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n스 Jun 28. 2016

남편의 끼니

식사 독립을 위하여

얼마 전, 남편의 은퇴 후 부부가 겪는 갈등에 관한 기사를 읽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하여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가정에 남아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 낸 아내는 이제야 내 시간을 누린다. 동네 친한 다른 아주머니도 있고 멀리 살지만 가까웠던 동창도 종종 만날 것이며 요가나 수영, 탁구 등 운동도 배우러 다니고 그림이나 노래교실을 다니기도 할테지...


남편이 은퇴한 후, 집에 앉아만 있다. 직장이 아닌 사회에 편입하여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을 이미 깨달은 아내와 달리 평생 일만 해온 남편은 집밖으로 나가 무얼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남편을 두고 매일같이 나가는 것이 마음에 쓰이기 시작한다.


아이참, 저이도 뭘 배우러 가든, 친구라도 만날 것이지...


아내는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아쉽다. 그렇다고 아주머니들 자리에 남편을 대동하기도 마땅치 않으니 오늘도 혼자 나설 수 밖에


가벼운 외출을 하는 아내의 등에 대고 남편은 묻는다.


또 어디가? 내 밥은?


밥! 밥! 밥! 이 시점에 아내들은 은근히 미안했던 마음을 지울 적당한 상대를 발견하게 된다.


밥솥에 밥있고 냉장고에 반찬있는데 손이 없어 입이 없어.... 자기가 차려먹으면 덧나나


입밖으로 내뱉어 비난하지는 않더라도 속으로는 실컷 힐난할 수 있다. 내가 나쁜게 아냐...밥 하나 못차러 먹고 밥타령하는 저이가 문제지...


내가 추측하는 은퇴후 부부갈등의 모습이다. 하고 싶은 것 많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두고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나 역시 남편의 은퇴 후가 염려스럽다. 공부와 일밖에 모르는 남편, 어디 가서 실없는 농담 한 번 할 줄 모르는 진지하고 무던한 남편이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함께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으려고 무던히 애쓰는 까닭이다. 은퇴 전, 회사일로, 가정일로 집이라는 공간을 공유하되 삶을 공유하기는 어려웠던 지난날에 대한 보상이 되어야 할 은퇴 후의 삶이다.중년이후의 우리 삶이 한낱 밥때문에 폭발하는 각자의 삶이 되어서는 안되기에...함께 할 취미와 관심사가 많아야 할 것이다.


오늘 브런치에 보니 출장떠나는 아내가 남편과 아이를 위해 끼니를 준비해 두는 이야기가 올라와 있다. 나의 외출로 남편이 홀로 식사를 해야 할 때 나 역시 미리 식사를 준비해 두고 나가곤 했으며 몇달 정도, 오래 자리를 비우게 되면 곰국을 끓여두겠다 농을 하곤 했다.


남편을 두고 아이들만 데리고 한국을 방문한다. 이곳 시람들은 2주에서 한달간 자유롭게 여름휴가를 사용하지만 회사의 책임을 맡고 있는 남편은 남들처럼 그럴 수 없다. 한국에서의 상황에 응대도 해야 하기에 오랫동안 자리를 비울 수 없다. 남편은 핀란드에 남아 일을 하고 아이들만 함께하는 한국방문이 되어 버렸다.


다른건 몰라도 남편의 끼니가 걱정이다. 한국에서처럼 밖에 나가 사먹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이곳의 외식은 우리 입맛에 먹을만한 것이 없이 비싸기만 하다. 국을 좀 끓여 두고 반찬은 뭘 해두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중에 남편과 아들을 두고 딸들과 함께 미국으로 놀러간 Susanna가 떠오른다. 그녀는 이런 고민없이 떠났다. 핀란드의 많은 남자들은 본인의 끼니는 물론 가족의 식사를 위해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이 새로울 것 없는 일상이기 때문에 아내가 없다 해서 밥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문득, 내 남편도 식사 독립을 시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다 풍요로운 우리의 노년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꼼꼼한 성격으로 보아 요리를 하면 맛있게 잘할 것 같은데 함께 요리를 배우러 다녀볼까..?



매거진의 이전글 Malathi, 언니의 귀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