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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ul 27. 2016

한껏 게을러지기

볕이 좋은 날, 동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켠 작은 바닷가로 달려갑니다. 비치용 반바지를 입고 하얀 상반신을 드러낸 아빠는 아이를 위한 커다란 물놀이 용품을 옆구리에 끼고 잔디밭 사잇길을 가로지르고 금발머리 날리며 꺄르륵 거리며 달리는 소녀들도 있어요.


우리도 바닷가 나갈까?

아우~ 엄마, 여기서 다 까매지면 안되요. 미국에서 우리가 얼마나 까매졌는지 잊으셨어요?


그랬다. 매일 오후 수영장이 나가 물놀이 하던 딸들은 더이상 까매질 수 없을 정도로 까맣게 탔고 체로키마을에 놀러가 만난 체로키인디언들과 싱크로율 100프로를 자랑하는 외모로 한동안 지내곤 했다.


주사기로 핏기를 뽑아낸 듯 하얀 북유럽의 아이들 틈에서 이보다 더 까매진 피부로 지내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볕이 너무 좋다. 테라스에서 바닷가를 한참 바라보다가 캠핑용 돗자리를 펴고 얇은 담요를 깔았다. 커다란 방석과 쿠션을 옮겨 베고 책을 읽기 시작한다.


갓 뽑아낸 커피 한 잔, 게을러질 준비가 완료되었다.


이렇게 오후 내내, 테라스에 편 돗자리 위에 누워 책을 읽고 있노라니 오후볕에 나른해 져 잠이 든다. 따뜻하던 등은 강한 햇살에 점점 따가와 졌지만 머리칼 사이로 스쳐가는 바람결은 싱그럽고 서늘해 잠을 깨기 싫어진다.


곁을 보니 책을 읽던 딸 아이의 눈도 어느새 게슴치레하다.


오늘은 이렇게 게을러도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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