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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Oct 24. 2016

무쇠 냄비에 끓이는 미역국

사랑담은 미역국

집에 솥이니 냄비니 많은데 무슨 솥을 또사, 그것도 솥 하나에 삼십만원이 넘는구만,
사지마!!!


"제대로 된 건 없쟎아.."


만류하는 내 말을 듣는 것인지 마는 것인지 남편은 양 손으로 커다란 상자를 들고 나선다. 그렇게 르쿠르제 무쇠냄비를 처음 만났다. 똑같은 재료로 똑같은 사람이 끓인 국인데 마법처럼 맛이 살아난다. 두툼한 무쇠솥에 오랜 시간 은근히 끓이다 보니 맛이 절로 좋아지나 보다. 맛이 좋아지다 보니 더 열심히 국을 끓여댄다. 그리고 나는 국물요리 장인으로 거듭났다.



얼마 전 핀란드의 블랙 프라이데이같은 대바겐세일 기간 중 스톡만 백화점주방용품코너에 들러 유심히 물건을 살피는 남편,

요리는 안하지만 잘 만들어진 주방용품 고르고 사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 덕분에 본의 아니게 주방에서 내가 호사를 누린다.






언니, 올라오는 길에 주차장서 전화해요.  
국 끓인거 좀 가져가


그래 얘, 네가 준 미역국만 있으면 입짧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애가 밥을 한 그릇씩 뚝딱 먹어치워...만날 얻어 먹어 어쩌니~


장을 보고 쇼핑을 할 때마다 맛난 것, 좋은 것이 있으면 우리 딸들것까지 한보따리 사들고 오는 친한 언니의 늦둥이 작은 딸이 르쿠르제 무쇠솥에 끓인 미역국을 먹고 자라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입학한다.


"언니, 나 미국가면 우리 애기 국은 누가 끓여줘...."


정든 곳, 정든 사람들을 두고 떠나는 마음을 애둘러 표현하느라 국타령을 했다.



우리 집에는 두 팔로 힘껏 들어 애를 써도 들어올리기 힘든 큰 사이즈의 무쇠 솥이 여러개 있다.



여느 사람들은 내 무쇠솥의 육중한 모습만 보고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국이라도 담겨져 있으면 바윗덩이 드는 것 마냥 애를 써야 하고 설겆이라도 할라치면 여간 힘이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요리를 할때마나 끙끙 힘을 써가며 무쇠솥을 들어나른다. 사용해 보기 전에는 무쇠솥의 힘을 몰랐지만 막상 사용해 보고 나니 국물요리와 찜요리에 무쇠솥만한 것이 없더라...


결국 하나 둘 사 모은 큼직한 솥들이 벌써 여러 개가 되었다. 물론 같은 국이나 요리를 연달아 먹지 않아 항상 집에는 두 세가지의 국물 요리가 대기하고 있다 보니 일단 국을 담고 있는 무쇠 솥만도 두 세개가 필요했던 탓이다.



오늘도 보글보글 미역국을 끓인다. 저녁에 손님이 잠시 들른다는 말을 전해 듣자 마자 미역을 불리고 무쇠솥을 꺼내 소고기를 달달 볶는다. 지난 주, 예쁜 공주님을 출산한 따루씨의 남편분이 남편과 의논할 것이 있어 들른다 하기에 따루씨에게 전해 줄 미역국을 끓이는 참이다.


핀란드 여인의 산후조리는 뜨거운 미역국을 훌훌 마시며 몸을 따숩게 하는 우리네 산후조리와 다를 터이지만 홍어니 과메기니 토종 한국인인 나도 잘 먹지 못하는 음식들도 즐기는 따루씨인지라 왠지 뜨꺼운 미역국으로 몸 조리를 해야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적당히 식은 미역국을 유리병에 옮겨 담아 흐르지 않게 뚜껑을 돌려 닫고 비닐로 돌돌 감싸 고무줄로 또 한 번 묵었다.


얼마 안있으면 취학 통지서를 받아 들, 친한 언니의늦둥이 둘째딸에게 전해 주던 그날의 국처럼 보글보글 무쇠솥에 한참을 끓인 국의 온기가 유리병을 통해 손바닥에 전해진다.


따루씨, 엄마된 거 축하해요! 몸조리 잘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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