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기억 그리고 나쁜 기억
누군가를 미워하기 위해서 나쁜 기억만큼 좋은 것이 없다. 고통스러운 순간들, 기억하기 싫을 정도로 원망스러운 순간들을 다시 떠올리면 쉽게 미련을 버리지 않을까?
문제는 그런 기억이 없다. 아무리 기억하려 노력해봐도 도저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행복하고 즐거운 순간들만이 머릿속에 떠다닐 뿐이다.
나쁜 기억은 그저 우리의 마지막 순간뿐이다.
함께 많은 여행을 갔었고, 내 딸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 모든 순간이 행복했고, 그 행복이 지속되기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마음 한편으로는 집안의 반대를 결국 이기지 못하고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외면하고 싶었다. 함께 행복한 미래를 그렸고, 실행하기 위해 준비했다. 이미 많은 준비를 했고,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는 생각에 허무하기도 하고, 그녀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차라리 나에게 희망을 주지 말지..."
이혼 후 나는 나름 괜찮은 척 잘 살아가고 있었다. 방어적인 연애방식으로 연애도 했었다. 하지만 절대 나의 모든 것을 상대방에게 넘겨주지 않았다. 언제나 내가 상처 받지 않게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두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그곳으로 도망쳤다.
이번에는 내가 남겨졌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든 것은 그녀는 너무 많은 흔적을 남기고 떠났다. 이제 나와 내 딸이 살아가려면 그 흔적들을 내 손으로 하나하나 지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테니까.
나의 번호와 톡 아이디를 차단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는 그녀는 나를 차단을 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 차단을 부탁했다.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연락을 할 것 같아서 사전에 방지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녀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평생 가슴에 남아있을 것 같은 말들을 톡으로 보내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차단을 해서 읽을 수 없지만 나는 그 못다 한 말들을 보냄으로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덜어내기 위해서였다.
내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만약 다시 돌아온다 해도 이제는 받아주지 마. 너랑 너의 가족들이 받을 상처가 너무 크다."
"나도 알아.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다시 온다면 다시 받아줄 거 같아. 상처를 받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밀어내지 못할 거 같아."
정신 차리고 한다. 힘내 이겨낼 수 있어. 가 아니라 정신 차리라고 한다. 딸을 생각해서라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전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를 위해서 살아보라고 한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내 분에 넘치는 행복을 추구했고, 이상향을 꿈궈왔다. 그 덕분에 보기 좋게 탈이 난 듯하다. 희망이 크면 절망도 큰 법이다. 내 인생에서 이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낸 적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달콤한 꿈을 꾸었다. 달콤한 꿈을 꾼 후 현실로 돌아오면, 현실은 꿈을 꾸기 전과 다를 바 없지만 현실의 씁쓸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악마가 되어간다. 원망이 저주가 된다.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다. 나의 가족들에게 이렇게 큰 칼을 꽂아 넣고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갈지.... 나에게서 가장 소중한 걸 뺏어갔으니 당신도 가장 소중한 것을 잃게 될 거다.라는 원망과 저주가 마음속에 피어난다.
내 딸이 나에게 물어본다.
"엄마 카톡해도 답장 안 해?"
"글쎄 아마 안 할 거야."
"왜 안 해?"
"엄마도 마음이 아프니깐 못하는 거야."
"응 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