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보운전 Apr 14. 2020

할아버지의 아내 사랑

-호랑이 할아버지는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다.

 작은 골목길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절이 있었다. 그 골목에서 친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사람은 우리 할아버지였다. 호통의 원조, 남들이 보면 아이들을 상당히 싫어하시는 분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사실이다. 할아버지는 항상 깔끔한 성격이셨고, 부지런하셨다. 그래서 지저분하게 노는 아이들을 좋아하지는 않으셨을 것이다. 그런 호랑이 같은 할아버지. 가끔 친구들에게 엄하게 하는 할아버지가 밉기도 했다. 그것으로 친구들이 놀리는 것도 싫었다. 그런 할아버지 옆에 할머니가 계셨다. 내 기억 속에 할머니의 모습은 항상 앉아계시는 모습이다. 걸어서 다니기가 힘드셔서 항상 손으로 바닥을 짚으시고는 몸을 끌고 다니셨다. 그런 할머니를 할아버지는 홀로 보살피셨다. 할아버지보다 더 큰 체구였던 할머니를 쓴소리 한번 없이 손과 발이 되어주셨다. 그때는 몰랐다.


2005년 2월로 기억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날은 부산에서 구경하기 힘든 눈이 엄청나게 쏟아졌다.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걸 보니 좋은 곳으로 가셨나 보다."

엄마가 말했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종 순간을 지켜보았다.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할아버지와 나의 부모님과 내가 있었다.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그날 밤 장례식장에 있던 나를 엄마가 조용히 불렀다.

"할아버지 모시고 집에 가서 자고 와. 대신에 할아버지 잘 지켜봐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할아버지를 잘 지켜보라는 거지? 몸이 불편하지도 않으시고 어쩌면 아빠보다도 더 건강한 분인데.'

 그 말은 집에 가서 알게 되었다.

"혼이 빠진 사람" 이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다. 아니 이 말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계시는 분이 그날 우리 할아버지였다. 

'아... 엄마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하지만 난 이제 고작 20살. 할아버지를 지켜보다가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새벽 4시쯤 할아버지가 나를 깨웠다. 다시 장례식장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셨다. 그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보는 장면이 많았다. 할아버지의 이렇게 약한 모습을 처음 봤다. 3일 동안 계속 우셨다. 


이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1년 후 할아버지께서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이제는 납골당에 안갈런다. 1년 동안 갔으면 할 만큼 한 거 아니겠나."

그렇다. 할아버지는 1년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같이 할머니를 보러 갔다 오셨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엄마가 시집오기 전부터 할아버지는 할머니 병간호를 하셨다고 했다. 못해도 최소 20년은 하신 거다. 한마디 불평도 불만도 없이 할머니를 보살펴주신 거다.




나에게 할아버지는 그저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참 대단한 분, 따뜻한 분으로 기억된다. 내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 시절 기억이 흐릿해져서 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저 할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보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다. 때로는 창피하기도 하다. 할아버지도 그리고 그 아들 우리 아빠도 자신의 아내는 최고라 생각하고 사셨던 분들 아래에 나 같은 놈이 나왔다. 가끔 나의 현실이 두 분께 참 죄스럽기도 하다. 할아버지도 아빠도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기 전에 바삐 가셨다. 어쩌면 이런 꼴 보지 않으려고 걸음을 재촉하셨나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문득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을 보다가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그분의 대단하고 아름다운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 고부갈등, 남자하기 나름이에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