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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Dec 14. 2016

세상의 쓴맛

크리스마스 카드 팔기

핀란드의 아이들은 영어, 수학 학원대신 스케이트, 체조, 댄스 등 생활체육 활동을 많이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 하나만으로도 핀란드의 삶을 동경할런지도 모르겠다. 한국으로 귀국할 딸들이 이곳의 아이들처럼 아이답기만 한 삶을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한국이 아닌 이곳에서 살기 때문에 좀더 아이답게 살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초인종 소리에 현관에 나가 보면 딸들 또래의 아이들이 두셋 짝을 이루어 카드나 엽서, 작은 악세사리 등을 들고 서있다. 예상치 못하게 동양인 아줌마가 문을 열어 당혹스러운 눈치다. 최대한 밝은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아이들은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왜 이곳에 왔는지 열심히 설명한다. 물론 나는 알아듣기 어려운 핀란드어로 이야기가 계속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학교육을 받은 핀란드인들은 대부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영어교육을 시작하는 것은 중학교 이후이다. 대학을 갈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영어공부를 하기 때문에 초등학생 아이들은 영어를 하지 못한다. 현관에 마주한 아이와 나 사이에 언어의 장벽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미안해, 이것 좀 봐도 될까?


경계하지 않도록 활짝 웃으며 아이가 들고 있는 것을 손으로 가리킨다. 아이 역시 웃으며 건넨다. 간혹 그 물건만으로도 용도나 목적이 분명한 것은 나의 짧은 핀란드어 실력으로 가격을 묻고 물건을 사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언어의 벽을 극복하지 못하고 초콜렛 하나 들려주고 돌려보낸다.


이곳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를 맞아 각자 만든 카드나 작은 악세사리 등을 스포츠 클럽 홍보물로 제작하여 이웃에게 판매한다.딸들이 속한 스케이트 클럽에서도 크리스마스 카드를 제작했다. 취학 전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에 클럽이름을 새겨 넣어 인쇄한 제법 그럴듯한 카드다.



작은 딸은 같은 반 친한 친구이자, 같은 클럽 친구인 Aida와 이 카드를 팔겠다며 집을 나섰다.


만일 영어를 못하는 사람이 나오면 엄마가 핀란드인이어서 핀란드말을 잘하는 Aida가 설명하기로 하고 두 장에 1유로를 받을지 한 장에 1유로를 받을 지 의논을 하는 등 나름대로 신중하게 판매계획을 세웠다.


같이 가줄까?
아니에요! 우리끼리 할 수 있어요!!!

새로운 놀이를 하는 것 마냥 한껏 들뜬 아이들이 달려 이웃집 골목으로 사라진다. 아이들이 돌아오면 먹일 피자를 구우려고 오븐에 불을 켰다. 하지만 오븐이 미쳐 데워지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린다. 대략 어떤 상황인지 짐작이 간다


문을 여니 시무룩한 표정의 두 아이가 어깨를 내려뜨리고 서있다. 와락 품에 달려드는 아이


우리를 보자마자 안산다고 했어요!

뭘 판다고 말하기도 전에 노우랬어요!


몇 집의 초인종을 누르고 번번이 문앞에서 거절을 당하자 서럽기도 하고 속도 상해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래도 아이들이 방문한 것이니 엄마가 그랬듯 다 팔지는 못해도 몇 장은 사줄거라 생각했던 모양이다. 설명도 듣지 않고 필요없다고 말하는 이웃의 태도에 제법 마음이 상한 듯 했다.


얘들아, 세상살이는 제법 쓰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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