고 당연시 여겼다. 감사함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제대로 배려하지 못한다고 화를 .


 그동안 남편의 배려를 권리처럼 누렸음에도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이는 당연했다. 남편과 아들의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니 육아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육아를 잘 도맡아주는 남편과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 주는 아들에 대한 감사를 진심으로 느끼지 못한 생활에서 행복을 찾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어려운 것이었다.


 아들이 태어나면서 갑작스레 바뀌게 된 나의 상황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방법은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난 감사를 느끼는 것임을 통감했. 비록 큰 일을 겪었지만, 이를 계기로 전에 놓치고 있던 감사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사를 깊이 느끼니 그 가 고마워 저절로 상대를 위하는 행동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사랑스러운 아들과 배려심 많은 남편의 존재 자체가 매우 감사한 일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요즘, 나의 투정 뒤에 가려져 많이 힘들었을 남편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요즘, 나의 투정 뒤에 가려져 많이 힘들었을 남편과 아들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원래는 아들과 대충 시간을 때웠다면 이제는 그 모든 순간순간에서 감사함을 느끼고 아들도 그 감사와 행복을 느끼고 있다.(분명 이전과 다름을 느낄 것이다.) 또한 예전이면 당연하게 받아들였을 남편의 작은 배려에도 정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내가 먼저 배려하려 한다. 남편이 그동안 했던 배려와는 비할 바가 못됨에도 남편이 좋아하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그동안 당신도 많이 힘들었을 텐데 나만 힘들다고 투정 부려서 정말 미안해. 이제는 우리 세 식구, 행복한 일만 가득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여보, 사랑해.
 아들아. 부족한 엄마 밑에서 9개월 동안 착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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