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도 나에게 불행이 올 거라 예상하지 않는다.
그동안 적어온 결혼, 이혼, 사랑, 내 딸과의 에피소드와는 전혀 연관이 없는 글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오늘은 이 글을 쓰고 싶다. 원래 글재주가 없는 데다 정리도 전혀 안되어서 두서없다.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고 고침 없이 올려볼 생각이다. (어디서 나온 용기인지 모르겠다.)
나는 누군가의 죽음과 또 그 주변의 슬픔을 먹고 산다. 항상 죽음에 가까이 있다 보니 그 슬픔이 무뎌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때로는 공적인 업무에 사적인 감정이 이입되는 경우도 상당히 있다. 직업상 죽음을 가까이하고 많이 접하지만, 그래도 그 이전에 사람인지라 감정이 있다. 먼저 떠나는 분의 사연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남은 가족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 말, 행동을 보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는 감이 온다. 때로는 그 분위기에, 그 감정에, 그 말에 가슴이 울리기도 한다.
모두가 그러하듯 나 역시 퇴근 시간은 언제나 홀가분한 마음이다. 하지만 오늘은 썩 기분이 깔끔하지 않았다. 퇴근 직전, 좀 전에 막 세상을 떠난 누군가의 마지막을 위해 우리에게 오겠다는 연락이 왔다. 오지 말았어야 할, 아니 많이 더 늦게 찾아왔어야 했다. 가는데 순서 없다고 했던가. 가장 많이 하고 가장 많이 듣는 말이지만 오늘만큼은 참 듣기 거북했다.
"6살 이란다...."
너무 빨리 찾아온 6살짜리 아이. 나는 그 아이가 도착하기 전 퇴근을 했다. 얼굴도 보지 못한 그 어린 생명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았다. 가족이 누구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것도 모른다. 아무런 연관도 한번 본 적도 없는 아이이지만 가슴이 져려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떠나지 않았다. 내가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 때가 오늘 같은 날이다. 빨라도 너무 빨랐다.
내 딸 또래의 아이가 왔을 때, 먼저 떠난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우리 딸이 고맙다. 불의의 사고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볼 때는 오늘 하루도 아무 탈 없이 잘 보냈음에 감사한다.
스스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올 때면, 그래도 잘 버티고 있는 스스로에게 감사하다.
40대 혹은 50대에 떠나시는 분, 그 어린 자식들을 보면 그래도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는 옆을 지켜주었던 아빠가 고맙다.
누구나 삶이 소중하고 한 번뿐인 생명이라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일반인보다 더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항상 살아있음에 혹은 건강한 것에 감사하고, 오늘을 소중히 생각하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오늘처럼 어린아이 혹은 나보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매번 삶의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그저 평범함에 감사한다.
아마도 우리 일만큼 삶의 가치를 피부로 느끼는 직업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일을 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는 부분이다. 고단하고 힘들었던 한 인생을 마무리한다는 보람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 삶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 주는 것. 이것이 나의 일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오늘 같은 날은 그동안 허비한 내 삶이,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시간이, 그저 흘려보낸 내 일상이 부끄러워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