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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운전 May 01. 2020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 의사의 이 한마디에 모든 게 무너진다.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에서 들었던 대사이다. 듣는 환자보다. 남은 가족들이 더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모습들이 극상에서 펼쳐진다. 만약 그 환자가 이 드라마에서 처럼 태어난 지 며칠이 되지도 않은 아기라면? 그 부모님의 마음은 어떨까? 그 심정은 상상조차 불가능하며,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들어서 알고 있는 내 출생의 비밀이 떠올랐다.



나는 아주 건강하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이상할 정도로 회복력이 빠르다. 의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었다. 다쳐서 병원을 가면 의사 선생님들이 항상 하시는 말씀이 이거다. "신기할 정도로 회복력이 빠르네" 이런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기적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내가 100일 정도 되었을 때 모든 사람이 나를 포기했다. 이 세상애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의 생존을 믿은 사람은 없었다. 그 사람은 우리 엄마이다.


나는 동생과 5살 차이다. 그렇게 많은 나이 차이는 아니지만 적은 차이도 아니다. 이유는 우리 엄마는 둘째를 낳을 계획이 없었다. 순전히 나로 인해 생긴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혹시라도 또 아이가 아플까 봐. 그 고통의 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을 거다.


당시에 나는 간에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 그 조그만 아기가 주사를 맞고 또 맞고, 그러다 보니 발등에 주사를 맞는 순간 바늘이 튀어버렸다고 한다. 그 덕에 나는 아직까지 오른쪽 발목 부근에 주삿바늘 흉터가 있다. 내가 성장하면서 이 상처도 같이 성장했다. 아무튼 당시 나는 하루 종일 울기만 했고, 그 덕에 우리 엄마는 나를 24시간 엎고 있었다고 했다. 밥 먹을 시간 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니 아마 그럴 생각할 틈 조차 나는 주지 않았을 것 같다. 그 덕에 약 165cm 키의 우리 엄마 몸무게는 당시 40kg 정도였다고 한다. 오죽하면 할아버지가 나를 그냥 두고 집에 가자고 했을까. 그 마음이 이해가 된다.



어릴 때부터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잊어먹고살았다. 지금 당장은 건강하니 그 누구도 내가 아픈 아이였고, 의사도 친가도, 외가도 나를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우연한 기회로 내가 이야기를 해도 못 믿는 눈치이다. 그만큼 나는 아주 과하게 건강하다. 아무튼 이 잊고 살았던 나의 출생의 스토리가 소름 돋을 정도로 두렵게 떠오른 적이 있다. 바로 내 딸이 태어날 때, 그리고 며칠간 나는 두려웠다. 혹시라도 나처럼 아프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온몸에 전달되어 왔다.


내 딸이 태어나서 아무 탈 없이 건강하다는 사실을 인지 하게 되었을 때, 모든 긴장이 풀렸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감사인사를 했다. 

"휴~ 감사합니다."

누구에게 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이 세상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보다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오랜 기간은 아니었지만 당시 나는 내가 어릴 때 엄마가 되어보았다. 나라면 포기를 했을까? 아니면 엄마처럼 끝까지 잡고 늘어졌을까? 아이가 생기기 이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다.

'자신이 없어, 솔직히 그렇게 까지는 하기 힘들 것 같아.'

그런데 나에게 아이가 생기고 그 아이가 만약 아프다는 상상을 했을 때 나의 생각은 바뀌었다.

'내가 지치든 아이가 지치든 둘 중 하나가 지칠 때까지는 해봐야지.'


왜 생각이 바뀌었을까? 불현듯 궁금해졌다. 그저 내 아이라서? 모성애 혹은 부성애 인가? 근본적인 원인은 맞을 것이다. 그런데 뒷받침하는 근거가 조금 바뀌었다. 아이가 없을 때는 '그래도 부모니까 끝까지 지켜주려 할 것이다'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면, 부모가 된 이후에는 '포기하는 것이 끝까지 잡고 매달리는 것보다 어렵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 엄마는 내가 "그만 나를 좀 포기하라"고 말을 해도 포기하지 못할까? 이 질문에 답을 찾았다. 그냥 자식이기 때문이 아니라. 부모는 자식을 포기하는 것이 지키는 것보다 더 어렵다. 이래서 부모가 되면 내 부모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다고들 말하나 보다.


이런 부모님에게 효도하는 방법은 아마 아픈 손가락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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