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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Aug 09. 2019

제4장. 올바른 관계를 위한 첫 번째 법칙

서로 다름을 인정하라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라는 옛 말이 있다. 물건은 고쳐 쓰고 다시 쓸 순 있어도 사람은 내가 원하는 대로 고쳐 쓸 수 없다는 뜻이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혹 우리는 사람을 고쳐 쓰려는 실수를 저지르곤 한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 주말에 나는 가끔 나가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가고 싶었지만 남편은 늘 집에만 있고 싶어 했고 쉬고 싶어 했다. 바깥 활동을 좋아하는 나에 반해 남편은 집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연애 시절의 남편은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데이트도 자주 가고 여행도 자주 갔었다. 그런데 마음이 식은 건지, 결혼했다고 달라진 건지 이제는 주말이 되어도 외출할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점점 나는 집에만 있고 싶어 하는 남편에게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남편과 함께 데이트도 하고 여행도 하고 싶었다. 남편의 예전 모습이 그리워졌다.


 이러한 일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아마 연인들이라면 모두 한 번쯤 겪어 보았을 것이다. 아내는 주말이니 바람 좀 쐬자며 외출을 하자고 한다. 남편은 피곤하다며 집에서 휴일을 보내자고 한다. 아내는 오랜만에 생긴 황금 같은 주말을 집에서만 보내기 아깝다. 반면 남편은 평일에 쌓여있던 피로를 주말 동안 집에서 풀고 싶다.(반대의 경우도 있다.) 연애 때는 그러지 않더니 갑자기 변해버린 남편이 아내는 야속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사람이 어쩜 저렇게 변할 수 있지?


 안타깝게도 이는 우리의 착각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사람이 변해버린 것이라 믿고 싶다.  하지만 그 사람은 변한 것이 아니다. 단지 나를 만나기 전의 원래 모습을 찾아 돌아온 것뿐이다. 관계가 어느 정도 안정에 접어들면서 그는 본래의 모습을 찾아간 것이다. 이때 아내는 남편이 변했다고 생각하여 서운한 마음을 느낄 필요가 전혀 없다. 이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서운한 마음이 아니라, 서로 좋아하는 것이 다르듯 하고 싶은 것도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는 마음이다.


 결혼 전에는 남편이 주말을 나와 함께 보내며 내가 원하는 것들을 해줬다. 연애 때의 남편은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원하지는 않더라도 시간을 내어 함께 주말 데이트를 즐기고 힘든 여행도 갔다. 이는 비록 남편 혼자 주말을 편히 쉴 수도 있었지만, 나를 위해 시간을 내준 셈이었다. 오히려 나는 변해버린 남편을 원망하는 대신 그동안 날 위해 함께 해준 남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은 각자의 성향을 존중·배려하여 타협점을 찾아 안정적인 결혼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지금의 남편을 변화시키려는 노력 대신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마음으로 나 자신을 가득 채운 후 일어난 변화이다.




 다음은 온라인에서 알고 지내던 이웃이 나에게 보낸 고민 글이다.

     

 지인 K 씨는 연락에 성의가 없는 남자 친구가 늘 불만이다. 항상 단답형 말투에 가끔은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기도 한다. 어떤 날엔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이럴 때마다 K 씨는 늘 남자 친구에게 연락 좀 자주 하고 연락이 안 될 때는 미리 얘기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나 사과도 그때뿐 남자 친구는 바빠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놓는다.

     

 지인 K 씨는 연락이 잘 되지 않는 남자 친구 문제로 고민이 많다. 연락 문제, 과연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연락을 잘하지 않는 남자 친구의 문제일까, 아니면 연락에 집착하는 여자 친구의 문제일까. 이는 누가 더 잘못했다고 얘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은 서로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여자는 연락의 중요도를 9라고 생각한다면 남자는 3 정도로 생각하는 것이다. 단지 그 둘 사이에 차이가 존재할 뿐이다.

 

 사람마다 생각의 차이는 당연하다. 세상 사람들의 외모가 다르듯, 사람들의 사고 및 처리방식 또한 다르다.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개개인의 존재마다 고유의 속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나의 생각을 전달할 수는 있지만 강요할 수는 없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내 것만을 옳다고 주장하면 관계에 갈등이 생긴다. 갈등은 또 다른 갈등을 낳고, 그 갈등은 다른 곳에서 다시 갈등을 낳는다. 관계는 자연히 틀어진다. 회복 불가능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편하므로 굳이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은 상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와 비슷한 사람만 만나며 교류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잠시 잠깐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에게도 나와 다른 점이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다른 점을 발견한 이 사람과의 관계를 다시 정리하고 더 비슷한 사람을 찾아 나설 것인가?




 어떤 사람과 내가 다르다고 해서 매번 관계를 정리하고 벽을 쌓으며 인생을 살아갈 순 없다. 만약 지인 K 씨가 연락이 잘 안 되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고 다른 남자 친구를 만난다고 가정해보자. 과연 다른 남자 친구와는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마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다. 전 남자 친구와 자신 사이의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해당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이 달라졌다고 해서 잘 지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은 내가 샤프를 바꿨으니 시험을 잘 볼 수 있다고 확신하는 것과 같다.

     

 사회는 무수히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세상에 나의 마음과 100% 일치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없다. 심지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솔메이트 조차도 말이다. 내가 귤을 좋아한다고 해서 귤을 좋아하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다. 사과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 사람은 사과를 좋아할 수도 있구나.’라고 생각해야지 ‘내가 귤을 좋아하니 너는 귤만 좋아해야 해.’라고 강요할 수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기에 우리는 타인의 다름을 받아들여야 한다.

 

 진정으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같은 것만을 쫓는 사람은 관계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으며 결국은 그 좁은 관계마저 상실하고 혼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우리는 언제까지 어린아이처럼 다르다는 것을 틀렸다고 착각하며 살아갈 것인가. 다름은 틀림이 아니다. 단지 ‘다름’ 일뿐이다.


 모든 사람이 나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모든 사람은 겉모습이 다르듯이 마음속 생각과 사고하는 것이 다르다.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다른 경험을 하며 삶을 살아왔다. 경험 속에서 깨달음과 지혜가 다르기 때문에 행동하는 방식도 다르다. 오히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와 똑같이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더 큰 문제들이 발생할 것이다. 타인과 나의 다름을 감사하게 여기며,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나의 방식을 강요할 순 없다. 지금 당장 실천해보자. 원래 같으면 눈살을 찌푸렸을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해보자. ‘그래 그럴 수 있지. 나와 다르니까.’라고.

(틀린 것은 없고 정답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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