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축제, Lux Helsinki
여행자의 특별한 경험은 현지인에게는 일상이 되고 혹은 헤쳐나가야 할 고난이 되기도 한다. 한여름의 백야와 싸우며 잠을 청해야 하듯 한겨울의 핀란드에서는 어둠을 극복하며 살아가야 한다. 가끔은 어둠을 즐기기도 한다.
아홉시, 아이들이 등교하고 남편이 출근하고 혼자만 남게 되는 시각
열시, 아침 식사한 그릇들을 치우고 급히 나간 가족의 흔적을 정돈하는 시각
여전히 어두운 나의 겨울날 오전시간이다.
카페인에 민감한 나는 숙면을 위해 점심이후 커피를 피한다. 내게 있어 커피는 늘 햇살과 함께였다. 하지만 여전히 어두운 겨울의 오전은 내게 어둠속의 커피를 허락한다. 어두운 아침이 핀란드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커피소비를 하게끔 했다는 주장도 있다. 햇살로 몸을 깨울 수 없다면 커피의 힘을 빌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그윽한 향에 후각이 깨어나고 커피 머신이 돌아가는 소리에 청각이 깨어나고 씁쓸하지만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이 몸의 구석구석을 깨우는 특별한 아침
Anu는 핀란드의 겨울이 참 좋다고 했다. 핀란드의 겨울을 겪고 나면 이곳에서의 삶을 포기하고 떠난다며 지난 나의 첫 겨울을 응원하던 핀란드인들의 모습이 스친다. 타지인에게는 힘들지만 이 사람들은 핀란드의 겨울을 이겨낼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어두우니까 빛을 밝힐 수 있쟎아,
얼마나 아름다워!!
빛은 어둠속에서 더욱 빛난다. 그리고 어둠속에서라야 빛은 더욱 아름답다.
빛의 축제, Lux Helsinki는 핀란드의 어둠을 이용한 축제다. 1월 첫째 주말주간에 열리는 이 축제는 헬싱키의 랜드마크 대성당을 중심으로 빛난다.
오후 세시 반부터 사람들이 대성당 계단아래 펼쳐진 Senate광장으로 모여든다. 크리스마스에 북적이던 크리스마스마켓이 떠난 자리에 빛의 구조물들이 설치되어 있고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좀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린다. 그속에서 난생 처음 우리 가족도 좀더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 어두울수록 빛은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헬싱키대성당 주변의 시청과 헬싱키대학건물을 비롯한 큼직한 건물들의 벽은 빛의 축제를 위한 스크린으로 변신했다.
꽃을 피우고 폭포수가 되어 흘러내리기도 하는 빛의 움직임에 시선이 따라 움직인다.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어둠속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핀란드 사람들의 노력이 느껴져 조금은 애잔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한껏 웅크린 체 어둠이 지나가길 바라기 보다 어둠을 이용해 아름다움을 찾고 즐기려는 태도가 더욱 아름답다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