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아메리카노 주세요

-달콤이 보다 씁쓸이가 어느 날부터 마음에 든다.

by 글쓰는장의사

1년, 365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오로지 나의 선택은 아이스아메리카노.

오늘도 습관처럼 차가운 아침 공기를 지나는 출근길에, 속이 얼어붙을듯한 커피를 들고 간다. 차가 막히는 월요일 출근시간, 홀로 차에 앉아 얼음을 굴려가며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래 아메리카노를 마셨었나?"

아니다.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달콤한 캐러멜 커피를 마셨다. 언제부터인가 아메리카노만 찾는다. 그것도 오로지 아이스로만.


결혼은 마치 나에게 캐러멜 커피처럼 다가왔다. 이혼은 마치 아메리카노처럼 아무도 모르게 스며들었다.

정신 차려보니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듯이, 정신 차려보니 이혼을 하고 나는 혼자였다.

아메리카노가 비록 처음은 씁쓸하지만 적응이 되면 그 구수함을 알아 가듯이,

나에게 이혼 역시 그랬다. 씁쓸한 시간이 지나고, 언제부터인가 구수함과 함께 이 맛을 즐기듯, 이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다만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날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이혼한 날은 정확이 알 수 있다는 것뿐이다.


이혼은 내 인생의 독약이 아니다. 물론 나는 독약이라 생각을 했다. 부끄러움에 치를 떨었고, 신발 밑창까지 내려간 내 자존심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지금은 당당하다. 누군가 나에게 근황을 물어도 나는 자신 있게 말한다. 숨기지 않는다. 왜? 나는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점은 남겼고, 그 흔적 또한 남아있지만 결코 나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는 그저 남들에 비해서 스펙터클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마치 길을 가다 보면 오르막이 있으면 필히 내리막이 있듯이, 나에게 있어 결혼생활은 남들보다 좀 더 가파르고 힘든 오르막일 뿐이다. 그만큼 신나게 내려갈 수 있는 내리막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믿는다. 그리고 기대한다. 또한 그 신나는 길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한다.


아메리카노의 구수함이 좋다. 앞으로도 계속 이 구수함을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이혼, 돌싱이라는 딱지는 버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결혼생활을 시작해야 한다. 그 과정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장애물과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잘 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나의 가시밭길로 이끌고 동행해야 한다는 것도 잘 안다. 어쩌면 그 고통의 길을 또 걷고 싶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한때는 다시는 스스로 감옥으로 들어가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나는 의지박약이다. 어쨌든 나는 이 가시밭길을 누군가의 손을 잡고 걸어가기 위해 또다시 준비를 하고 있다. 아무래도 내가 멍청이 이거나, 내 손을 잡고 있는 이 사람이 멍청이 거나, 혹은 둘 다 멍청이 거나 이 셋 중 하나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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