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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Dec 10. 2016

영어를 책으로 배워쓰

핀란드의 12월 아침 8시는 한밤처럼 까맣다. 어둠을 가르며 딸들을 싣고 Katie와 Sarah를 태우러 Gemma집으로 향한다. Gemma의 집과 우리집은 방향이 같고 Katie는 작은 딸의 절친인데다 Katie자매는 딸들과 같은 Skate 클럽 소속이어서 Gemma와 나는 서로의 상황에 맞춰 돌아가며 아이들을 실어나르곤 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Katie와 작은 딸이 같은 클럽에서 복싱을 시작해 Gemma와 나는 더욱 훌륭한 드라이빙 파트너로 활약중이다.


Gemma의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진입하는 순간 나를 스쳐 지나가는 John(Gemma의 남편)과 익숙한 하얀 차를 목격한다.


John이 토요일 아침부터 운동가나? 이 시각에 어딜 가지? Gemma의 집 벨을 눌러도 기척이 없다. 문앞에서 스케이트 가방을 들고 무장을 한 체 기다리고 있을 자매도 보이지 않아 벨을 몇 번 더 누른다. 부스스한 Gemma가 놀란 얼굴로 우리를 바라본다.


방금 전 John이 아이들을 태우고 나갔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뭐지? 우선은 리허설 시각에 맞춰야 해서 괜찮다고 외치며 서둘러 링크로 향한다.


뭐지? 뭐지? Gemma가 또 깜빡했나? 아까 그 차가 John이 몰고 나간게 맞네, 뭐지뭐지뭐지??????


딸들을 내려주고 What's app을 열어 어제 저녁 Gemma와 주고받은 쳇팅창을 확인한다. 정규 클래스가 아니라 내일 있을 크리스마스 아이스쇼의 리허설이 토요일 아침으로 잡힌지라 픽업에 대한 사전약속은 없던 참에 Gemma가 먼저 메세지를 보내왔다.


G: 내일 리허설에 내가 니딸들도 태워갈까?

H: 고마워, 하지만 난 애들이 리허설하는 동안 짐에서 운동하려고 했거든. 내가 니 애들까지 태워갈까?

G: 좋았어! 일요일 복싱은 갈꺼지? 그때 내가 태워갈까?

H: 그럼 일요일에 부탁할께


그뒤로는 어쩌구 저쩌구 잠시 수다를 떨다가 인사로 마무리한 우리의 대화, 뭐가 문제지? 한참을 들여다 보니 문득 짧은 한 문장이 파워포인트 애니메이션 효과마냥 커졌다 작아졌다하면서 나 좀 봐달라고 애를 쓴다.


It's fine.


쳇팅의 특성상 내가 말하는 동안 상대가 한 말이 전달되기도 하고 동시에 조금씩 다른 뉘앙스의 이야기가 오기기도 하는데 Gemma의 fine은 내가 Katie와 Sarah를 태우는 것에 대한 '좋았어!'가 아니라 아이들이 리허설하는 동안 내가 짐에 간다는 것에 대한 fine이었던 것이다. 토요일 리허설은 그렇게 각자 운전을 하고 일요일은 그녀가 작은 아이를 태우러 오겠다는 뜻이었던 모양이다.


곧 날아온 Gemma의 메세지는 나의 깨달음이 맞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G: 정말 미안해, 내가 좀더 명확하게 말했어야 했는데..그러지 못해 미안해...

H: 아냐, 니 잘못이 아니야. 내가 확인을 했어야 했어. 약간의 오해가 있었던 거니까 신경쓰지마.괜찮아.

G: 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란 걸 내가 깜빡했어. 다음부터는 Yes, No를 확실하게 표현할께. 불분명한 표현으로 번거롭게 했으니 내 탓이야 미안해.


한국말로 대화를 해도 사소한 오해가 생길 수 있고 같은 말을 들어도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데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과 영어를 책으로 배운 나의 대화에 사소한 오해가 생기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중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으로 영어를 배웠고 학교에서 치루는 중간, 기말고사의 영어점수를 위해 교과서를 통째로 외웠었다. 지문을 모조리 외워버리니 시험성적은 매우 우수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는 고시영어에 대비한다며 아카데미와 거로 등 두툼한 토플책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내 영어공부의 99프로는 책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미국에서 생존하기 위한 생존영어 수준은 되어서 그럭저럭 사는데에 지장은 없었다. 책으로 배운 영어만으로도 친구와 만나 가벼운 대화를 하거나 농담을 하는 등 큰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네이티브처럼 영어를 하기 위해 크게 애쓰지는 않았던 것이 조금은 후회되는 오늘의 에피소드


다쳐서 쓰러진 한국인에게 다가와 How are you? 라고 물으니 피를 흘리면서도 그는 I'm fine, Thank you. And you? 라고 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책으로 배운 영어는 어쩌면 조금 답답한 영어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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