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익숙한 아이들
청군 이겨라, 백군 이겨라!
운동장 한 가득 흙먼지 폴폴 날리며 청군,백군 편을 갈라 큰 공을 굴리거나 콩주머니를 던져 커다란 박을 터뜨리던 모습의 운동회, 어린 시절 운동회의 백미는 이어달리기였다.
운동장 한 켠에 돗자리를 깔고 먹던 도시락, 각 반의 반장엄마가 돌리던 당시로서는 귀한 제과점빵, 크림빵, 소보로빵의 추억
아련하고 풋풋한 운동회의 기억 저 편에 학년 별 단체율동을 하느라 운동회 즈음에는 여전히 뜨거운 가을볕 아래 매일같이 운동장에서 연습하던 짜증섞인 기억도 함께있다. 운동회를 보러 온 학부모님들과 외부 손님들을 위해 운동회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감수해야 했던 희생이라면 희생이다.
요즘의 운동회는 어떨까?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을 다녔던 아이는 꼭두각시 한복을 입고 앙증맞은 율동을 보여주었다. 공식적으로는 옷을 맞춰입으라 하지 않았지만 각 반의 반대표엄마들은 의상대여업체를 찾아 인원수를 파악한 뒤 의상을 대여하였고 의상대여비를 걷었다. 큰 돈은 아니었지만 돈을 걷으면서도 무얼 위해서 내가 어린 시절부터 있어왔던 이런 일들이 지금껏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오늘은 아이들 학교에서 Winter Sports Day행사가 있는 날이다. 학생들이 인근의 스키장으로 다함께 크로스 컨츄리 스키와 썰매를 즐기며 노는 날인데 어찌보면 우리나라의 운동회와 비슷한 행사가 아닐까 싶다. 틈만 나면 인근 스케이트장이나 호숫가로 아웃도어 스케이트를 겨우내 타러 다닌 아이들인데 유독 오늘을 Winter sporst day라 이름붙일 까닭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간의 아웃도어 스포츠 활동들이 반별로 이루어졌다면 오늘은 전체 학생들이 다함께 즐긴다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려나? 학교 부근의 장소가 아닌 버스로 대략 십분 정도 이동했다는 차이도 오늘을 좀더 특별하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모든 아이는 학교안에서 모두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방침에 따라 도시락이 허용되지 않는 핀란드의 학교에서 도시락을 허락하는 몇 안되는 날이기도 하다.
아침부터 김밥을 말고 달달한 딸기차를 데워 보온병에 담았다. 딸아이의 친구들 모두 김밥을 좋아하기 때문에 넉넉히 싸보내야 한다. 친구들에게 한 두알씩 주고 나면 먹을 것이 없다는 딸아이도 배불리 먹어야 하니까 말이다.
즐거운 점심시간이라며 작은 아이의 담임선생님이 whats app 단체방으로 사진을 한장 보내왔다.
어머나! 저 얼음판위에 주저앉아 의자도 테이블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락을 먹는 모습, 과연 핀란드의 아이들이다.
추운데서 먹으면 체할텐데...
아이고, 저 찬데 앉으면 애들 추울텐데...
테이블도 없이 애들을 거지꼴로 이게 뭐람...
한국의 엄마들이라면 응당 걱정부터 할텐데 이곳 엄마들은 정말 즐거워 보인다며 함께 도시락을 꺼내 먹는 듯 들떠 있다. 내딸이 무어라도 깔고 앉았기를 바라며 사진을 확대해서 보던 나는 혼자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래, 여기는 핀란드구나...