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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스 Jan 08. 2017

겨울, 핀란드의 아이들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시간

살금살금 조심스레 계단을 오르는 발소리가 들린다. 새벽 한 시 반, 방금 전 까지 작은 아이와 Katie가 소곤소곤 까르륵거렸는데 이내 조용해 지더니 발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일까?


2층 거실 쇼파에 기대 누운 채로 계단쪽을 바라보니 어릴 적 여름날 본 적 있는 계곡물에 둥둥 뜬 수박처럼 동글동글한 물체가 떠오른다.



2주간의 크리스마스 방학이 끝나는 마지막 날이다. 누구네 집이랄 것도 없이 친구들끼리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아빠가 긴 출장을 가셔서 적적한 우리 집에서 슬립오버를 하도록 했다. 이 녀석들 저녁내내 놀고도 무슨 할 이야기가 그리 많은지 자정이 넘도록 소곤거리던 참이다.


계단불을 켜주었더니 깜짝 놀라 바라본다. 놀란 눈동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녀석들 하는 말이 배가 고프단다. 저녁을 먹은지 예닐곱시간이 훌쩍 지난데다 그 예닐곱 시간 동안 열과 성을 다해 놀았으니 배가 고플만도 하다.


빵봉지를 꺼내고 냉장고에서 버터와 딸기쨈을 꺼내 가장 간단한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새벽 두시가 다 되었으니 엄마나 언니는 자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고 배는 고프니 2층 부엌에 조심스레 올라가 먹을 것을 찾아보자 했던 모양이다.


시각이 시각인지라 양껏 먹이기도 곤란해 적당히 허기가 가라앉도록만 먹인 후 이제는 그만 자는 것이 좋지 않겠냐고 굿나잇 인사를 한 번씩 더 해주었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키득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는 녀석들...


아무리 늦게 잠들었다 해도 내일이 학교가는 날이기 때문에 마냥 늦잠을 자도록 둘 수는 없어 아이들을 깨웠다. 아침을 먹으며 이 녀석들 시선을 주고 받는다.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창밖너머 하얀 세상을 시선으로 가리킨다.


아침먹으면 나가 놀자는 거겠지..


미국의 아이들도 참 많이 놀더라만 핀란드의 아이들은 학교일정 외의 일과가 운동하는 것과 노는 것뿐이다. 물론 스마트폰이나 컴퓨터게임 등을 즐기는 아이들도 있지만 적어도 선행과 학원스케줄로 바쁜 아이는 단 한명도 없다. 초등학생이고 중학생이고 학교수업과 간단한 과제만 마치면 아무리 놀아도 이상할 것이 없는 곳


경쟁없는 교육을 지향하다 보니 교과수준이 높지 않고 천천히 배운다. 학업성적에 따라 학력에 따라 업무내용과 소득격차가 발생하지만 아무리 못배웠어도 일자리가 탄탄하지 못해도 굶어죽지는 않도록 사회가 보장하니 급박할 것이 없다. 이곳의 아이들은 이런 까닭에 어려서 부터 공부할 필요가 없다.


핀란드의 아이들이 아이들 본연의 모습으로 놀면서 자라날 수 있는 것은 사회의 시스템덕분이지 교육제도의 우수함때문이 아니다.


한국의 아이들은 어릴때부터 참 영리하다. 학습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을 살펴도 영악할 정도로 똘똘한 아이들이 차고 넘친다. 그런 아이들틈에서 내 아이가 부족해 보이지 않도록 나 또한 심혈을 기울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곳에서 순박하고 해맑은 아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아이는 아이다울 때 가장 예쁘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아이들이 뒷마당에 이글루를 만들고 있다.


눈밭에서 놀고 있는 녀석들이 놀이를 마치고 들어오면 사우나를 하면서 몸을 녹일 수 있도록 사우나를 켜두었다. 사우나가 충분히 더워질 때까지 마냥 놀게 둘 참이다. 아이들을 기다리며 아이가 가장 아이다울 수 있는 사회를 꿈꿔 본다.


아이들의 몸을 녹여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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