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여, 울지 마오. (견딤의 기록_1)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루가 시작되고, 별 볼 일 없는 일상을 견뎌내다, 수면제의 도움 없이는 깊게 잠들 수도 없는 밤이 찾아오면 다시 내일이 오고, 오늘이 반복되고 지겹고 지루해서 모든 게 이대로 끝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고 싶지 않은데 죽고 싶지도 않은 모호한 마음을 삼키고 저녁에 만날 사람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힘겹게 힘겹게 부지런을 떨어 자동차에 시동을 켰다.
눈부신 7월의 빛이 쏟아지듯 덮쳤다. 하늘은 티끌 없이 아름다웠고, 아름답다는 말조차 어색해서 눈물이 났다. 늘 보던 여름의 하늘이지만 오늘은 하늘의 빛깔도, 구름의 모양도, 태양의 색도 모든 게 낯설었다. 하늘의 모양이 이랬구나, 구름이 저렇게 흐르는구나, 빛이 정말 쨍하게 맑구나, 그런데 나는 왜 지금 이런 걸 생각할까, 요즘 하늘을 본 적이 있나, 이 시간에 밖에 나와서 주변을 둘러본 적이 있나, 두서없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죽박죽인데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목적도 이유도 모르는 눈물이 흐르는데도 운전은 멈추지 않았고, 어느새 목적지에 다다랐다.
전혀 그러고 싶지 않은 기분이었는데도 평상시처럼 쇼핑도 좀 하고, 저녁에 만날 지인에게 줄 선물도 샀다. 시간이 남아서 '량종'도 보았다. 영화는 내 마음만큼이나 지루하고 어두웠다. 단 한 장면도 기억에 남는 게 없고, 인상 깊지 않았으며 무섭지도 않았다. 귀신보다 무서운 건 무료하고 무기력한 이 우울 이리라.
약속 장소인 일산으로 향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밥 말리의 'No Woman, No Cry'의 Live 버전이 흘렀다.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중학교 2학년 때의 그 여름이 떠오른다.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밥 말리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친구가 빌려준 팝 모음집 max에서 유일하게 이 노래만이 좋았고, 내용이 궁금해서 영어사전을 뒤져가며 서툰 솜씨로 가사를 해석했다. 내용을 알고 나니 더욱 좋았고,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듣고 또 들었다. 어떤 노래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감정과 순간을 지닌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리운 마음으로 터질 것 같았던 열여섯의 그 여름이 떠오르고, 노을이 내려앉은 도로 위 차 안에서 그리운 사람이 이젠 너무 희미한데도 그리워서 눈물이 났다.
눈물이 났다가도 금세 웃을 수 있었고, 웃다 보니 다시 눈물이 났고, 지인을 만나 맛있는 밥을 먹고 차 한잔 마시는 시간 동안 울고 웃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우리는 사랑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공유했고, 부모가 방치했던 시간들에 대해서 분노했고,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이 애매모호한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녀의 지난 생일을 뒤늦게 축하하는 엽서에 두서없는 이 감정의 끝이 무엇이든 우선은 버텨보겠다고 적었다. 자신 없지만 이 기록은 그래서 견딤의 기록이다. 무엇을 견디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죽고 싶지는 않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