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일인가? 좋지 않은 일인가?
며칠 전 딸에게 몇 년 동안 미루었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인 아이에게 사과를 했다.
'아이가 조금 더 성장하면 말해줘야지' 라며 마음속에 품어 왔던 이야기를 꺼내었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모르게 그 말들이 튀어나왔다.
오늘 말해줘야지 라는 다짐으로 시작된 이야기가 아니라.
그저 나도 모르게 내 입 밖으로 삐져나왔다.
아마도 더 늦으면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내 마음 깊이 있었나 보다.
대략 3년 정도 나는 아이 옆에 있어주지 못했다. 그 기간 동안 한 달에 한두 번만 얼굴을 비출 뿐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우리 딸이 나를 볼 때마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6개월 정도는 아예 찾아가지도 못했다.
나는 이 기간이 마음속에 아픔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항상 아이에게 미안했고,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꼭 용서받고 싶었다.
사실 아이가 진심으로 나를 용서했는지 아님 그냥 고개를 끄덕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냥 못난 아빠를 용서한다는 표현의 끄덕임이 진심이라 믿고 싶을 뿐이다.
"아빠가 예전에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지 않았던 거 기억하지?"
"응"
"아직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네가 어른이 되면 그때 이해를 할 수 있겠지만... 아빠는 그때 네가 싫어서 혹은 미워서 떨어져 있었던 게 아니야. 아빠는 항상 이 세상에서 우리 딸이 제일 소중해. 그때도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빠가 정말 미안했어. 아빠 용서해줄 수 있겠어?"
대충 이런 대화를 했다. 아이는 갑자기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내 딸은 내가 자기를 싫어서 혹은 미워서 자기를 떠났다고 생각했나 보다.
나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쓰라렸다.
11살 아이에게 3년이라는 시간은 인생의 3분의 1이다. 그동안 아이가 받았을 상처와 엄마도 아빠도 옆에 있어주지 못한 공허함을 나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을 잘 이겨내고 누구보다 밝고 활동적인 아이로 자라준 것이 너무 고맙다. 그리고 그 고마움의 크기만큼 미안하다.
어쩌면 처음부터 나는 아빠의 자격이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나이가 어려서 혹은 철이 없어서 그렇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나의 인생을 살아보고 싶었다. 그저 내 욕심을 채우고자 내 딸에게서 아빠라는 자리를 비웠다.
엄마 없는 아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저 엄한 아빠로 지냈다. 단호하고 엄격하고 그러다 보니 딸은 세상에서 아빠를 제일 무서워하는 듯하다. 할머니도 삼촌도 무서워하지 않지만 아빠인 나는 무서워한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아이가 많이 성장을 했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제는 나도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보니 좀 다른 시각이 생겼다. 엄격해서 아빠를 무서워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말을 듣지 않거나 아빠를 화나게 하면 '또 아빠가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에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지나간 3년을 지우지 못한다. 어쩌면 평생을 가도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 사실 용서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라 생각된다. 이런 아빠를 원망하지 않고 좋아해 주는 딸.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자식 복은 있나 보다.
요즘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아이는 학교를 격주로 간다. 그래서 집 앞에 도착을 하면 오토바이에서 내리기도 전에 아이가 문을 열고 웃으며 나를 보고 있다. 아마도 오토바이 소리를 듣고 뛰쳐나오는 모양이다. 그때마다 반갑고 고맙다.
아빠의 무관심으로 인해 아이가 철이 빨리 들었다. 또래와 다르게 생각하고 말하는 걸 볼 때면 대견하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이 시리다.
아빠 딸로 태어나서 너무 고맙지만, 이쁜 아이가 하필 아빠 딸로 찾아와서 마음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미안하기도 하다. 앞으로는 좋은 추억들을 만들어 주도록 노력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