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선정 세계의 아름다운 도서관 10이라든지 각종 기관에서 아름다운 도서관을 선별하여 기사를 올린 것들을 보다 보면 기관마다 선정한 도서관들이 제각각이라는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아름다운 호수, 바닷가와도 같은 것들은 매체마다 10개를 꼽는다 하면 대략 예닐곱 장소는 공통으로 올라가게 마련인데 유난히 도서관만은 제각각이다. ( 그나마 아일랜드의 트리트니가 자주 등장하는 편)
아마도, 책이 있는 아름다운 공간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이 아닐까?
지난 달에는 아름답기로 유명하다는 프라하의 국립도서관에 방문했었다. 그간 들어왔던 극찬이 부끄럽지 않게 도서관은 아름다웠다. 정말 그랬다. 아름답고도 아름다웠다.
하지만 도서관안으로 들어가 벽을 따라 높게 진열된 고서들의 냄새를 맡아볼 수도, 그 책장사이를 걸어볼 수도 없이 입구에 걸쳐진 출입금지 라인가까이 최대한 붙어 고개를 빼고 바라본 조금은 아쉬웠던 기억
그나마도 개별 입장은 불가능하고 가이드투어를 이용하여야만 도서관 건물입구에 들어갈 수 있다 하니 마지 못해 한 무리의 사람들과 가이드를 따라 꼬물꼬물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사람들이 좁은 입구에 발이라도 디뎌 볼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했던 아쉬움
문득 헬싱키의 국립도서관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서초동 언저리에 있는 우리 나라 국립도서관도 생각나고 그 작은 숲길 뒤로 이어진 서래마을 카페들도 생각났다. 국기원 언덕아래 자리잡고 있던 국립어린이도서관도 생각난다. 매주 주말이면 아침부터 찾아가 책을 읽다가 지하 식당에서 사먹던 값싸면서도 맛이 끝내주던 잔치국수의 개운하고 뜨끈한 국물도 그립더라...
매일 찾아가 아이들이 읽을 책과 DVD를 한보따리씩 빌리곤 했던 미국 우리마을의 공립도서관, 그곳이 좋아 봉사신청을 하고 매일 도서관에서 일하던 그 시절과 함께 일하며 추억을 나누었던 도서관 직원들
도서관에 관련된 추억 중 어느 하나 따뜻하지 않은 것이 없고, 아름답지 아니한 것이 없다. 이런 경험이 기대를 낳았고 기대를 안고 딸들과 헬싱키 국립 도서관으로 가본다.
헬싱키 국립 도서관은 헬싱키 주요 관광스팟인 헬싱키 대성당 바로 옆에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초라한 외관과 정보의 부족으로 그냥 지나치지만 말이다. 우리가 도서관입구에 당도했을 때만 해도 한산하고 초라한 외관에 적쟎이 실망을 했으니 비행기를 타고 멀리서 날아온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기에는 부족해 보이기도 하겠다.
육중한 문을 열고 힘겹게 들어가니 노교수와도 같은 인상의 노인 한 분이 입구를 지키고 계셨다. 그 분 옆의 안내문을 읽어 보니 가방 등 소지품의 반입이 금지된단다.
핀란드 도서관에 우리가 읽을 책이 많지 않을 것 같아 읽을 책과 간단한 간식거리를 챙겨 베낭 하나씩을 메고 온 터라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는 할아버지께 다가가 묻는다.
과하게 친절하지도 그렇다고 불쾌하다고 느낄 만큼 불친절하지도 않은 오묘한 경계선상의 정확하고 반듯한 안내에 따라 왼쪽 계단으로 내려가 사물함이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섰다. 핀란드 사람들의 업무태도가 대체로 이러하다. 사적인 관계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면 과한 미소나 몸짓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불편하거나 어색함을 느낄 만큼 딱딱하지도 않다.
사물함 시설이 대단히 깔끔하고 현대식이다. 다만 이 사물함이 들어선 장소가 마치 동굴 속 같다. 이 곳의 지반 아래도 암석이었나? 핀란드의 지하에는 돌이 많다. 그래서 거대한 동굴같은 지하 주차장도 많고 물도 깨끗하다. 수돗물을 그냥 받아 마실 수 있는 요인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가방과 겉옷 등을 사물함에 넣고 필요한 물건들을 비치된 바구니에 담아 다시 1층으로 올라가니 예의 그 할아버지가 '그래 잘했어, 그렇게 들어가면 된다' 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한 번 끄덕해 주신다. 나 역시 과하지 않은 조용한 미소로 답례하고 도서관에 들어선다.
아! 이게 뭐야!!!! 겉모습과는 딴판이쟎아!!!!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진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장서로 가득한 책장이 사방 벽을 둘러싸고 하얀 기둥이 사이사이 높은 천장과 돔을 떠받치고 있다. 놀라운 것은 이 책들을 실제로 사람들이 꺼내보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면에 위치한 작은 문으로 들어서면 보다 낮은 책장들과 테이블 그리고 중앙의 직원 데스크가 보인다. 이 장소는 멋진 나선형의 계단이 감싸고 있다.
큰 아이는 테이블과 의자를 보자마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읽는다. 아이 옆에 앉아 나도 들고 온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잠시 후 사라졌던 작은 아이가 밝은 미소를 뚝뚝 흘리며 바삐 엄마에게로 다가온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당긴다. 읽던 책을 덮고 작은 아이와 도서관 탐험을 시작한다. 반듯하고 책임감 강한 큰 아이와 조금은 엉뚱하고 호기심많은 둘째,그래서인지 이런 모험은 주로 작은 아이와 하게 된다.
나선형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각 층에 문이 하나씩 있고 옆 방으로 연결된다. 그 옆방은 대략 서너개층 높이의 공간을 하나로 뚫어 층고가 대단히 높은 열람실인데 벽을 둘러싼 책꽂이와 좁은 길로 각 방이 연결되어 있다.
기대이상으로 고풍스럽고 아름답다.
창가에도 테이블이 하나씩 놓여져 있다. 자리에 따라 책을 보다가 잠시 고개를 들면 헬싱키대성당이 보이기도 하고 푸른 공원이 보이기도 한다. 다음에는 일찍 와서 저 자리에 앉으리라
아름다운 공간이란 눈으로 보는 것 뿐만 아니라 내가 몸담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아닐까? 특히 도서관이라면 더욱더... 그런 의미에서 헬싱키의 국립도서관은 우리에게 더없이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오른쪽이 헬싱키 대성당이고 언덕오르는 곳 왼쪽의 연노랑색 작은 건물이 도서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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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onsgatan 36, 00170 Helsinki, 핀란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