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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May 28. 2016

오늘 하루도 찰칵, 추억을 찍는다

핀란드의 소풍은 호숫가로

딸들은 유럽에서 국제학교를 다니고 있어 친구들의 출신국 또한 유럽의 어느 나라인 경우가 많다. 부모님중 한 분이 핀란드인이고 다른 한 분은 독일, 영국, 러시아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친구들이다 보니 방학이 되면 가족을 만나기 위해 핀란드를 떠나는 경우가 많다. 혹은 여름휴가에 올인하는 이곳 사람들의 특징 상 여행을 떠나기도 해서 방학무렵부터는 친구들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한 주간의 겨울방학, 그리고 찾아온 두달 반의 여름방학이다. 겨울에는 시간을 주어도 할 것이 없는 기후탓인지 겨울방학은 매우 짧고 여름 방학이 길다. 어른들 역시 여름휴가만을 위해 겨울을 버티는 것 같다.


오래전, 프랑스는 여름휴가가 한달이라더라, 유럽의 어느나라는 바캉스를 이삼주씩 간다더라라는 소식을 전해들을때마다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실상을 알고 보니 유럽사람들은 다른 연휴가 없다. 여름휴가가 길 수 있는 이유다.


내가 다니던 직장은 설날,추석,여름휴가가 각각 일주일이어서 토요일과 일요일을 합치면 9일의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개인휴가를 조금 쓰면 열흘이상의 장거리여행도 충분한 시간, 마음이 내킬 때마다 여행을 다닐 수 있었던 축복과도 같은 조건이다.

비단 나처럼 운좋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추석과 설은 연휴가 가능한 명절이다. ( 연휴에도 쉬지 못하고 일하시는 분들께는 유감을 표합니다.)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연휴대신 여름휴가에 집중적으로 즐기는데 날씨가 허락하는 계절에 '놀 수 있을때 실컷 놀아라' 이런게 아닌가 싶다.

한 주만 지나면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벌써부터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가족의 방문으로 여행을 떠났거나 가족을 만나러 떠난 경우이다.

작은 딸의 친한 친구 Katie는 아일랜드로 떠날 예정이고 Aida는 영국에 있는 사촌들과 함께 그들의 summer house가 있는 그리스로 떠날 예정이다. 큰 딸의 친구 Gabriela는 미국으로 떠나고 Tilly는 프랑스에 있는 이모집에 간다. 우리도 방학동안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며, 돌아오자 마자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방학을 하면 매일 만나 즐겁게 보내던 친구들을 만나기 어렵다. 하여, 방학을 앞두고 엄마들은 분주하다. 나 역시 방학을 한 주 앞둔 시점에 작은 아이들의 sleepover를 준비했다. 다음 주는 큰 아이 차례...지난 주말에는  Katie의 엄마가 준비해 주었고 Aida의 엄마는 주중에 play date를 준비해 주었다.

방학이 얼마남지 않아 수영이나 필드트립 요리 등을 하며 단축수업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대낮부터 집에 와서 놀다가 밤까지 놀기엔 날씨가 너무 아름다워 수업을 마치자 마자 차에 태워 학교 근처 호숫가로 소풍을 떠난다.

수영복을 입고 호숫가에 뛰어들어 수영을 즐기는 용감한 소녀들도 있다. 이들은 큰 아이 또래의 소녀들로 보이는데 자전거를 타고 우르르 모여들더니만 옷을 벗어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든다. 아직은 물이 찬데... 동행한 보호자도 없이 자전거를 타고 소풍을 나선 아이들이 이제는 어색하지 않다.


핀란드의 아이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혼자서 판단하고 깨닫고 행동하도록 훈련되어져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예컨대, 부모가 출근하고 난 뒤, 혼자서 아침을 챙겨먹고 등교를 한다거나, 하교 후 자전거를 이용하거나 버스를 타고 발레수업장에 찾아간다거나 도서관에 가는 일 등은 일상이다. 눈이 오거나 비가 와도 예외는 없다. 영하 이십도가 넘는 한겨울에도 마찬가지이며 아침 아홉시가 넘어도 깜깜한 겨울날, 아침 일곱시에 숲을 가로질러 걸어서 혼자 등교를 하기도 한다. 이런 날씨에 소풍쯤이야...


이제 막 기는 아가를 데리고 소풍나온 엄마 둘이 블랭킷을 깔고 모여앉아 있다. 내가 깔고 누운 캠핑용 돗자리가 신기한가 보다. 아니면 내가 신기한가? 흙바닥을 기어다녀도 그냥 두고 보는 그녀들이 신기하다. 이곳의 부모들은 아가들이 어떤 행동을 해도

'No' 라고 하지 않고 기다린다.


우리 옆집 Mikka네 딸은 그런 까닭으로 우리집 데크에 있던 비눗방울을 다 마셨다. Mikka는 두돌쯤 된 그녀가 비눗방울을 부는 것이 아니라 들이마시는데도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녀 스스로 비눗방울 불기를 기다려 주는 것 같다.


저녁나절까지 호숫가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고 디저트를 먹는다. 무언가 근사한 디저트를 준비해 주기를 바랬던 작은 딸을 생각해서 우산장식과 빨대장식을 사두었다. 내가 만든 파르페를 마음에 들어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아이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 매트리스와 쇼파를 이용해 잠자리를 마련해 주고 이불을 덮고 누워 영화를 보다가 하나둘 잠이 들겠지....


살아가는 데 있어 추억이란 토양과도 같다. 토양을 토대로 싹이 나고 자라 큰 나무가 되고 과실을 맺는다. 추억이 풍부하고 기억할 것이 많으면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 나무와 같이 탐스러운 과실을 맺을 것이라 믿는다.


조금 귀찮지만, 가끔은 힘이 들어도

오늘도 내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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