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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an 07. 2017

겨울, 핀란드

우리 마을 이야기

제아무리 호수와 숲이 많은 나라지만 도심 한 복판은 여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높은 건물이 연이어 있고 운행되는 차량이 많고 이런 저런 점포들이 위치해 있다. 물론 건물의 높이와 밀집도, 교통혼잡의 정도 등에서 도시의 규모마다 차이는 있을테고 도심 내 녹지공간이 얼마나 조성되어 있는지 역시 차이가 많을 테지만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외곽의 풍경은 그 차이가 매우 심하다.


인구 20만이 채 안되는 이 도시는 그래도 헬싱키를 제외한 핀란드 3대도시로 꼽히는 큰 도시다. 하지만 도심에서 차로 십분이면 여느 도시와는 달리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무덤덤하게 반긴다. 무덤덤하게 반긴다는 것은 잘 가꾸어진 요란하고 화려한 경치가 아니라 그저 오래전부터 그렇게 세월을 지내온 듯한 세상의 일부로서의 자연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름날의 마을 산책길

발틱해 한 물줄기를 따라 특별하지 않은 벌판이 펼쳐지고 굴곡없는 숲이 연이어 펼쳐진다. 그 벌판 한 끝에 5,60가구가 모여 사는 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어느 업자가 이곳에 집을 지어 마을을 조성하고 한 채, 한 채 집을 팔아 오늘에 이르렀다.

눈내린 어느 날, 마을 어딘가


핀란드에 도착해 살 집을 구하던 우리는 도심의 편의를 포기하고 시내까지 가려면 구비구비 돌아 한 시간이 걸리는 버스 한 대가 고작인 이 마을에서도 최고로 전망좋은 집에 짐을 풀었다. 차로 십분이면 서울 한복판 만큼은 아니지만 필요한 만큼의 이로움은 취할 수 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만일 한국에서처럼 이런 환경을 택한 댓가로 한 시간 이상 교통지옥을 헤쳐나가야 했다면 꿈도 못꾸었을 선택이라는 것을 안다.


이곳에서라야 가능한 선택, 우리는 그 기회를 잡기로 했다. 유난히 눈이 오지 않은 올 겨울, 모처럼 눈이 내려 세상이 그새 하얗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책을 하고 유모차를 밀고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하는, 가끔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나의 이웃들은 오늘따라 유난히 어린 아이들을 썰매에 태워 마을길을 걷는다.


파도가 없이 잔잔한 앞마당에 맞닿은 발틱해는 염도마저 낮아 겨울에는 꽁꽁 얼어붙는다. 보기에도 바다가 아닌 호수처럼 보이는 저 바다가 겨울에는 얼기까지 하니 이를 바다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기만 하다.

마을 앞에 펼쳐진 너른 벌판, 바다에 맞닿아 있다
바다 건너 섬에서 바라 본 가을 어느 날의 마을


얼어붙은 바다를 가로질러 건너편 섬에 이르면 주교의 성이 있다. 바닷가에서는 썰매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타는 어린이들의 미소가 밝기만 하다.


얼어붙은 바다에서 노니는 아이들


봄에는 노란 꽃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수영복입은 아이들이 바닷가로 달려가는 푸른 벌판, 가을에는 가을빛 가득한 산책로가 바스락거리는 이 마을의 구석구석이 오늘은 하얗고 하얗다.


훗날, 오늘의 하얀 세상이 어떻게 기억될런지 몰라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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