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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윤 Aug 09. 2019

제3장. 관계를 방해하는 감정_집착

집착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나는 잠에서 깼다. 이번에도 악몽이었다. 남자 친구에 대한 악몽이었다. 당시 나는 남자 친구를 정말 좋아했다. 그런데 만난 지 2개월이 지날 무렵, 우연히 남자 친구의 휴대폰을 구경하게 되었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 나는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들과 연락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만 마냥 사랑해주고, 나만을 생각하고 바라볼 줄 알았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들과 연락하며 지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믿음은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남자 친구는 그 여자들과 연락은 했지만 직접 만나지는 않았다며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순진했던 건지 나만 바라본다고 생각했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개인적인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헤어짐을 생각할 만도 했지만, 남자 친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헤어질 순 없었다. 그래서 결국 다른 여자들과 불필요한 연락을 하지 않기로 약속을 하고 이번은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깨어진 믿음을 다시 회복하며 관계를 회복해 나갔다.


 그런데 만난 지 1년이 조금 지난 어느 날, 나는 남자 친구 휴대폰을 확인하던 중, 우연인지 필연인지 또다시 다른 여자와 연락을 주고받은 내용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순간 다시 앞이 하얘졌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을 했는데 다시 연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깨져 버렸던 믿음을 어렵게 남자 친구와 다시 사랑을 키웠으며, 곧 결혼을 약속한 상태였다. 나는 남자 친구와 이 일로 크게 다툰 후,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관계를 정리해보려 했다. 그런데 내 마음은 나를 따라주지 않았다. 결국 끝까지 용서를 비는 남자 친구에 못 이겨 다시 관계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뒤로 가끔 이상한 악몽에 시달렸다.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만나는 꿈을 계속 꾸게 되는 것이었다. 꿈을 꿀 때마다 악몽이 현실처럼 너무 생생했기 때문에 남자 친구에게 꿈 얘기를 하며 다른 여자랑 연락하고 지내는 거 아니냐며 의심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남자 친구를 관리하며 의심하기 시작했다. 남자 친구는 처음엔 자신이 잘못한 행동들이 있으므로, 내가 지적을 하고 의심할 때마다 미안하다며 용서를 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태도는 달라졌다. 이미 사과를 했는데 왜 내가 다시 미안함을 느껴야 하는지 모르겠다면서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그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난 것도 아니고 연락만 조금 했을 뿐인데 그게 뭐 그리 큰 잘못이냐며 반문하기에 이르렀다. 우리에게 이러한 패턴의 다툼은 잊을 만하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되었다. 

   



 위 사례는 나뿐만 아니라 보통의 연인 관계나 부부 관계에서도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터넷에서 남자 친구나 남편이 바람이 난 사실을 알고도 만남을 지속했지만,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어 괴롭다는 사람들의 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실 연인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순 없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적 자기 결정권’이 있기 때문이다.


 결혼이라는 제도는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왔지만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른 형태를 보여 왔다. 조선시대는 일부일처제였지만 처첩제를 허용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일부일처제를 법적으로 따르고 있으나, 2015년 우리나라에서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가정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명목 아래 62년 동안 존재했던 간통죄가 결국 폐지된 것이다. 간통죄가 폐지되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남녀 간의 관계를 유지하는 강제적 장치가 사라지게 되었다. 이렇게 법적으로도 관계를 보호할 장치가 사라진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남녀 관계를 건설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본처나 남편이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눈이 돌아가는 사람은 많다. 인간은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더 나은 사람에게 마음이 끌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통을 정의할 법적 장치가 사라진 이 시점에서 우리는 다른 이와 눈이 맞은 사람들을 달리 비판할 이유가 없어졌다. 나는 비록 결혼을 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믿었던 남자 친구가 다른 여자와 연락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비록 그 사람이 나 몰래 다른 이성과의 만남을 가졌던 건 아니지만, 그의 사소한 잘못은 나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그의 행동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아무리 나도 모르는 사이 마음이 가고 눈이 간다 하더라도 내 곁에 있는 사람을 위해 멈추고 절제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서로 간의 기본적인 예의이자 신의이다. 그러나 이미 지난 일을 되돌릴 수 없는 법. 심지어 성적 자기 결정권 및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간통죄가 폐지된 현실 속에서 남자 친구의 잘못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집착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에게 좋지 못했다. 


 나는 무의식 중에 남자 친구의 잘못된 행동을 지속적으로 생각함으로써 스스로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생각에 대한 집착을 멈추지 못해서 악몽으로 나타난 것이다. 내가 연인과의 관계를 지속하기로 결정했다면 그의 잘못을 용서를 하고 과거의 기억은 과거의 기억으로 놓아줘야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벌어진 사건에 대해 집착하면서 상대를 억압하고 구속했다. 이에 지친 남자 친구는 나와 반복적으로 다투었고, 관계는 점점 틀어졌다.


 상대방의 잘못을 잊지 못하고 그 기억에 집착하며 지내는 것은 스스로 불구덩이를 끌어 앉고 있는 것과 같다. 결국 나도 남자 친구의 잘못을 이해하는 것이 헤어지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남자 친구와의 만남을 지속한 것이다. 그렇다면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이후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이를 ‘진심으로’ 이해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차피 헤어지지 않을 거라면 그것을 다시금 반복하여 생각하는 것은 도리어 나에게 해로웠다. 그와 동시에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이성상을 지우고 ‘인간적인 이성상’을 그렸다. 100% 나만 바라봐 줄 사람이 아닌 가끔은 남 구경도 하는 사람으로 기준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상대를 이해하고 마음을 비웠다. 그 이후로 다툼은 점점 줄어들었고, 관계가 회복되었다. 지금은 결혼에 골인하여, 누구보다도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며 지내고 있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르다고 할 순 없다. 관계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녀가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진정 다시 회복하길 원한다면 스스로 그 사건을 놓아주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관계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관계를 개선하고 좋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원인이 된 사건에 대한 집착은 꼭 버려야 하는 존재다. 사람에 대한 집착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사건이나 사람에 집착하는 것은 관계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가끔 주변을 둘러보면 연인과의 연락을 위해 한시라도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두지 못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과거의 나도 그랬다. 서로 좋아서 자연스레 설레고 떨리는 연애 초기에는 이 모든 상황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레 일상으로 돌아오는데 사람이 있는데 반해 그 습관이 지속되는 사람이 있다. 나도 예전에는 연락을 먼저 해놓은 상태면 상대방의 연락이 올 때까지 전전긍긍했다. 연락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연락이 오기 전까진 마음이 불안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들이 반복될수록 나 자신이 힘들어졌다. 마침내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마음을 비우기로 했다. 이미 던져진 건 던져진 일로, 내가 보내 버린 연락은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사정과 일정이 있기 때문에 연락이란 것은 시간이 걸릴 수도,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올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집착을 하면 그 시간은 점점 더 길게 느껴진다. 가끔은 내 손에서 떠난 것을 잡으려고 하지 말고 저 멀리 떠나보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내 손에 닿지 않는다면 놓아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나 자신이 관계에서 유연하게 대처하고 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상대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고 자기 자신을 살펴봐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관계가 삐걱대거나 틀어진다는 생각이 들 땐, 잠시 그 관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아보자.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자.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해보자.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그 관계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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